놀람과 찬탄 그리고 자랑스러움과 기쁨, 좋은 형용사를 작은 망설임도 없이 많은 한국 사람이 공유했다. 오랫동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한강의 그 소설을 문학을 사랑하는 세계인이 격찬하고 인정했다. 다가가기 어렵다고 믿었던 진실을, 사실보다도 더 절실하게 보여준 이 소설은 문학이 주는 힘을 증명해 냈다. 검은색 바탕에 메밀꽃들이 가득한 표지,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들고 읽었다. 노벨상과 상관없이 그때 내 감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감히 표현해 보고 싶어서다. 나머지 두 작품은 소설이라는 이유로, 잘 알려진 외국 작가의 소설과 소설가로는 좀 낯선 작가의 작품을 묶었다. 이야기를 생산하는 모든 작가에게 감탄과 감사를 보낸다.
1. 『소년이 온다』
한강 ∣ 창비 ∣ 2014년 ∣ 215쪽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이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과 함께 여러 매체에서 소개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줄거리나 작품에 대한 내 의견을 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은 나는, 이 책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소설을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6년 전 이 소설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더듬어 적고, 다시 읽으며 들은 내 감정 위주로 책 소개를 하는 것을 양해 바란다. 이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어찌 이 작품을 건너뛰고 다른 소설을 소개할까 싶어서 용기를 낸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교사들과 꾸준하게 좋은 책을 공유하다 읽게 된 이 소설은 몇 번을 쉬어가며 읽어야 할 만큼 가슴을 후벼팠다. 본능적으로 아픔은 방어기제가 작동하니 끊어 읽어야 했고, 1장을 읽고 한동안 책을 들지 못했다. 책을 읽은 나에게도 감히 그 소년이 걸어왔다고 말하고 싶다. 좋은 작품을 접하면 내 경우 일단 이런 글을 쓴 이가 부럽고, 문장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대해 질투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글 속의 진실에 압도되어, 그런 사소한 감정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비교할 수조차 없는 대상에 대한 예의였지 싶다.
나선형을 그리면서도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발걸음이 나아간 것보다 더 크게 뒷걸음치더니, 다시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인 그런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나이는 들어가고 세상은 복잡해지니 알려진 진실도 희미해지고, 광주는 가까운 곳도, 그곳에 연고가 있지도 않아, 시간과 함께 지워지는 흔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을 읽었다.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것이 무뎌진 군살에 깊은 자상을 냈다. 피가 보였다. 상처는 아물기는 하지만 언제라도 아픔을 기억하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짙은 안개에 가린 실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그 자리에 있고, 언젠가는 걷어진 안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광주’는 가려진 실체였고, 소설, <소년이 온다> 노벨상 소식은 햇볕이 되어, 안개를 걷어냈다. 이렇게 문학은 햇빛과 같은 따사로운 힘이 있다. 안개에 가려 있다고 그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그러니 감추기 어려운 그 생채기를 절대로 외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잊으면 안 되는 상처를 다시 보게 해준 한강 작가에게 예의를 갖추어 감사하고, 모든 사람이 이 소설 읽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 2008년 ∣ 253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의 이 질문에 그녀는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하는 것처럼 여겼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한 걸까?”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등장하는 글귀이다. 이 소설 제목의 의미가 엿보여 여러 번 읽었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이 많지 않다는 작품 해설에도 감을 잡지 못했던 의미였다.
사랑 이야기는 내적인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 저절로 끝나지는 시점이 아니라 갑자기 뚝 끊어질 어떤 상황에서는 상대방보다는 상대방 없는 자기 자신이 안쓰럽고 그래서 불행하고 슬프다. 이 소설의 주인공 폴은 로제와의 사랑이 뜨문뜨문할 때, 시몽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이 옮겨가는 듯 매우 통속적이고 가볍게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결국 로제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만들어진 사랑 이야기(그렇지! 소설이지.)라는 느낌을 더 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건이나 상황 등, 환경이 부각되는 연애 드라마, 사랑 그 자체를 다룬 시, 그리고 노래. 모두 흥미롭다, 시는 본질적이고, 설명이 친절하지 않지만 아름답다. 드라마는 지루하고 세속적이고 때론 유치하지만 우리 생활처럼 반복적이라 쉬엄쉬엄 보아도 고개는 끄덕여지고 그런 매력이 있다. 사랑을 다룬 소설은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 연애 드라마를 보는 듯 지루하다가도 폭풍 공감하게 하는 문장을 만난다. 그래서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낯선 나라, 시대를 달리 살았던 여성의 내면을 만나는 설렘을 주고, 아프고 굴곡 있는 세상살이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로맨스라는 간질거리는 사소함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3.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 난 다 ∣ 2020년 ∣ 352쪽
목수로 목물을 다룬 이야기 <목수 일기>, 상상력이 극대화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책벌레 이야기> 등,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접했다. 작가가 집을 혼자 짓고, 그의 작품을 보관할 장소까지 지어 강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하게 집을 지으며 든 생각을 쓴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선입견이 있으면 소설을 읽으면서도 에세이인 양 작가의 실제 삶과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다 첫 단편을 읽고서야 지어낸 이야기인 것을 눈치챘다. 현실에 있을 법한 그래서 사실보다도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소설은 글쓴이의 경험과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멋진 세상이다. 작가의 생활과 그리고 생각과 상상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10개의 단편이 모여있는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는 느낌의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로 시작해서 사실 그 자체보다 진실에 접근하게 하는<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까지 작가의 경험과 생각과 상상이 버무려져 있다. 목수가 목물을 만들면서 한 생각이 소재가 되고, 혼자 집을 지은 경험이 소재가 되고, 서울과 멀어져 사는 사람의 상상이 소재가 되고, 사는 장소가 소재가 되어 작가의 깊은 사유와 만난다. 그래서 철학적 질문이 있고, 즐거운 상상이 있고, 멋진 세계가 있다. 작가의 경험이 소재가 된 이야기는 그의 경험을 따라가다 만약에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하고 상상하게 한다. 작가의 상상이 소재가 된 이야기는 그 상상 속에서 내가 소설 속 인물을 이해하고 그를 공감하는 나를 이해하게도 한다.
소설의 힘은 이야기를 통해 만든 상황과 그 안의 인물에 대한 공감으로, 비슷비슷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이해로 확장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을 얻게 한다. 문학(특히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좋아했던 시절)은 성장기의 나의 방황을 나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고, 그 힘이 국어 교사로 문학의 언저리에 있으며,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으로 자리잡게 도왔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한 공감이, 가장 먼저 나를 돌아보고 보듬고 이해하게 한 것이다.
글이 주는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나처럼 위로가 되는 문학을 접하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 내 소명임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도 했다. 때론 내 생채기를 들여다봐야 하는 두려움이 몰려와도 나를 통해 한 명이라도 나처럼 위로를 받게 하고 싶어서였다. 지금 나는 낯선 나라 작가의 사소한 사랑에 공감하고, 동시대를 살지만 탁월한 창작자의 상상을 알아차리는 독자인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소설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접하고 나를 이해하는 일이 좋다. 나에게 소설의 힘은 세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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