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옥 같다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내 경우는 복잡하다는 의미에 괴롭다는 아픔이 들어있다. 나 자신 자책이 더 해질 때가 대부분이었지 싶다. 거기에 손해까지 입었다면 그 자책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 손해 때문에 내 마음이 지옥인지 내 자책 때문에 지옥인지 조금은 헷갈린다. 마음이 지옥일 때 들여다보기를 권하는 책을 모아보았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 해냄 ∣ 2018년∣ 327쪽
저자 이름으로도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일 것인지 알 것 같아 사 놓은 지 한참이 지나도록 읽지 않았다. 절실하게 이런 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책이 주는 위로가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시기도 있다. 수다가 필요하다가도 혼자 침묵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그런 침묵의 시간을 보낸 후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뒷면에 “치유자 정혜신이 전하는 결정적 위로와 세심하고 과감한 지지 나와 당신을 살리는 공감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공감을 하려면 내 마음이 먼저 허락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런 태도와 심지어 훈련까지 필요하다. 내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나이가 들수록) 그런 노력들을 하기가 싫어졌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당신이 옳다’를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너무 나에게 적용시키고 있는거다. 긴 시간 다른 사람에게 안테나가 가 있던 내 젊은 시절의 보상 심리이기도 하고,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각자의 입장과 상황으로 판단된다면 내 편안대로 살고 싶어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싶어졌고 그런 훈련도 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지옥같은 사람들 사례가 많이 나와 있는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로할 용기와 태도 그리고 훈련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가 살짝, 어쩌면 다 자기 위주로 살면서도 다 남 위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이런 혼란도 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등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치유법이 시급하다며 ‘적정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허기를 손수 지어 먹으면서 위로를 받는 집밥 같은 치료의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아니 그 원리가 무엇인지 보다도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라고 말한다.
각자에게 치유자는 그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나에게는 돌아가셔서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이기도 하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자식들과 남편이기도 하다. 상처를 받는 대상에게 치유도 받는다면 그건 어쩌면 상처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 상처만 주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치유는 결국 내가 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리가 성립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점차 만나는 사람이 줄어들고 혼자 침묵하고 싶은 시간들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건 나이 드는 것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 나라말 ∣ 2008년 ∣ 140쪽
<아내에게 미안하다> 시집 이후 서정홍이라는 저자에 관심이 생겨 그의 시집을 사서 읽곤 했는데 역시 이 시집도 제목이 끌렸다.
시인은 우리가 놓치고 살 수 있는 정스럽고 사람다움을 만나게 한다. 시인은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저절로 착해진다고’ 했는데 나는 어느 때 착해지나 생각했다. 시인은 ‘여럿이 어울려 저녁밥 먹다가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사람이 그리워 미칠 때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가끔은 진짜 사람이 그리운가 되짚어 보기도 한다. 도리어 사람에 치여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멀었나 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 그래야 마음도 편안해지는 나를 본다. 이 시집에서 천천히, 아주 낮게, 그리고 적게 가져서 행복하고 편안한 시인이 부럽지만 과연 나도 그리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들게 한 이 시집을 읽고 또 읽는다.
읽다 보니 시어에서 흙냄새가 나기도 한다. 부족한 대로 비어 있어서 좋았던 순간도 떠오른다. 없어서 더 따뜻했던 순간도 떠 오른다. 천천히 걸으면 안 본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내려놓아서 편안한 것도 분명하게 있다는 것도 알겠다. 단 불쑥불쑥 더 멀리 갈 걸, 더 빨리 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힐까 두렵다. 그때마다 이 시집을 읽어야겠다.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나카무라 유 ∣ 남해의봄날 ∣ 2018년 ∣ 239쪽
이 책은 할머니라는 정겨운 단어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다가오게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정겹고 아름다운 것과 멀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당당하고, 영혼을 살리는 맛있는 음식을 하는 할머니는 왜 상상하기 힘들었을까?
요사인 음식 이야기가 넘쳐난다.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 중요해지고 우선시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아버지가 미식가여서, 먹고 자란 것이 있어 맛난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일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 힘듦에 가치를 두지 않으려 했다. 음식이란 고된 노동으로 인식하는 나는 음식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하루 세 번, 하루 중 너무 많은 시간을 먹는 것을 위해 쓰는 가정에서 성장해서인지 그 음식 맛이 아무리 대단해도 나에겐 그 시간 대비 가치가 높지 않았다. 미식가인 아버지 입맛을 맞추느라 늘 구슬땀을 흘려야 했던 엄마의 기억이 강해서인가? 결혼하고 나니 살림 중 음식하는 데 시간 쓰는 것이 제일 아까왔다. 그런 내가 이 책이 주는 무한한 에너지를 느껴 소개한다.
이 책은 여행지에서 그들의 문화를 온몸으로 살아낸 할머니가 있는 가정을 방문하고, 그 할머니와 대화하고 심지어 할머니가 만드는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소개한다.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자연스런 컷으로 잡은 책 속 사진에서 그냥 그 나라가 느껴진다. 거기에 레시피와 음식 사진 그리고 작가의 음식에 대한 감동까지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읽다보면 어느새 그 나라 어느 안방, 거실, 식탁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여행을 해보면 굉장한 건축물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나라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에서 나오는 그들의 문화만큼 진하게 감동을 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유적지 위주로 돌고 맛없는 음식을 먹이는 패키지 여행상품은 정말 최악이다.
아름다운 주름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이 젊고 작은 작가가 참 부럽다. 오래됨의 매력을 이리 일찍 알고 그들의 가치를 발굴해서 사업으로 연결하고 본인이 이 속에서 행복과 위로를 받는다니 참으로 영리하고 훌륭하다.
이 책은 여러 나라 할머니들과 그들이 요리하는 부엌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사진과 음식으로 나타내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선사한다. 각 나라의 80도 넘은 할며니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과 그들의 오랜 레시피와 세계 각지의 식재료와 요리과정이 작가의 감칠 맛 나는 글솜씨와 어울려 그 맛이 더하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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