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 대신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시고, 방금 차린 저녁 밥이 나를 기다립니다.
할머니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찬장에서 몰래 감춰둔 달달하고 맛있는 사탕과 과자를 내어주십니다. 할머니는 엄마였다가 요리사였다가 운전사이며, 때론 옛이야기의 상상 세계로 나를 이끌어주시는 이야기꾼이며, 세상 살면서 꼭 필요한 지혜를 전수해 주시는 지혜의 전달자입니다. 그러나 영원할 수 없는 할머니와의 추억, 사랑하는 할머니와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할머니 엄마』
이지은(글·그림)|웅진주니어|2016년|40쪽
엄마가 회사로 떠난 후 지은이는 울고, 할머니는 지은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계십니다. 할머니와 지은이는 조물조물 반죽으로 가족 모양 칼국수도 만들고, 할머니가 불어준 칼국수를 지은이는 작은 입으로 호로록 받아먹습니다. 가족 운동회날, 할머니는 엄마를 대신해서 지은이 운동회를 가기로 하고, 소시적 얼마나 힘이 셌는지 빨리 달렸는지를 과시합니다. 오늘은 숨겨둔 춤 실력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달리기가 시작되고 지은이 가슴은 콩닥거립니다. 그러나 잘 달린다고 자신하던 할머니는 꽈당 넘어져서 지은이는 꼴등을 했습니다. 시무룩한 지은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할머니에게 다시 젊어질 수 없냐고 떼를 쓰고 할머니는 지은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시고, 엄마 아빠를 위한 반찬을 사서 지은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하루종일 고생한 엄마 아빠를 위해 저녁상을 그득 차리십니다.
화면 가득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그린 화사한 그림은 지은이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보여줍니다. 인물은 작고 주변 사물은 크게 그려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고, 지은이의 머리 모양은 지은이의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면서 글의 분위기를 이끌어줍니다. 할머니와 지은이의 일상은 시끄럽고 분주하지만, 부드러운 색연필 스케치는 이런 분주한 일상을 유쾌하고 즐거운 일상으로 변화시킵니다. 수영하는 고등어, 지은이만큼 키 큰 콩나물 꽃밭, 비행기처럼 거대한 닭처럼 할머니와 지은이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면서 우리도 할머니의 이야기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할머니의 뜰에서』
조던 스콧(글), 시드니 스미스(그림), 김지은(옮김)|책읽는곰|2023년|48쪽
아빠가 매일 새벽에 나를 바바(폴란드어 할머니)의 오두막집에 데려다주면 나는 분주히 아침준비를 하는 바바의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춤추듯 움직이고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요리하는 바바. 나는 가만히 요리를 준비하는 바바를 바라보며 아침밥을 기다립니다. 바바가 주는 아침 밥그릇은 수영장처럼 커서 가끔 그 안에서 헤엄을 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의 배고픔을 겪은 바바는 내가 음식을 흘리면 주워서 입을 맞추고 다시 내게 줍니다. 나는 바바가 요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바바는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볼을 어루만지고 배시시 웃으며 서로를 느낍니다. 비오는 날 학교를 오가며 바바와 나는 지렁이를 주워 와 바바의 텃밭에 내려놓고 흙으로 잘 덮어줍니다. 나는 지렁이가 흙 속에 공기와 물을 전달하며 더 기름진 흙으로 만들어 준다는 작은 지혜를 바바에게 배웁니다. 이제 바바는 복도 끝, 내 옆방에 누워있습니다. 나는 텃밭 대신 바바의 창가에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바를 위해 빗속으로 나가 내가 주울 수 있는 모든 지렁이를 줍습니다.
조던 스콧의 두 번째 자전적인 이야기인 <할머니의 뜰에서>는 폴란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의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영어에 서툰 할머니와 작가는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마치 ‘강물처럼’ 몸으로 손으로 웃음으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시드니 스미스의 불투명물감의 아른거리며 번지는 빛과 색은 말 없는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선명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두 사람의 대화와 사랑이 물감을 따라 강물처럼 퍼지며 스며들듯이 전해집니다.
『우리 다시 언젠가 꼭』
팻 지틀로 밀러(글), 이수지(그림·옮김)|비룡소|2022년|48쪽
지금 당장 만날 수 없고, 안을 수 없고, 함께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보고 싶은 할머니. 아이는 ‘딱 바로 지금’ 할머니가 보고파서 로켓을 타고, 추진기를 메고, 아니면 투석기를 써 서라도 높이 날아 할머니 집으로 가고픈 마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도 가야 하고, 축구도 해야 하고,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데려다주실 수 없으니 지금은 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가 없습니다. 대신 팬케이크나 프레츨처럼 납작하고 배배 꼬여 편지봉투 속 편지로 배달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니면 전화를 걸어 할머니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컴퓨터를 켜고 온 방안을 보여줄 계획도 세워봅니다. 할머니가 컴퓨터 모니터로 고양이 ‘구름’이랑, 방금 차린 저녁밥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할머니에게 안길 수 없으니 내 사랑을 모아서 편지도 전화도 계획도 세워 할머니께 보내봅니다. 내가 만나러 가면 깜짝 놀랄 할머니를 생각하며 오늘도 마법의 주문을 외워봅니다. ‘우리 다시 언젠가 꼭!’ 만나요~
아이는 조잘거리며 할머니에게 조르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그림작가는 할머니를 만나고픈 아이의 바램을 색의 변화와 입체컷의 모양 변화를 통해 표현합니다. 접지면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다른 색깔의 공간에 존재하고, 할머니가 존재하는 공간은 노란색의 포근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빗물, 창문, 컴퓨터 모니터 모양으로 뚫린 입체컷은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동그란 모양은 서로를 바라보는 망원경으로, 빗물은 그리움의 눈물로,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 속 그림은 평소 할머니와 아이가 나누던 일상을 보여줍니다. 입체컷으로 분리된 앞장과 뒷장의 그림은 나와 할머니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물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뚫린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보면 할머니를 직접 만지는 듯한 친밀한 효과를 가져와 할머니와의 만남을 더 기다리게 합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유주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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