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은 힘이 셉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제 앞가림조차 버거워하던 사람이 아이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가 되는 순간, 그들의 겨드랑이에는 ‘책임감’과 ‘가장’이라는 두 날개가 돋아납니다. 한 번도 날아보지 않았지만 날아올라야만 하는 사명을 안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와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는 역할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하는 ‘짐’인 동시에 ‘힘’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이기 전에 그들도 ‘한 사람’이기에 기댈 언덕과 함께 걸어갈 동지가 필요합니다. 나이 들고 병들면 더욱 그러하지요. 한평생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젠 우리가 따뜻하게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지음 | 키위 북스 | 2021년 | 49쪽

소박하지만 단정한 옷차림,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힘껏 쥔 손, 잘 닦고 손질하여 반짝반짝 빛이 나는 자전거와 연장 가방을 단단하게 묶은 줄, 일터를 향하는 아버지의 건장한 모습으로 꽉 찬 표지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표지를 넘기면 바로 만나는 작은 흑백 가족사진 한 장. 아버지의 연장 가방을 가득 채운 것은 가족,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사 현장에 나가 목수 일을 배웠습니다. 친구 분의 소개로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는 깜깜한 새벽에 나갔다가 어둑해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평생을 목수 일로 고생한 아버지의 말년에 문득 찾아온 파킨슨 병은 참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가방을 가득 채운 연장 그림은, 그 세밀함과 단단함이 아버지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등이 휠 정도도 힘껏 대패질을 하는 아버지의 손과 비 오듯 쏟아내는 땀방울 앞에서는 울컥, 눈물이 솟구칩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은행잎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어느덧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여 늙고 병들고 힘없이 앉아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문수 작가는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연장 가방에서 망치와 톱 같은 아버지의 연장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림책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가족을 위해 저마다의 ‘연장가방’을 마련하셨던 아버지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고 싶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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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글 이호백, 그림 이억배 | 재미마주 | 1998년 | 30쪽

튼튼한 발로 땅을 힘차게 딛고 있는 수탉 표지를 넘기면 모란꽃이 가득한 면지와 만납니다.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 방을 수놓던 풍성한 모란꽃 벽지가 떠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 더 센 수탉을 만나 낙담하고 술로 애환을 달래는 모습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자화상으로 다가옵니다. ‘나 때는 말이야’, 지나간 세월을 읊조리면 당장 꼰대 취급을 받고 외면 받기 십상이지만, 아버지 세대가 지키고 버텨준 덕분에 지금 세대는 보다 나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억배의 그림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색감과 정서를 듬뿍 담고 있어 따뜻하고 친근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미감을 보여 줄 방법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 닭 농장을 찾아다니는 한편, 토종닭 특유의 당당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박물관과 옛 화집을 뒤져 주인공 수탉의 이미지를 정하고, 전통 한지와 전통 붓과 동양화 물감으로 채색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한바탕 싸움을 하고 멍든 눈을 달걀로 문지르는 수탉의 소싯적 모습, 힘센 수탉과 겨루느라 눈을 꼭 감고 바들바들 안간힘을 쓰는 상대 수탉 등은 웃음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이렇듯 숨겨진 유머와 익살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국내를 넘어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은 이 그림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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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손』,

최덕규 그림책 | 윤에디션 | 2020년 | 40쪽

윤에디션에서 펴낸 최덕규 작가의 《커다란 손》입니다. 책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손을 펼쳐야만 그림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펼치면 아버지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미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면 커다란 손이 다시 책을 감쌉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유독 ‘손’을 이야기 합니다. 거칠어진 손, 늙어 주름 진 손. 아마도 아버지로서의 삶의 궤적이 손에 묻어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작가 최덕규는 자전적 이야기를 아버지의 커다란 손에 그렸습니다. 글이 없는 그림을 넘기면 잔잔한 감동이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아들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이 그림책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커다란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본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커다랗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처진 눈꼬리에 꾸부정한 어깨, 텅 비어가는 정수리를 가진 노인만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만은 여전히 커다랗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주름진 손등에는 살아온 지난날이 굳게 새겨져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됩니다.
이 그림책에는 딱 한 문장만이 존재합니다. ‘아버지의 손은 커다란 손입니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은 커다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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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

미카엘 두독 데 비트 지음, 김미리 옮김 | 이숲 | 2013년 | 32쪽

부모는 곁에 있는 자식을 그리워하지만 자식은 떠난 부모를 그리워합니다.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그림책 <아버지와 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녀 이야기의 단골 소재이지만 아버지와 딸 이야기는 생경하기만 합니다. 감독이자 저자인 미카엘 두독 데 비트는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딸의 인생을 갈색톤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딸이 남겨졌고 딸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에 묻고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노인이 된 딸은 아버지와 헤어졌던 둑에서 마침내 아버지와 만납니다.
떠난 사람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남겨진 딸은 우정도 사랑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리움이 사무쳐 아버지와 헤어진 둑으로 향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지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와 딸의 거리는 점점 멀어집니다. 이제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딸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있습니다. 그때서야 뒤돌아보면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젊어진 딸이 떠나간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지금 곁에 아버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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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김명희, 유수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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