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를 마치고 되돌아오면 늘 우리를 따뜻한 온기로 맞아주는 ‘가족’. 때론 미움과 갈등으로 서로의 짐이 되기도 하지만 함께한 시간과 추억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며 인생의 시간을 따라가는 가족의 여정 ‘동행’, 엄마에게 딸이 전하는 자연의 선물 ‘마르그리트의 공원’,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빠와 아들의 일상 ‘벤치’, 음식으로 가족의 아픈 추억을 담아내는 ‘물냉이’를 소개합니다.
『동행』
우유수염 글.그림|단비어린이|2022년|48쪽
책 표지엔 벽에 걸린 가족사진과 소파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불이 꺼진 소파에 앉은 남자는 늘 혼자였어요. 어느 날 불이 환하게 켜지며 새로운 사람이 나타납니다. 둘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죠. 둘은 셋이 되고 소파에 오래 머뭅니다. 같은 듯 다른 날이 반복됩니다. 응원하는 날도, 걱정하는 날도, 믿어 주는 날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독립하자 가족들은 자주 집을 비우고 다시 남자는 혼자일 때가 많습니다. 소파 역시 “저기요, 누구 없어요?” 하고 어둠 속에 외쳐봅니다. 가족이 북적일 땐 귀찮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막상 그들이 떠나고 홀로 남겨지자 외로웠던 탓입니다. 어느 날 잠겼던 문이 열리고 가족들이 돌아옵니다. 그러다 알게 되죠.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것을. 이 그림책은 한 남자가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소파의 시선으로 그립니다. ‘불이 꺼지면’ 의 작가 우유수염은 이번엔 불빛으로 가족의 온기를 이야기합니다. 아빠가 된 작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의 의미와 인생을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1인 가족, 조손 가족 등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족의 다양한 형태 속에도 동행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파와 남자는 외로움 속에도 늘 가족은 함께였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습니다. 그리고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외롭던 날도 행복한 날도 늘 함께여서 동행하며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는 것도. 소파에 앉을 틈도 없이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사진을 찍는 장면은 뭉클함과 동시에 우리를 미소짓게 합니다. 소파 위엔 늘 가족사진이 함께였으니까요.
『마르그리트의 공원』
사라 스테파니니 글. 그림|정혜경 옮김|사계절|2022년|32쪽
마르그리트는 혼자서 공원에 갑니다. 한참을 머물며 나무와 나뭇잎을 보고 바람을 만집니다.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기도 하고, 개와 개 주인의 닮은 점을 관찰하기도 해요. 이 모든 것이 몸이 불편한 엄마에게 공원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라도 빼먹거나 잊지 않습니다. 엄마는 공원의 곳곳을 그리워하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공원의 흙을 담아 집으로 옮겨오는 겁니다. 마르그리트는 갔고, 왔고, 채웠고, 비웠어요. 드로잉과 크로키 기법으로 표현한 아이의 분주한 발과 옷차림의 변화는 많은 시간의 흐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락방 바닥이 흙으로 채워진 날, 씨앗을 심기 시작했어요. 씨앗이 싹을 틔우고 새싹이 자라나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었지요. 색색의 나뭇잎과 바람도, 발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이 찾아왔어요. 개들도 함께. 2020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사라 스테파니니가 처음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은 세련된 기법과 아름다운 색감으로 이야기와 풍경을 감쌉니다. 작가는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배경에다 연필 드로잉과 수채화로 그린 캐릭터들을 콜라주 했다고 해요. 가끔씩 등장하는 반쪽의 흰 공간은 그림에 숨을 불어넣어 꿈이 어떻게 현실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강렬한 빨강과 차분한 연두의 대비 속에 연필 선으로 스케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포개져 마냥 멋스럽습니다. 가로와 세로의 선들과 두껍게 칠한 물감으로 그려진 나무들, 색연필로 칠해진 옷들은 자꾸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딸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경청하는 엄마의 눈빛은 우리의 마음마저 위로합니다. 엄마를 위해 공원을 선물하는 딸의 예쁜 마음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색으로 향기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벤치』
서식스 공작부인 메건 글.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김문주 옮김|다림|2021년|40쪽
제목처럼 면지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벤치가 가득합니다. 아빠와 아들의 다양한 일상 속엔 언제나 벤치가 있는 까닭입니다. 갓난아기를 안은 아빠의 모습과 함께 ‘이곳은 당신과 우리 아기를 위한 삶이 시작될 당신의 벤치에요.’ 하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책장을 넘기면 분홍 꽃이 가득한 나무 옆에 부자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자신의 몸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잠든 편한 아빠도 있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며 아이가 달리다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게 돕기도 하고, 첫 시작을 든든히 응원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일로 헤맬 땐 스스로 길을 찾게 이끌어주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 벤치에 앉아 있죠. 당신의 무릎 위에 앉아 엉엉 울 때는 아이의 슬픔에 공감하고 말없이 안아줍니다. 아이는 행복도 슬픔도 느끼게 되겠죠. 그러면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사랑해’라고 속삭여 줍니다. 이곳은 기쁨을 축하하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아빠와 아들의 벤치이고 집이라 부르는 바로 그곳입니다. 이 책은 엄마의 시선으로 아빠와 아들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을 관찰합니다. 영국의 공작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메건의 첫 번째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아들인 아키가 태어난 아버지의 날에 남편에게 적어준 짧은 시가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빠와 아들의 일상이 벤치를 배경으로 따뜻하게 담겨집니다. ‘행복을 나르는 버스’로 뉴베리상과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로빈슨은 독특한 기법과 함께 처음으로 시도한 수채화로 한 장 한 장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따스함을 전해줍니다. 다양한 나라의 아빠와 아들의 모습과 각양각색의 벤치를 멋진 배경과 함께 환상적으로 그려 냅니다.
『물냉이』
안드레아 왕 글. 제이슨 친 그림|장미란 옮김|다산기획|2022년|32쪽
이 그림책은 2022 칼데콧 메달과 뉴베리 영예상을 동시한 수상한 작품으로 미국계 중국인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아냅니다. 도로를 달리던 가족은 길가에 물냉이를 발견하고 차를 세웁니다. 반가워하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소녀와 오빠는 마지못해 물냉이를 뜯습니다. 부모님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것을 담아내지만, 남매는 차갑고 물컹거리는 도랑물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진흙과 달팽이가 묻었던 낯선 물냉이가 식탁에 오르자 소녀는 먹고 싶지 않습니다. 공짜라 더더욱 싫습니다. 팔짱을 낀 채 눈썹이 한껏 올라간 소녀의 모습에서 절대 먹지 않겠다는 거부의 각오가 엿보입니다.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오래된 사진과 함께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중국에 살던 가족 이야기를 해줍니다. 바로 힘들고 어려웠던 중국 대기근 속에 남동생을 잃은 슬픈 추억이었습니다. 외삼촌의 사진과 물냉이를 번갈아 보던 소녀는 가족을 부끄러워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매콤하고 톡 쏘고, 아릿하고, 은은하면서 쌉쌀한 물냉이 맛이 마치 엄마의 추억처럼 전해옵니다. 비로서 가족은 음식을 통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물냉이는 추억이 지니는 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 이민자의 자녀로 작은 백인 마을에서 자랐던 안드레아 왕은 이민자의 소외감과 열등감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가난 속에서 형제를 잃고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기억을 자신에게 들려주었다면 가족을 이해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리라 아쉬워합니다. 또한, 자녀에게 추억을 나눠주라고 당부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문화유산을 그림에 녹여내고 싶었던 제이슨 친은 서양과 중국의 붓을 동시에 사용해 수채화로 그려냅니다. 황토색과 푸른색을 사용해 여러 겹을 발라 은연중에 추억을 표현합니다. 은은하게 풍기는 쌉살한 물냉이와 함께.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배수경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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