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화가 그림책으로 돌아오다.

 

어릴 적, 언젠가 읽었던 동화가 세월이 지나 그림작가의 손에서 재탄생해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돌아온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림작가는 몇 십 년 전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기도 하고 우리를 그 과거의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생생하게 안내하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 자녀나 손자손녀에게 동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읽어주고픈 반가운 그림책 몇 권을 소개합니다.



『고양이』

현덕 글, 이형진 그림|길벗어린이|2000 | 28쪽

현덕은 1930년대 ‘노마’가 등장하는 여러 편의 동화를 창작합니다. 노마, 똘똘이, 영이의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과 노마와 친구들의 놀이하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게 표현한 노마이야기 연작은 ‘놀이하는 아이 노마’라는 독특한 아동 인물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노마’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러 작가의 동화에서 대표적 주인공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동화책 『고양이』에서도 노마와 친구들은 고양이가 된 것처럼 야옹야옹 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고 어머니 몰래 북어를 먹다 들켜 혼이 나면서도 즐겁게 도망치며 놉니다. 그림책 『고양이』에서는 고양이를 흉내 내며 놀고 있는 노마, 똘똘이, 영이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아이들의 그림자를 고양이 형상으로 그려 마치 아이들이 고양이같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하였고, 노마와 친구들의 얼굴 표정과 몸짓, 움직임은 선이 굵은 검은색 연필스케치로 그림책 전체에 가득차고 강렬하게 그린 반면 고양이 모양의 아이들 그림자는 옅은 색 물감을 사용하여 선과 색의 대비 효과로 아이들의 표정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더욱 부각됩니다. 작가가 창작한 독특한 아동 인물은 그림작가의 손끝에서 더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표정과 움직임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면서 고양이처럼 온 집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즐겁고 자유롭게 놀고 있는 아이로 독자에게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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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길벗어린이|2001 | 36쪽

이주홍 작가의 『메아리』는 아버지, 누이 그리고 누렁 암소와 먼 외딴 산골에서 사는 소년 돌이의 이야기입니다. 외딴 산골에서 소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말 상대 동무는 누이와 메아리입니다. 어느 날 누이가 산 너머 먼 마을로 시집을 가고 혼자 남은 돌이는 돌아오지 않는 누이를 그리워하며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게 됩니다. 돌이를 찾은 아버지는 돌이에게 집에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소년은 그 반가운 소식을 누이에게 전하기 위해 산꼭대기로 올라 소리를 지릅니다.
김동성 그림작가는 외딴 산속에 살면서 누이마저 시집가 외로운 소년의 심정을 한 폭의 산수화 속에 그려놓은 듯합니다. 소년의 외딴집은 풍경화 속 한 점처럼 작고 멀리 그려지고 누이를 찾아 헤매는 소년의 모습도 깊고 깊은 산 속에 덩그렇게 놓여 소년의 외로움과 아픔이 더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송아지가 태어난 기쁜 소식을 누나에게 전하고파 메아리를 외쳐보는 소년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집니다. 소년의 외로움과 슬픔, 기쁨은 한 폭의 풍경 속에 스며들 듯 담담하게 그려져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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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 황소』

현동염 글, 이억배 그림 | 길벗어린이 | 2003 | 32쪽

70년 전에 쓰여진 현동염의 <모기와 황소> 입니다. 우화는 시대를 떠나 삶의 가치를 전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힘만 믿고 우쭐거리는 모기와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곁에 있는 작은이들과도 잘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황소의 이야기입니다.
파리와 모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힘없는 작은이와 나누는 황소를 어리석다 생각합니다. 묵묵히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황소를 ‘모지리’ 취급하는 모기와 파리를 보면 자신이 가진 권력에 취해 우쭐대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이 글이 쓰인 때나 지금이나 이웃과 나누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오래전 글과 어우러진 이억배의 세밀한 그림은 실감은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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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밭 달님』

권정생 글, 윤미숙 그림 | 창비 | 2017년 | 44쪽

방 한 칸, 부엌 한 칸. 사과나무밭 사이에 필준씨와 어머니 안강댁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남편을 대신하여 홀로 필준씨를 키우다가 전쟁을 겪고 정신을 놓아버린 안강댁과 평생 어머니의 어린 아들로 살아가는 필준씨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입니다.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 가난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가난이 추억거리가 되는 때는 아니지만 가난이 행복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사과나무밭 달님>의 마지막 장면은 노오란 저고리를 입은 안강댁과 엉덩이를 기운 바지를 입은 필준씨가 손잡고 걸어가는 뒷모습 입니다. 어머니의 노오란 저고리와 필준씨의 둥그렇게 기운 엉덩이가 서로 손 잡으니 사과나무밭에 떠오른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그들처럼 손 맞잡고 걸어간다면 소중한 행복의 순간을 잃지는 않겠지요. 깊은 팔자 주름을 가진 필준씨의 배시시 웃음띤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그림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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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유주현, 유수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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