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주는 위로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 삶보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젊은 날에 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서 모든 답을 찾고 대처했던 젊은 날의 시간이 지나니, 현실 너머의 보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삶 너머를 생각하다 과학을 접하고, 명상을 접하다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종교를 접한다. 걷기 명상을 다룬 책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홀로서기를 다룬 책에서 노년의 삶을, 상실과 이별을 소재로 쓴 책에서 여러 번 읽은 문학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롭게 만났다. 그리고 우리 모두 맞이할 죽음을 생각한다.



1. 『어떻게 걸어야 하나』

박승옥 ∣ 기적의 마을책방 ∣ 2024년 ∣ 272쪽

죽음을 살펴보려 접한 종교는 삶의 영역에 더 가깝고, 죽음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과학이 그 언저리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듯, 걷기에 관한 책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 깨달음과 명상에 대한 내용으로 그득하다. 이처럼 내가 예측하는 것들이 어긋나는 경험은 흔하다.
이 책은 부처님 말씀을 작가가 이해한 대로 풀어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또 과학과 접목되어 글쓴이가 고민하고 깨달은 바도 자세하게 언급된다. 예를 든다면 ‘우리 몸(色)은 세포들이 모여 이루고,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공간이고, 그런 공간(空)에 세포들이 모여져 다시 몸을 이룬다. 뇌과학과 양자역학이 발달한 21세기는 2천6백 년 전 붓다 시대에 말한 부처님의 원리를 더 이해하게 한다는 설명과 함께 부처님 말씀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언급한다. “뇌과학에서 ‘자아’란 언어로 구성된 서사(story)의 집적물로 보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온(五蘊)이 언어로 구성된 개념일 뿐”이라는 2천6백 년 전 부처님 말씀이 지금의 과학과 어떻게 접목되는지 연결하는 식이다. 지은이도 평생을 거쳐 알고 깨달은 바라 읽는 내가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될 듯하거나 마음에 남는 부분을 짚자면.

“붓다는 늙어 죽음은 왜 생기는지 그 발생 원인이 되는 조건을 탐구해 나가다가 마침내 명색(名色, 빨리어 namarupa)과 식(識, 빨리어vinnana)이 상호의존하면서 끝없이 계속 언어로 된 오온의 구성물을 낳고 쌓아가고 있음(集)을 보고 살피고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붓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해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것이고, 그러면 이치에 맞게 통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언어로 구성된 자아(五蘊)가 언어로 세상을 분별하는 것, 그것이 명색이고, 결국 늙어 죽음, 태어남, 자아 등은 모두 언어의 개념일 뿐이다.”(책 130쪽~134쪽)
“언어야말로 붓다 깨달음을 꿰뚫어 이해하고 실천하는 핵심 열쇠라고 보았다. (신석기 혁명과 인류 문명의 대도약에서부터 인간 지능의 폭발, 농업의 발견과 국가 형성, 문명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핵심 열쇠도 언어고, 21세기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LLM)의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 또한 언어다)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사성제를 이해하고 연기법을 꿰뚫어 알고 그러면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 뿐인 삶의 기적 같은 현존이 오롯이 드러난다.”
“우리는 걸으면서도 사실은 걷고 있지 않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걸어가고 무의식의 흐름이 걸어가고, 근심 걱정이 걸어가고, 후회가 걸어가고, 내일의 과제가 걸어가고, 탐욕이 걸어가고, 성냄이 걸어가고, 어리석음이 걸어간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걷기명상」은 걷기 방식을 바꾸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고 받아들였다. 기적 같은 지금 여기 내 삶이, 걷는 기쁨을 선물 받아서라고 이해했다. 부처님 말씀을 좀 더 안다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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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홀로서기 심리학』

라라E 필딩 ∣ 메이븐 ∣ 2020년 ∣ 267쪽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자로, 자신이 진행한 상담 경험을 녹여 설득력 있게 글을 전개한다. 마음이 힘들어 심리학 서적을 마구 읽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의문으로 가득했던 내 마음의 안개가 걷히는 듯한 책을 만나면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젊은 날의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왜 이리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고, 나의 세세한 감정을 들여다볼 줄 몰랐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감정의 구성 요소(상황과 사실, 생각. 감정. 신체 감각. 행동, 충동)로 구분했을 때, 상황과 사실을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았고, 나의 생각 역시 살펴보지 않았다. 내 감정을 두려워했으며, 신체 감각을 외면했다. 단지 감정은 누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오늘 당장 할 일에 집중했다.
이 책에서는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의 90%는 당신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홀로서기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홀로서기를 내 노력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방향과 이미 거리가 멀다. 이런 말도 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도 과거에 살아 내려고 애썼던 행동이 습관화된 결과물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홀로 설 수 있고, 내 행동은 내가 겪은 상황에서 형성되었음을 알아차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저자가 말하는 ‘홀로서기’를 내 경우는 나이 50이 되어서야 시작했지 싶다.
난 여러 가지 일을 겪어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나 정도의 상황은 엄살을 부리면 안 되는, 그저 평범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내가 한 생각이 아니라 교육된 생각이다. 따라서 내 생각은 온통 다른 사람의 생각에 지배당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 결혼해서는 남편, 그리고 내 아이들로 이어져 내려왔다. 내 감정은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이 두려워 생각을 멈추고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했다. 해서 나는 늘 신경성 장염으로 배가 아팠고, 그 배 아픔이 일상이 되어 보통 사람이면 드러누워야 할 고통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익숙하면 참을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으니 더 인내할 수 있을 뿐이다. 인내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 손해가 안 나는 쪽으로 대부분 마무리가 된다. 그러니 행동 충동은 극도의 절제로 대부분 좋은 결과를 주는 듯했다.
마음이 답답해 찾아 읽은 심리학 서적이 때론 책 내용을 잘못 해석해서 내 생각을 더 공고하게 할 수도 있음을 나는 경험했다. 젊은 날 이 책을 읽었다면 어쩌면 나는 ‘홀로서기’를 잘못 이해했을 것 같은 책이었다. 물론 흔히들 자신을 독려하거나 자기 연민을 정당화하라고 말하고는 그 깊이가 달라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의 전부는 못 느꼈을 것이다. 해서 지금의 나는 심리학 책을 함부로 권하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기질도, 성격도, 처한 환경도, 상황도, 인간관계도 너무도 다르기 때문임을 깨달아서다. 이 책 저자의 오랜 고민을 알아차리고 깊이를 느끼려면 내 고민 역시 깊이 있게 해야 한다. 다 내 탓이거나, 다 남 탓일 수 없음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음이 가장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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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민음사 ∣ 2001년 ∣ 279쪽

김형경의 <좋은 이별>이라는 책에서 애도와 상실의 사례로 문학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의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사례가 나온다. 어린 시절 동생을 병으로 잃고, 그가 느낀 상실과 애도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해, 그의 방황과 혼돈을 더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불합리한 학교 시스템이나 어른들의 가식을 통쾌하게 비웃는 콜필드를 응원하거나 불안해하며 읽었던 것 같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읽었을 때는 청소년기의 방황과 혼돈에 집중해서 이해했다. 콜필드가 동생을 병으로 잃고 지하의 모든 유리를 손으로 깨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3일 동안에도 여동생 피비를 계속 언급하는 등,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의미를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주인공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심연에 동생을 잃은 상실과 애도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다시 읽어 본 이 책은 주인공의 시종일관 냉소적 말투와 행동, 세상을 향한 분노와 방황 등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비야냥거리며 묘사한 스펜서 선생의 꼰대 같은 충고, 백 년을 살았을 것 같다고 말한 교직원의 우스꽝스러운 행동 등. 청소년 시기의 반항적 사고와 어투가 비죽거리며 읽게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는지 콜필드가 비야냥거린 대상이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의 사람임을 눈치채고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처럼 같은 책도 읽는 시기나 상황에 따라 너무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진다.
나는 책을 읽는 시기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혹시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조차도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자고 말이다.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절망의 크기만큼이나 위로를 주었다 해도 그 절망의 크기는 줄고 위로 역시 줄어들 수 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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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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