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이 존재감을 뿜뿜 뿜어내고 있다. 이런 날은 통 큰 창 옆, 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는 행복함을 누리고 싶다. 더구나 그 창 너머로 봄꽃이 피어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다행히 요사인 그런 도서관과 멋진 서점이 제법 있다. 책과 서점과 도서관의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히말라야 도서관』
존 우드 ∣ 세종서적 ∣ 2014년 ∣ 310쪽
도서관이 훌륭한(?)곳을 탐방하고 배우고자 하는 맘이 왕성했던 10년도 전에, 히말라야 고지에 도서관을 만들고 네팔, 인도, 배트남 등 주로 오지에 1800개의 학교와 16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참 대단하다 그렇게 지나쳤다. 그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제야 책으로 접한다. 그리고 새삼스레 사람의 역량에 전율을 느꼈다. 타고난 에너지가 있겠지만 그 에너지의 방향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인류의 기여도가 결정될 거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의 중국 지사 이사로 잘 나갔던 저자 존 우드가 히말라야 오지에서 학교를 방문한다. 그곳의 열악함에 충격을 받아, 책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기까지 그의 열정과 감회, 그의 에너지는 자선단체인 룸투리드(room to read) 설립으로 이어지고, 자선사업을 넘어서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이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으로 저자의 철학과 실천이 잘 드러나 있다.
훌륭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접하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그 대단함에 감동이 되고 한 편으로는 내 삶에 대한 성찰이다. 학교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던 나에 비해, 실천에 옮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데 실천의 결과를 접하게 되면 그 영향력에 압도된다. 작은 눈덩이를 꾹꾹 눌러 뭉쳐 정성스레 굴리면, 어느새 속도가 붙으면서 큰 몸통이 만들어진다. 소복하게 쌓인 눈이 몸통의 크기를 결정하지만 그 작은 눈덩어리를 뭉쳐 굴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소복한 눈이 있어도 멋진 눈사람은 완성이 안된다.
우리의 도서관이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모습으로 새로 지어지지만 이제 더 이상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기적을 이뤄낸 사람들의 작은 눈덩이 덕이다. 룸투리드(room to read) 재단에 의해 세워진 세계 오지의 학교와 도서관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고 그 이후의 일은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기적 이전의 모습은 잊어버린 채. 하지만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시 또 다른 기적을 꿈꾼다. 다음에 소개할 책은 도서관의 또 다른 기적을, 정치인을 움직여 계속하자고 주장하는 책이다. 기적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소개한다.
『도서관 민주주의』
현진권 ∣ 살림출판사 ∣ 2021년 ∣ 195쪽
책에 관한 책, 도서관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제목부터 도전적인 이 책은 매우 얇았다. 저자 역시 도서관 관련 책을 낸 사람치고는 도서관장을 했다는 경력 빼고는 특이했다. 20년 넘게 학교도서관과 인연을 맺고 학교도서관 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변화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 책 내용에 너무나 공감이 가서 소개를 안 할 수가 없다.
저자의 주장 중에 정치인들이 좋은 도서관을 짓게 하자는 말은 현재 우리에게 현실적인 설득력이 있다. 20년전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책을 다루고, 그 반향으로 기적의 도서관을 지을 때는 딱 그 시기에 걸맞는 캠페인이었다. 그 성과는 대단해서 지금의 도서관이 정말 기적처럼 지어졌고, 그 기적은 풍선효과가 되어 이제는 도서관이 책만 있는 공간에서 복합건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시작도 기적 같았지만 확장되어가는 과정이 더 기적 같아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독서운동가들조차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제는 북유럽에서 보았던 꿈의 도서관이 우리 가까이에 지어지고는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도서관을 소개하고 내가 사는 마을, 내 일상을 함께 할 이런 도서관이 더 지어지려면 정치인을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성을 담보한 정책을 그들이 펼치도록 우리가 자극하자는 것이다. 지구 환경을 망쳤던 기업들이 환경을 지키는 길이 이득이 되는 시점에 되자 환경운동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으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공공재의 경제학적 정의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재화’를 의미한다. 무료로 사용하는 공공도서관은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는 사람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으므로 공공재라는 주장, 깊이 공감한다.
덤으로 시장경제주의자인 저자가 눈여겨 본 명품 공공도서관과 사립도서관의 소개 부분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 도서관의 의미도 생각하고 기회를 만들어 그곳 도서관에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선진국 도서관을 탐방하며 부러웠던 것은 그 건물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도서관이 마을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도서관을 모르면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 과장만이 아님을 우리가 자각한다면 더 좋은 도서관을 짓는데 정치인들이 노력할 것이 분명하고, 지어진 도서관에서 마을과 결합하고, 시민이 함께해서,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싹트고 열매를 맺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이 책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도서관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방향을 잡아서 실천할 수 있을지 제시하고 있다. 독서운동가들이 주목해야 하고 시민들이 읽어야 할 내용이다.
『노란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 문학동네 ∣ 2009년 ∣ 296쪽
부제목에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요사인 서점 탐방을 하고 쓴 책도 있고, 제주도의 경우 독립서점을 탐방하도록 지도도 만들어져 있으니 별반 특이할 것이 없겠다 싶지만 이 책이 출간된 년도가 2009년이고 이 저자의 나이와 이력을 보면 단박에 이 책이 예사로운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우선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로, 직업으로 서점에서 일하며 출판사 외판원으로도 17년을 일했다. 그리고 여전히 일주일에 다섯 번은 서점에 간다고 하니 책 사랑이 대단하다. 출판사 외판원은 지금은 낯설고 없어진 직업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종사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출판업 역사가 책의 역사와 함께, 그 변천이 가지는 의미 등을 작가가 애정하는 책과 그 당시 출판된 책들도 함께 버무러져 소개되고 있다. 지독하게 책을 사랑한 작가의 시각이라 찐으로 그 감동이 다가온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글을 쓰고, 학문을 연구하고 사상을 이론화 한 사람들이 문화를 발전시키고 인류를 진화시켰음은 분명하다. 이 진화와 발전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이름도 기억해야 하지만 그들의 글을 읽고, 그 학문을 실천하고 사상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에 의해 세상이 굴러간다. 이 책이 그 대중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책이 좋아 서점에서 일하고, 외판원이 되어 책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열정을 잃지 않고, 책과 함께 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세세하고 찬찬하게 적은 이 책에서 나는 역사도 읽고 문화도 경험한다.
이 시대에 맞는 서점이 새로 생겨나고, 그 서점을 기웃거리며 책에 심취한 사람들이 여전한 지금, 잠시 옛 시간으로 거슬러 가서 지금의 책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시니어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게 다가가기라 생각하고 소개한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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