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다 주인공인 우리들 인생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도 있다. 내 경우 평안이 가까워졌다. ‘불안이 적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해질수록 불안의 크기는 작아졌다.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도 평안에 이르는 길이었고, 우리 모두가 내 인생에서는 주인공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도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주인공을 위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 또한 시선을 달리하면 그들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다. “누구나 저마다 별”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좋아 그런 마음이 들게 한 다른 책과 묶었다.


1. 『샛별클럽연대기』

고원정∣파람북∣2022년∣356쪽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절, 그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서사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60~70년대가 어찌나 생생하게 전개되는지 어른들의 침묵과 불안의 공기로 유신과 반공을 경험했던 나는 그 시절의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불안을 느꼈다.

이 소설은 교사로 퇴직한 문인호가 50년도 넘게 마음으로 품은 여인과의 조우로 시작된다. 반공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던 시절, 10명의 친구들은 각자 친일이나 월북, 혹은 그 반대편이었던 조부와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성장한다. 군가를 부르며 자라야 했던 시절,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든 학예회의 오페레타를 기획했던 강창성 선생은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쫒기게 되고, 그의 제자였던 ‘샛별클럽’ 10명은 반공교육을 받는다.

그들 중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학교를 떠나 깡패가 되고,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각자 일을 시작한다.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유신과 독재 정권에서 부당한 많은 일들을 겪으며 황량한 시절을 살아낸다. ‘샛별클럽’ 멤버는 각자 집안의 서사와 함께 그들이 치러야 할 몫을 견디면서 성장하는데, 문제를 푸는 방식도 풀리는 상황도 모두 다르다. 격동의 근대사는 누구라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는 반공 시대를 거쳐 얼룩진 현대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모두가 나름의 희생양이 되었다.

일찍 생을 마감한 미선, 삼청교육대에서 타깃이 되어 죽은 광천, 그리고 광천을 사랑한 영란, 반공소년 윤태는 정치 검사에서 국회의원, 그리고 거듭되는 낙선에 목사가 된다. 글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요섭의 죽음과 그의 선택은 격동의 세월만큼 허망하다.

소설 속 ‘나’는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서 친구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첫사랑 미혜, ‘나’는 미혜와 요섭이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고백조차 못한다. 그러다 미혜의 얼굴로 가득한 자신의 방을 친구들과 그녀에게 들키면서 첫사랑이었던 ‘나’의 순정이 드러난다.

20년이 훌쩍 지나, ‘나’는 우연히 미혜와 마주친다. 미혜는 그를 알아보았지만, 문인호(소설 속 ‘나’)를 찾아달라고 한다. 지금은 없는 요섭이 아닌, 나를 말이다. 잊거나 잘못 알아봐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잊은 적이 없다. 그렇게 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장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으니까 뭐라도 되는 것 같지만 긴 눈으로 보면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이말이에요. 비록 객석이라도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 바로 문인호 같은…..”

이 소설은 ‘나’의 시점에서 서술되면서도 정작 ‘나’는 자주 등장하지도 않지만, 결국 ‘내 이야기’이고 ‘내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찌 좋은 작품을 쓰겠는가?’로 작가의 오랜 공백에 대한 회한을 고백했다. 그리고 머리글에 이렇게 썼다.

“살아보니 모든 이들의 모든 삶이 다 경이롭고 존경스럽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말없이 견뎌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소설
#근대사
#현대사
#반공
#유신정권
#삼청교육대
#고원정


2.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문학동네∣2024년∣336쪽

“2020년대 한국문학을 밝힌 신성(新星)이다”, “범상치 않은 작가의 출현을 예고한다”,  “근래에 보기 드문 강력한 단단한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은 김기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이 가운데 「세상의 모든 바다」와 「로나 우리의 별」를 특별히 고른 이유는 스타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스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타를 좋아하고 응원봉을 흔드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

「세상의 모든 바다」속 그룹 ‘세상의 모든 바다’는 ‘BTS’, ‘블랙핑크’ 뒤를 잇는 아이돌이다. 티켓이 없어도 공연장 주변은 인산인해다. 팬들은 같은 마음인 사람들과 공감하고 교류하며, 스타와 가까이에서 호흡하길 원한다. 그런데 바라보는 스타 뿐만이 아니라 열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그들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팬덤이 형성되는 방식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스타와 함께 모두가 순간은 주인공이 된다. 한편, 영향력이 커진 스타는 때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류 전체의 큰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압력 속에 자신을 잃어가기도 한다. 그 가수를 좋아했던 팬도 ‘만들어진 가치’를 우선하기도 한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대중문화에서도 필요하다.

「로나 우리의 별」 에서도 ‘우리’라는 대명사가 반복된다. ‘모두의 스타’라는 대국민 오디션 으로 데뷔한 로나에게 유리구두를 신긴 것은 팬들이다. 로나는 ‘우리 모두의 별’답게, 이런 저런 시련을 잘 견디며, 미국 진출까지 성공한다. 그 성공 뒤에는 로나가 작사, 작곡은 물론 기획까지 해내는 아티스트로 성장한 점도 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팬덤이 영상 등을 업로드하며 함께 활동한 것도 크게 작용한다. 로나는 블랙핑크와 아이유를 합친 듯한 ‘우리 모두의 뮤즈’다. 단숨에 빠져드는 이 이야기에서 지금의 팬덤 문화가 이해된다. 5060세대의 독특한 문화로 ‘팬덤 문화’를 다룬 기사가 있을 정도다. 내 주변에도 스타를 좋아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시대건 스타는 존재했다. 그러나 점점 적극적인 팬덤이 그들끼리 공감하고 교류하면서 문화를 형성해간다.

이 작품은 스타와 함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배역에게 바치는 경의” 바로 당신의 이야기로 읽히길 바란다.

#단편소설집 #김기태
#스타
#팬덤
#블랙핑크
#아이유


3. 『시골책방입니다』

김중미 지음∣낮은산∣2016년∣279쪽

꿈꾸던 일을 자신의 현실에서 구현하고, 살고 싶었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책이 그런 내용이다.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왔던 저자는 자연과 사람을 좋아하고 음식까지 사랑한다. 기자 생활을 접은 저자가 자연 속에 책방을 짓고, 텃밭에서 기른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책과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글로 썼다. 주인장이 읽고 꽂아 놓은 책을 사기 위해 책방에 들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스치는 인연의 의미를 글로 옮겨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불과 몇 년 전, 다시는 마스크 벗는 세상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책이 있는 공간도 많은 변화가 있다. 공공도서관, 작은 도서관, 색깔 있는 책방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 책은 코로나, 그 시절 책이 있는 공간과 그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에세이를 읽는 내내 책방이 그려진다. 작가의 텃밭도 눈에 선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하는 작가가 보고 싶어, 자동차를 몰고 책방에 가는 나를 상상한다. 거기서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내가 평안하다.

나이를 먹으며 주인공으로 살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도 보듬고, 이제는 내가 주인이 된 나머지 생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만나는 사람이 줄어드는 노년기에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의 삶을 읽으며, 작가의 마당에 들어서서 그가 주는 행복감을 느껴보고 싶다.

#에세이
#시골책방
#임후남
 #코로나
 #힐링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60+책의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이미지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저작물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다운로드, 인쇄, 복사, 공유, 수정, 변경할 수 있지만, 반드시 출처(60book.net)를 밝혀야 합니다. (CC BY-N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