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독하게 추운 겨울 뒤에도, 어지러운 세태 속에도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길가의 발그레한 진달래, 노란 개나리가 꽃망울을 살포시 드러내고, 어느덧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누군가가 보여준 한결같은 삶이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그는 꼭 내 곁에 있어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봄, 우리는 누구에게 의자가 되어주고, 누가 나의 버스가 되어주려나요? 함께 할 때 서로를 지켜준다는 믿음의 이야기, 봄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1. 『행복을 파는 가게 라이프』
구스노키 시게노리 글, 마쓰모토 하루노 그림 | 북뱅크 | 2024년|32쪽


동네 변두리에 무인 상점 ‘Life’란 가게가 있습니다. 돈은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뜻있는 물건이지만 더는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는 쓰임이 될 것을 서로 교환하는 가게이지요. 어느 날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가 놓고 간 것은 ‘꽃 가꾸기를 무척 좋아했던 할아버지의 봄꽃 씨앗’이었습니다. 더는 할아버지가 가꾼 꽃밭을 볼 수 없는 슬픔에 기운이 없으셨어요. 할머니는 ‘추억은 영원히’라고 적힌 쪽지가 붙은 액자를 들고 가셨지요. 뒤이어 들어온 소년은 봄꽃 씨앗과 ‘즐겨 읽던 그림책’을 바꾸어 갔습니다. 유모차와 함께 온 부부는 ‘한 쌍의 커피잔’ 대신 그림책과 꽃씨를, 젊은 연인은 ‘편지지와 편지 봉투’와 커피잔 세트를 씨앗과 바꾸어 갔답니다. 그사이 봄은 살며시 다가왔고, 할머니는 ‘가을 꽃씨’를 갖다 놓기 위해 ‘Life’를 다시 찾았어요. 문을 연 순간, 할머니는 숨이 멎을 뻔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가꾼 꽃밭 앞에 선 것 같았거든요. 할아버지의 씨앗으로 피워낸 꽃들이 이웃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에 다시, 봄이 왔어요. ‘Life’는 각각의 인생이 배려와 사랑을 담은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곳입니다. 오는 봄, 우리 함께 힘이 될 이야기를 나누어요. 서로의 눈망울에 담긴 서로를 바라보며, ‘Life’에서!
2. 『의자』
이정록 시, 주리 그림 | 바우솔 | 2024년 | 40쪽


나는 누구의 의자일까? 나에게 의자는 누구일까? 첫 장을 넘기면 달리는 흰색 승용차 아래로 초록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어머니는 병원을 향하는 아들의 차 안에서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고 넌지시 건네십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의자에 비추어 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어머니는 참외도 호박도 식구라시며 지푸라기로, 똬리로 의자를 내어주십니다. 그 소박함이 다정스럽고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모습에 짙은 여운이 남습니다. 싸우지 말고 살라고, ‘사는 건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라며, 사랑하고 배려하고 살라고, 힘든 세상살이에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림책을 덮고 가만히 돌아보니, 나에게 첫 의자가 되어주신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 친구, 동료, 자연 등 수많은 의자가 떠오릅니다. 내 곁에 있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이제 나도 누군가가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내어보렵니다.
3. 『노란 버스』
로렌 롱 글, 그림 | 지양어린이 | 2024년 | 48쪽


『노란 버스』는 2024년 뉴욕타임즈 어린이 그림책 부문 베스트셀러 1위와 ‘올해의 책’에 선정된 화제의 책이에요. 노란 버스는 온마을을 환하게 비추며 돌아다녔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던 청년 시절에는 어린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즐거웠고, 세월이 지나자 노인들을 도서관에 태워드리며 행복했습니다. 낡고 바랜 노란 버스는 다리 밑의 외딴곳에 세워진 후 누구도 타지 않았습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요. 어느 추운 겨울밤에는 노숙자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그들의 도란도란 속삭임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나중엔 산골 농장의 풀밭에 옮겨져서 염소들의 놀이터가 되었는데 그들이 떠난 후,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굽이진 골짜기에서 강물이 차올라 노란 버스는 그만 물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노란 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렌 롱 작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 모형을 3.5미터가 되기까지 만든 후, 빛에 따른 사물의 그림을 세밀화로 그리는 작업을 합니다. 모든 페이지에 주인공인 노란색이 도드라지게 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물속 아래의 장면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연초록 강물 아래로 햇살을 받은 버스에서 연화가 피어오르듯 노랑이 번져나가는데 색색의 물고기와 어우러지는 모습에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삶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노란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습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4. 『아름다운 세상』
박학기 노래, 김유진 그림 | 스푼북 | 2024년 | 40쪽


“함께 있기에 아름다운 안개꽃처럼 서로를 곱게 감싸줘요”라는 노랫말처럼 안개꽃은 여러 송이가 모였을 때 더욱 화사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둘이 함께 힘을 모으지요. 아이들은 밤의 상징인 부엉이가 건네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여행을 떠납니다. 보호소의 강아지, 우리 속의 닭들과 독수리, 실험실에 갇힌 토끼와 거북이, 수족관 속의 돌고래를 도와 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넓은 하늘로, 푸른 바다로 돌려보내 줍니다. 그 여정 가운데 서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 ‘꿈이었나?’ 생각하다가 친구가 목에 걸어준 목걸이를 발견합니다. 간밤의 동물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강아지를 보며 현대 사회의 외로움을, 우리에 갇힌 독수리에게서는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감 등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노래가 좋아’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 주인공이고 소중할 뿐만 아니라, 서로가 힘을 모을 때 험한 세상살이에서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책 뒤에 삽입한 QR코드를 통해 노래와 함께 동물 친구들과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김정해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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