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휴식

 

소개하는 세 책을 묶어 표현할 주제를 정하는데 오랫동안 고민했다.
첫 번째 책, 박상영 작가의 『순도 100 펴센트의 휴식』에서 ‘휴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나지 않아 이 단어를 주제어로 선택했다. 왕성한 집필을 하는 유시민 작가의 『표현의 기술』 속, 작가의 주장은 숨 가쁜 달리기라면 정훈이라는 만화가의 만화가 쉬어가기 코너처럼 쉼을 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 『어른의 어휘력』은 제목부터 내 예상을 빗나갔고 한치의 쉼도 없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서도 휴식이 필요했다.
 


『순도 100펴센트의 휴식』

박상영 ∣ 인플루엔설 ∣ 2023년 ∣ 294쪽

『대도시의 사랑법』을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작가의 신작 에세이에 호기심이 생겼다. 박상영 작가가 대도시의 워커홀릭인 건 그가 짧은 시간에 쓴 책들이 증명한다. 그래서 그가 제목으로 단 휴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전투적인 여행 이야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 제주 최남단의 섬 가파도에서의 에피소드, 일반인으로 티비 여행 예능 도전기를 했던 자신의 열일 일상과 각별한 작가의 친구들 이야기다. 작가도 지적했듯 이 일상들이 ‘휴식’, 그것도 순도 100퍼센트라는 수식어는 어색하다. 하지만 나도 그렇지 않나 돌아보게 했다. 방학이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휴식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고 있지만, 사람마다 쉼의 정도와 의미는 다 다를 것이다.
“여행할 때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박상영은 다시 한번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매번 여행을 떠난다 고백했다. 작가는 누구보다도 수줍어하면서 예능에 나와 자신의 수줍음의 매력을 발산하고, 그의 글은 언뜻 보면 ’열심히‘라는 단어와는 멀어 보이는데 그가 표현한 그의 일상은 치열하다. 이 책은 작가의 일상과 생각이 드러나고 난 공감이 간다. 공감이란 꼭 비슷하거나 내 경험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의 일상은 나와 너무 달라도 감정이 동하고 흥미롭고 재미있다.
아래 책, 유시민 작가의 『표현의 기술』에서 소개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4가지 이유 중 박상영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려(자신을 돋보이려는) 글을 쓴다고 여기저기에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왜 드러내려 할까? 글과 말을 통해 위로도 받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이해되었다. 말과 생각이 일치하기 어렵고, 표현한 단어의 뜻과 내 생각이 다름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현하고 생각을 듣고, 말을 섞는다. 그러면서 상대도 느끼지만 결국 나를 보게 된다. 특히 작가들은 글로 글을 쓴 자신을 만나게 하고, 읽는 독자는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게도 된다. 휴식이 필요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여행 #쉼 #휴식 #가파도 #박상영 #순도 #예능 #글 #표현 #에세이 #글을쓰는이유


『표현의 기술』

글 유시민 만화 정훈이 ∣ 생각의 길 ∣ 2016년 ∣ 364쪽

표현하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거부감 없이 할 사람은 많지 않다. 말이면 말, 글이면 글, 토론이면 토론, 기술이라도 연마한 듯 자연스럽고 잘하는 유시민이기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 같다. 1장에서 작가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하면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사 2010)의 4가지 이유를 소개했다. 그중 자신은 정치적 목적, 즉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글을 쓴다고 밝혔다. 그리고 주제를 정하고 초고를 쓰고, 정확하고 재미있고 설득하기 위한 정교한 작업을 논한다. 그리고 감정이입 즉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쓰라고 한다. 글을 읽을 때 역시 감정이입이 되는 글을 읽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잘 표현하지 못하고, 무엇이 표절인지, 비평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가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말하듯 적어 내려간 글 속에 그가 생각하는 표현의 기술이 언급되었다.
마지막 11장 정훈이(만화가)의 ‘표현의 기술’은 만화가 정훈이의 자서전 같은 내용으로, 그 안에 표현의 기술이 만화로 표현되었다. 이 두 작가의 콜라보가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고, 왜 이 두 작가의 ‘표현의 기술’을 묶었는지만 짐작해 본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함이 절대로 무시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 대목이 있다. 나는 격하게 공감했고, 이 글의 콜라보도 그런 차원이라 생각해본다.
글이 재미있어서, 논리가 명확해서 시원하게 풀어주는 맛에, 공감이 가서, 위로가 되어서, 글을 읽는 이유는 글을 쓰는 이유만큼 많을 것이다. 작가가 ‘외롭고 힘들고 슬플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려고 글을 읽는다’ 한 대목에서 난 감정이입을 했다. 마음을 열고 책 속으로 들어가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독서를 했을 때 순도 100 퍼센트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휴식이 된다.


#표현 #기술 #글쓰기 #글을쓰는이유 #조지오웰 #나는왜쓰는가? #정치적목적으로글쓰기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 앤의 서재 ∣ 2020년 ∣ 342쪽

제목이 식상하여 책을 읽지 않고 지나칠 뻔했다. 제목이 책의 내용을 다 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오랜 경험과 노력이 이 한 권에 잘 녹여져 있고, 많은 연구를 필요로 했을 것 같은 전문성이 있음에도 어렵지 않게 읽히는 매우 반가운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지 오웰이 말한 글을 쓰는 이유 중 자신을 드러내고, 미학적 열정,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해당된다 생각했다. 내가 다소 거리가 있는 이 세 책을 한 주제로 묶은 이유다. 나를 드러내건, 미학적 열정이든, 남기고 싶은 마음, 모두 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30년을 방송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는 작가는 보이는 방송에서 보이게 하는 글을 쓰는 숨은 공로자다. 방송이 끝나고 타이틀에 작가의 이름은 올라오나, 글을 말로, 보이는 것으로 표현한 사람들에 가려져, 작가의 이름도 생소하다. 하지만 그가 한 권에 녹여 낸 이 책을 읽으면 방송 뒤에서 그 방송을 만드는 글을 쓰고 표현하는 작가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하고, 어휘의 중요성과 의미를 짚는다. 2장에서는 어휘력을 키우기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썼다. 작가가 평생을 연구하고 쌓아온 어휘를 각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표현에 적절하게 넣어서 쓴 글들을 읽다 보니 작가처럼 필사하고 싶은 문구가 많다. 덤으로 3장에서는 어휘력을 키울수 있는 방법, 4장에서는 어휘력을 늘리고 사고력을 확장할 수 있는 사례까지 소개한다. ‘말맛을 파악하고, 글을 쉽게 쓰는 요령, 틀을 만드는 연습 등, 당장 필요하고 유용한 대목 말고도 ’생각이 충만한 것이 먼저다‘라는 두고 생각하게 하는 문구가 가득한 책이다.
대화가 통한다는 건 언어적 직관이 통한다는 의미로 작가가 해석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보통 가까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짐작할 뿐인데 짐작한다는 건 어림잡아 헤아린다는 것이니 모르는게 당연하다. 또 작가가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한 권의 책이 왜 나왔고, 어떠한 배경에서 어떤 이유로 나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콘텍스트라면 이 책은 그 이유가 너무 분명해서 나에겐 좋은 책이다. 꾸준하게 책 읽기를 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 것이다.
‘글쓰기가 주는 탁월한 효과 중 하나로 생각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작가의 문구는 내가 서평을 쓰면서 느끼고 감사한 이유를 너무도 간결하게 표현했다.


#어휘 #어휘력 #표현 #글쓰기 #필사 #텍스트 #콘텍스트 #어른 #어른의어휘력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60+책의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이미지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저작물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다운로드, 인쇄, 복사, 공유, 수정, 변경할 수 있지만, 반드시 출처(60book.net)를 밝혀야 합니다. (CC BY-N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