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우리에게 한국전쟁이라는 큰 아픔을 남겨놓았습니다.
전쟁은 순식간에 일상을 파괴하고 이웃을 적으로 만들며 무수한 생명을 짓밟습니다. 전쟁에 승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전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평화는 꿈일 뿐인 것일까요? 총칼로 무장한 현실 속에서 독서가 무슨 힘이 될까 싶으면서도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킬 파동의 힘에 기대어 ‘전쟁과 평화’ 관련 그림책 몇 권 소개합니다.
『할아버지의 감나무』
서진선 글.그림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 38쪽
작가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할아버지가 겪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아이의 눈을 통해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뒷산에 있는 감나무 산에 올라 정성껏 감나무들을 돌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감나무에 사람 이름표도 달아주었지요. 까닭을 물으면,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총을 무척이나 무서워했습니다. 문구점에서 장난감 총을 할아버지에게 들이밀었던 날엔 식사도 못하시고 잠도 잘 못 주무셨습니다. 아이는 그런 할아버지가 이상스러웠지요. 사연은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며 드러납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군인이었습니다. 적을 향해 수없이 총을 쏴야 했지요. 그 중에 어린 소년병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죽인 소년병이 굶주림으로 비쩍 말라있는데다 손에는 반쯤 먹다 남은 감이 들려있고 주머니엔 엄마에게 쓴 편지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곤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전쟁은 계속되었고 할아버지는 그 늪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따스한 색감의 수채화에 담담한 어조로 전개되는 이야기임에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옵니다. 왜 전쟁이 아니고 평화여야 하는지, 오래도록 우리를 숙고하게 합니다.
『용서의 정원』
로런 톰프슨 글, 크리스티 헤일 그림, 손성화 옮김 | 시공주니어, 2018년 | 36쪽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실제로 존재하는 ‘용서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입니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바얌 마을과 감테 마을이 있었지요.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어느 날 불꽃 튀는 말다툼이 시작되고, 바얌의 소녀 사마가 감테의 소년 카룬이 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다치며 두 마을의 증오심은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그러던 날, 괴롭고 화난 마음을 달래려 개울을 따라 걷던 사마는 개울에 비친 어둡고 찌푸려진 자신의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마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다시 싸움이 시작되고 카룬을 포로로 잡게 된 바얌의 어른들은 사마에게 돌을 쥐어주며 카룬을 향해 던지라고 다그칩니다. 사마는 분노와 두려움, 미움으로 험악해진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다, 돌멩이를 멀리 내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곳에 ‘용서의 정원’을 짓자고 제안하지요.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힘껏 질주하다가도 중간 중간 말을 세우고 잠깐씩 멈춘다 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말이지요. 사마의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는 물음 또한 질주하던 걸음을 멈췄기에 가능했겠지요. 작은 그림책 하나가 앞만 보고 달리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합니다. 내 영혼, 그리고 이웃의 영혼을 오래도록 응시케 합니다.
『호숫가 작은 집』
토머스 하딩 글, 브리타 테켄트럽 그림, 김하늬 옮김 | 봄봄출판사 | 2022년 | 48쪽
베를린 근방 호숫가에 나무로 만든 작은 집이 있습니다. 집은 평화로운 일상과 꿈을 키우게 하고 따뜻한 사랑을 줍니다. 추운 겨울을 지켜주기도 하죠. 거대한 벽이 쌓였다 무너지는 역사의 순간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각기 다른 시간 속에 다른 사연을 가진 가족들은 같은 공간 속에서 안식처로 살기도 하고, 불안과 공포를 느껴 떠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호숫가 작은 집에 살던 네 가족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거의 100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을 찾아가 그동안의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서 전쟁의 시간을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호수와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환한 모습과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와 대비를 이룬 폭격 속 새까만 하늘과 낯선 사람들의 그림자는 브리타 테켄트럽 그림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전쟁을 이겨낸 호숫가 작은 집은 다시 평화를 꿈 꿀 수 있을까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2년 | 64쪽
책을 펼치면 엄마의 품에서 하늘색 바탕의 붉은 장미꽃들이 한없이 넘쳐 나옵니다. 끝까지 딸을 지킨 엄마의 희생과 사랑은 전쟁의 공포마저도 막아낸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세상은 온통 전쟁으로 물들고, 어린 딸을 지하실에 홀로 두고 나오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마는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게토의 지하실에 숨깁니다. 전쟁과 어두운 지하실의 공포를 모르게 하려는 엄마는 아이가 보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해 주며 상상의 공간을 채워줍니다. 엄마가 전부인 어린 딸은 자신도 인형 주지아의 엄마가 되어주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더 이상 전쟁 때문에 아이를 부모에게서 데려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엄마는 딸에게 언제나 돌아와, 절대로 자기 딸을 혼자 두지 않아.” 어린 딸을 혼자 두고 나갈 때마다 엄마는 꼭 말해줍니다. 이런 약속과 믿음 때문에 조시아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딥니다. 하지만, 혼자 굶주림에 지쳐 벽을 파먹는 조시아의 모습을 볼 땐 가슴이 저며옵니다.
저자 아가타 투신스카는 이제 노인이 된 조시아의 회고를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아픈 기억을 잘 감싸 안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장면마다 너무나 생생하여 때론 가슴 에이고 때론 울분을 토하게 합니다. 참혹한 전쟁의 기억조차도 어린 딸에게 꿈꾸는 공간으로 만들어준 모정이 감동을 전합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백화현, 배수경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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