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이야기

 

촉촉한 봄비가 내리더니 갈색 흙 위로 작은 싹이 돋아났습니다.
먼지 낀 잿빛 건물 아래에도, 보도블록 작은 틈새에도, 지난겨울의 칙칙한 흔적을 지우려는 듯 여린 봄 햇살의 조각들이 수채화처럼 온 세상을 물들였습니다. 회갈색 무대 위에서 솟아오른 연둣빛, 노란빛, 분홍빛, 보랏빛, 하얀빛의 봄의 잎들은 마치 폭죽공연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림책을 활짝 펼쳐놓은 것 같은 4월의 봄날입니다. 이달에는 따뜻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봄 내음이 느껴지는 그림책 4권을 소개해 봅니다.



『봄이다!』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E. 스테드 그림, 이예원 옮김|열린책들 별천지|2012년|32쪽


봄은 언제 오는 걸까요? 땅이 부풀어 오를 때? 보슬보슬하게 흙을 갈아 씨앗을 심을 때? 싹이 돋아 흙빛이 연둣빛으로 물들 때? 가지 끝마다 꽃망울이 터져 나와 향기를 뿜을 때? “봄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때는 저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그림책 《봄이다!》는 겨울이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처음엔 사방이 갈색, 어딜 봐도 갈색이야. 그렇다면 씨앗을 심자. …… 그래도 갈색은 여전히 갈색이지만, 설레고 기대되는, 그런 갈색이야.’ 봄을 기다리며 땅에 씨앗을 심은 소년은 동물 친구들과 싹이 돋길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생각했던 것보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또 한 주, ‘그래도 갈색은 여전히 갈색이지만, …… 땅속 깊숙이서 녹색 기운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려.’ 소년이 씨를 심고 그렇게 여러 주가 흐른 어느 날, 바깥은 하루아침에 초록빛이 되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소년의 옷차림, 갈색은 갈색이지만 페이지마다 달라지는 갈색, 흙빛에서 풀빛으로 바뀌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드디어 소년이 기다리던 봄을 보게 됩니다. 봄을 기다리는 설렘과 싱그러운 봄의 풍경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림책 《봄이다!》는 줄리 폴리아노의 시적인 언어와 에린E. 스테드의 연필과 목판화로 표현된 따뜻한 그림으로 기분 좋은 봄의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래! 이게 바로 봄이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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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이원수 글, 김동성 그림|파랑새|초판 2013년(2017년 발행판)|36쪽


그림책 《고향의 봄》은 어린 시절 누구나 부르던 바로 그 동요 ‘고향의 봄’입니다. 이원수 선생이 14살에 지은 이 시는 1926년에 월간아동문학지 《어린이》에 수록되었고, 1927년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여 동요가 되었고, 2013년에 김동성 선생이 그림을 그려서 시동요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표지부터 봄 풍경이 가득한 이 그림책은 만개한 봄의 꽃 대궐, 연둣빛이 스민 하얀 꽃나무 사이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고, 그 너머 노랑, 분홍, 초록이 어우러진 산이 보이고, 산 아래 작은 마을과 들은 온통 봄 내음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노랫말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고향 집 담과 골목이 보이고 마을 길 따라 뛰어다니는 친구들의 웃음 섞인 재잘거림이 들리는 것 같지요. 그렇게 한 장 한 장 노랫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련하고 그리운 자신만의 고향을 다녀오게 됩니다. 아득한 그리움이 담긴 따스한 그림책 《고향의 봄》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펼치는 순간 기억 속 고향의 봄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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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니까 좋다』

김중석 글 그림|사계절|2018|44쪽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는 듬직하지만 어설픈 고릴라와 뾰족한 고슴도치의 하룻밤 캠핑 이야기입니다. 고릴라는 자기가 모든 준비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제안을 하고, 고슴도치는 할 일이 많다며 혼자 가라고 짜증 냅니다. 하지만, 고릴라의 계속된 꼬드김에 ‘이번 딱 한 번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고슴도치는 고릴라를 따라 캠핑을 떠납니다. 집 떠나면 고생! 길도 막히고 방향은 미심쩍고 캠핑장까지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고슴도치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길 찾기, 텐트 치기, 저녁 짓기, 모든 것이 어설픈 고릴라를 시종일관 투덜대면서도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고슴도치를 보고 있으면 슬며시 가까운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온종일 싸울 것만 같던 이들은 풀 내음 속 맛난 식사를 하고, 밤하늘의 별에 취하고, 싱그러운 새벽 숲 자연 친구들 보며 “나오니까 좋다!”고 저도 모르게 외치게 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소박한 캠핑이지만 자연 속에 발 담글 때 느끼게 되는 소확행! 이들도 그렇게 행복해집니다. 연필로 비뚤배뚤 춤추듯 써 내려간 글씨는 오일파스텔의 화사한 그림과 만나 그림책을 더욱 흥겹게 만들어 줍니다. 싱그러운 풀 내음이 날 것 같은 이 책은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게 합니다. 두 해 동안 조심하느라 나가기 주저하는 고슴도치들에게 이 책은 봄날 꽃구경 가자고 꼬드겨 주는 고릴라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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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글, 김세현 그림|돌베개|2008년|136쪽

그림책 《청구회 추억》은 1966년 이른 봄날 서오릉 소풍길에서 여섯 소년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안쓰러운 춘궁의 느낌이 드는 소년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신영복교수는 “이 길이 서오릉으로 가는 길이 틀림없지?”하고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소년들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소풍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게 내밀며 인사를 건넸고, 보름 뒤, 교수실로 편지가 도착하면서 이어지게 되는 만남은 ‘청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게 됩니다. 독서토론과 동네 골목 청소, 미끄러운 비탈길 고치기, 남산 약수터까지 마라톤, 이화여대 학생들과 육사생도들과의 청구회 연합 봄 소풍 등으로도 이어집니다. 봄 향기 같은 이들의 시간은 1968년 7월 신영복교수의 구속으로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억지스런 추궁으로 이어지고,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조차 왜곡시켜 버립니다. 신영복교수는 청구회를 회상하고 기록하면서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게 되는 구원의 시간이었다.’고 ‘청구회 추억’의 추억에서 말합니다. 절망의 시간에서 써 내려간 아름답고 슬픈 이 이야기는 김세현 작가의 담백하고 선 굵은 그림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아련한 감동을 주는 그림책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림책 《청구회 추억》은 그때 그 시절을 보낸 분들에게 더 깊이 와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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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오현아, 김정해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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