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걷는 4가지 방법

 

서울을 걷는 방법은 많습니다. 둘레길과 성곽길, 건축물, 문학이나 역사 흔적을 찾거나 하는.
이번에 4가지 방법으로 서울을 걸어보려 합니다. 역사, 문학, 도시, 성곽으로.



『권기봉의 도시산책』

권기봉 ∣ 알마 ∣ 432쪽 ∣ 2015년
 

저자는 말합니다. 서울은 오랜 기간 수도로서 기능해온 도시여서, 크고 작은 역사사건의 현장이 산재해 있고, 예술적 향취가 그윽한 공간이 숨어 있고, 특별한 삶을 살다간 이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서울에는 친일미술가가 만든 조각상이 많습니다. 남산에 있는 백범 김구 동상과 종로 탑골공원의 월남 이상재 동상, 신사동 도산공원의 안창호 동상 등. 특히 강북구 수유동의 ‘국립 4・19 민주묘지’ 한복판에 서 있는 기념탑인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을 디자인한 이가 미술계의 대표적인 친일부역 혐의자로 꼽히는 김경승이라고. 양화대교 북단, 정몽주 동상을 세운 것은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인데,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라는 조직을 출범시켜 전란에서 나라를 구한 군인이나 김구와 안중근, 유관순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만드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갔다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현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나석주 열사 동상만이 우두커니 있는 것을 보고 통의동 동척 관사를 이야기합니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근처에는 이런 일본식 건물이 남아 있는데, 토지를 통해 조선인의 삶을 망가뜨렸다고. 한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절반의 역사’만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1987년까지 약 80년 동안 기능했던 서대문형무소에서 기념하고 있는 것이 정작 전반기 40년 정도, 즉 일제강점기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도시산책 #역사현장 #예술공간 #친일미술가 #서대문형무소 #동척관사 #나석주동상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유진숙 ∣ 파라북스 ∣ 256쪽 ∣ 2010년

저자는 오래된 길에서 혼백이 된 사람들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작가들이, 시인들이, 소설과 시 속에 살던 허구의 인물들이 정말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성북동 길상사에서 백석과 자야, 법정스님을 만났는데, 백석과 헤어지고 남한에 남은 자야, 김영한 여사는 밀실정치, 요정정치의 꽃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하고, 천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가가 되었는데, 법정 스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시주합니다. <무소유>를 읽고 여인들의 웃음을 팔아 번 돈을 부끄러워하며 내린 것입니다. 길상사 앞 큰길을 따라 내려와서 성곽을 향해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독립만을 향한 외골수 인생을 산 한용운을 심우장에서 만났습니다. 근처에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는데, 그곳에 깃들기 전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은 가난과 외로움 자체였다고 합니다. 광화문과 덕수궁 사이에는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배경이 된 경성부민관이 있는데, 해방 후엔 시민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돌담을 따라 걸으면 덕수궁이 나옵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씨가 지금의 서울시청인 경수부청 앞에 와서 황톳길 건너 덕수궁을 바라보고 있는 대목을 떠올리고요. 광화문으로 나오면,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천변풍경>, 염상섭의 <삼대> 배경을 만날 수 있고, 심훈의 <그 날이 오면>,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도 생각납니다. 이 외에도 현진건, 이상, 김수영, 정희성 작가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문학산책 #백석 #현진건 #염상섭 #채만식 #수연산방 #천변풍경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황두진 ∣ 해냄 ∣ 329쪽 ∣ 2005년

건축가에게 서울은 삶의 터전이면서 작업의 대상이고 건축적 사고의 텍스트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서울은 일상의 배경이지만, 건축가에게 서울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운 도시를 꿈꾸는 무대라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에, 화엄사의 각황전과 법주사의 팔상전을 조합한 이 전대미문의 하이브리드 건축은 전통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태도의 전형으로 지금까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정부가 현상설계 지침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또 통의동을 변두리 같은 서울의 중심이라고 말하는데, 광화문이 동네 어귀고, 10분만 걸으면 종로에 닿고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도 가깝게 있어서라고. 그런데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한가롭다 못해 시골 동네 같은 분위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겉으로는 주택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의외로 각종 소규모 사무실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특히 출판과 관련되거나 디자인 분야의 사무실이 다수라고 이야기를 보탭니다. 인사동의 비극은 주거가 상업시설 등 다른 도시적 기능과 수평적으로 공존하기 어렵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지가가 상승하면서 주거가 떠나게 되면서. 밤 10시경 그곳에 가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인다고 합니다.


#건축가의서울 #건축적사고 #국립민속박물관 #통의동 #강남 #인사동 #서교동 #동대문시장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유영호 ∣ 창해 ∣ 340쪽 ∣ 2015년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저자는 한양도성 길을 찾아 나섰는데, 이유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 무심한 듯 살아온 그 터전의 근본과 과거를 돌아보고 싶은 열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한양도성을 걸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 성곽의 외형은 물론 주변 흔적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돈의문에서 사직터널까지, 인왕산 성곽길, 부암동, 창의 밖,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 혜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걸었습니다.
먼저 혜화문에서 약 300미터 지점 혜화문 로터리에 혜화파출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몽양 여운형이 암살되었다고 말하며, 당시 수사는 악질 친일경찰인 노덕술이 맡았고, 담당검사는 친일파 조재천인데, 암살범으로 처벌받은 한지근은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지만 이후 행방불명되었고, 재일동포 말로는 일본에서 이름까지 바꿔가며 지냈다고 말합니다. 혜화문 일대 돈암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광복 후 미국에서 귀국하여 2년 정도 머문 곳인데, 이곳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승만의 미국생활을 두고 항일인가 친일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이밖에 도심 속의 신선계인 쌍계와 삼선평을, 의친왕의 슬픈 별궁 성락원, 창의문에서는 인조반정 등을 풀어 놓습니다.


#한양도성 #돈의문 #인왕산성곽길 #창의문 #와룡공원 #혜화문 #부암동


주상태

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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