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기 전 우리는 목적지까지 자가용을 타고 갈지, 지하철·버스·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아니면 그냥 걸어갈지 고심하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무수한 마음속 갈림길을 만나고 선택하면서 도착지에 이르지요. 물리적인 길은 편리성과 합리성을 근거로 선택하지만, 심리적인 길은 마음에 따라 멈춰서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합니다. 모든 길에는 출발과 도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선택을 하게 되고요.
수많은 길 중에서 살면서 만나게 되는 『두 갈래 길』,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 길』, 굽이굽이 구부러져 천천히 걷게 되는 『구부러진 길』, 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좋으면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까지 길에 관한 네 권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두 갈래 길』
라울 니에토 구리디 글·그림, 이지연 옮김 | 살림출판사 | 2019년 | 40쪽
‘지난 너의 모든 길이 아름다웠기를, 지금 걷는 이 길과 앞으로 걷게 될 길이 모두 눈부시길 바라며 00에게’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생을 길에 비유한 그림책입니다. 2018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스페인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작품으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그림과 감각적인 두 컬러의 대비, 시적인 글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첫 장을 넘기면, 왼쪽에 붉은색 집에서 나와 길을 걷는 한 여인이 있고, 오른쪽에는 푸른색 집에서 나와 길을 걷는 한 남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자의 길을 걷다가 어떤 우연으로 나란히 함께 길을 걷게 됩니다. 길을 나서면 누구라도 호기심과 두려움이 함께하고, 고민과 결정의 순간에 멈춰서기도 합니다. 때로는 빨리, 때로는 느리게 가면서 어둡거나 밝은 시간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각자의 방법으로 뛰어넘으며 제 갈 길을 찾게 되고요. 모든 새로운 길은 이전의 길로부터 비롯되며 잘못 들어선 길에서 멈춰 서거나 돌아가기도 하지요.
그림책 《두 갈래 길》은 지금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앞으로 걷게 될 길이 눈부시길 바라며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책입니다.
『이 길』
우치다 린타로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 책빛 | 초판 2018년 | 40쪽
그림책 《이 길》은 그리운 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은 수없이 많지만, 언제나 가고 싶은 길, 생각만 해도 그때로 돌아갈 것 같은 나만의 소중한 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차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8월의 여름날 풍경 속에서 수없이 많은 길이 보이지만 단 하나의 ‘이 길’을 찾아가는 소년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표지를 보면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어린 소년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가 들어올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그 소년에게 긴장과 설렘이 엿보입니다. 표지를 넘기면, 녹음 짙은 여름날의 한가로운 자연풍경과 시골길이 보입니다. 소년은 기차 밖의 여러 아름다운 풍경 속 길을 보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기차 여행을 즐깁니다. 목적지 역에 도착한 소년은 기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 집으로 곧장 걸어갑니다. 길 끝에는 ‘아이고, 내 강아지!’하며 반겨주시는 소년의 할머니가 있으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길이지만 내겐 가장 소중한 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걷고 싶은 길. 언제나 그리운 길. 이 길.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우치다 린타로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시골 할머니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곤 하였던 어린 시절 경험을 글로 적었고, 그림작가 다카스 가즈미는 그만의 부드럽고 따뜻한 파스텔 기법으로 여름날의 녹음과 푸근한 시골길 풍경을 담아 아득한 꿈결처럼 작가의 추억을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길, 지치고 힘들 때 찾아가고 싶은 길, 자꾸자꾸 걷고 싶은 바로 그 길이 당신의 ‘이 길’이 아닐까요.
『구부러진 길』
이준관 글, 장은용 그림 | 온서재 | 2021년 | 32쪽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라는 첫 소절과 함께 초록 들판 그림이 펼쳐지니 눈이 시원합니다. 구부러진 길가에 꽃과 나비와 토끼들이 노닐고, 멀리 뵈는 집 뒤로 병풍 같은 산과 넓은 하늘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립니다. 그림책 《구부러진 길》은 ‘광화문 글판’ 30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발표된 시 가운데 독자 투표로 뽑힌 10편 중에서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 시를 장은용 작가가 한국적 서정을 담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구부러진 길만의 정취를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길을 돌아서면 민들레와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굽이굽이 하천에 물고기, 들판에 만발한 꽃과 찬란한 별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구부러진 길은 산과 마을을 돌고 모두를 품고서 갑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굽이굽이 넘고 살아온 사람처럼 말이죠. 그들에게는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을 수 있는 우물같이 깊은 가슴이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어린이들은 책장을 넘기며 굽은 길을 돌아설 때 궁금했던 자연을 마주하게 되고, 어른들은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구불구불했던 삶 속에 머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책은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데이브 에거스 글, 앤젤 창 그림 | 돌베개 | 2020년 | 58쪽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살구색 빛이 깃든 어둡고 깊은 협곡 아래에 노란 의자를 옆에 두고 거친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는 하얀 호랑이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며 웃고 있습니다. 드디어 길을 찾은 걸까요? 하얀 호랑이는 날이 밝자 노란 의자를 둘러메고 협곡을 건너 계곡을 오릅니다. 북극과 남극을 오가며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옮겨 다니는 북극 제비갈매기, 초원에서 하얀 호랑이는 머리 위에 날고 있는 북극 제비갈매기를 만납니다. 북극 제비갈매기가 나는 길을 따라 노란 의자를 멘 하얀 호랑이는 협곡을 지나고, 모래 언덕을 넘고, 클라우드 포레스트를 빠져나와 부지런히 어딘가로 향합니다. 하얀 호랑이는 초원과 협곡, 계곡과 평야, 사구와 오아시스, 고원과 황무지, 툰드라와 빙하……. 세상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서 드디어 가족이 있는 타이가(북반구 지역에 있는 침엽수림 지대)에 도착합니다. 하얀 호랑이와 똑같이 닮은 호랑이들은 노란 식탁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그의 노란 의자와 똑같은 의자에 앉아 하얀 호랑이를 반겨줍니다. 노란 의자를 둘러메고 야생의 곳곳을 누비던 하얀 호랑이가 향한 곳은 바로 소중한 가족이 있는 집, 타이가입니다.
불가사의한 장소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브 에거스가 기획한 이 책은 그림작가 앤젤 창의 강렬하고 과감한 색과 거친 붓 터치로 생동감 있는 야생의 자연을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산 정상에서 하얀 호랑이가 바라보는 일몰 장면은 넓게 4면으로 펼쳐져 절정을 이루고, 툰드라에서 마주한 오로라, 빙하와 협곡, 피오르 장면에서 거친 질감과 쨍한 빛의 색감은 도저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하얀 호랑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무엇인지 독자는 찾게 될 것입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김정해, 오현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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