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과 시인, 오래된 사진으로 세월을 이야기하거나 시와 사진이 함께한 이야기

 

세월은 ‘흘러가는 시간’ 또는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흘러간 시간 속에서 살아온 나날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보기도 합니다. 한때 여러 이유로 사진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추억을 다시 불러내기도 합니다. 이제야 소중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서투르고 거칠었지만 말입니다. 오래된 사진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흘러간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오래된 사진으로 세월을 기억하거나, 시와 사진이 어울리는 책을 소개합니다.



『세월의 쓸모』

신동호 ∣ 책담 ∣ 2015년 ∣ 216쪽

시인은 세월을 자신에게 쓸모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래된 낡은 사진 속에서 수많은 자신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마구 버려졌던 것들이, 마구 잊었던 것들이, 낡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낡은 것, 지나간 것, 애매한 것들을 사랑한다고.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시인에게 봉의산은 유년의 언덕이고 어머니는 마음의 언덕입니다. 봉의산은 춘천이고 친구며 그리움입니다. 시인은 흐르는 강물처럼 리듬을 기억하기 위해 세월은 자주 긴장하라고 하고, 휘청이다가도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길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촌역에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래 앉은 만큼 추억을 건져내고, 추억이 많은 사람은 이해심이 깊어지고, 오래 바라보면 겸손해진다고. 오늘 당신께서 강이 그립다면 세월이 곧 당신이 되어버린 까닭이라고. 이발소 그림을 보면 인생이 유치하게 시작된다고 여깁니다. 유치함은 곧 삶의 욕망이고 솔직함, 진솔함은 유치함의 다른 말 같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유치하게 여겼던 것들이 소중해진다고. 동네 목욕탕에서는 명절을 떠올립니다. 옷을 벗는 일은 간혹 세월을 확인하는 일이며, 벗은 몸뚱아리를 보는 일은 매번 세월을 확인하는 일이며, 구석구석 때를 밀다가 사타구니에 자란 흰털을 발견하는 일은 세월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라져 간 것들은 존재의 크기만큼 추억을 남긴다고 종로서적을 떠올립니다. 시간과 공간은 기억의 앞뒤에서 순서에 얽매이지 않은 채 추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추억이 많아지니 나이 드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고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는 세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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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하네』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 180쪽

사진가가 찍은 옛날 풍경 사진과 시의 정서가 사랑하고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립니다.
‘골목안 풍경’으로 유명한 고 김기찬 사진작가의 흑백사진이 시인이 좋아하는 시 48편과 함께 합니다.
감준태의 <감꽃>은 어두운 골목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의 사진과 어울립니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라는 시를 읽은 저자는, 이 시인은 역사를 천형처럼 짊어지고 시를 토해낸다고 하며, 그에게는 시를 쓰는 일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한 몸이라고 씁니다.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침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먼 훗날에 무엇을 세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볼 것인가 묻습니다.
최승자의 <이런 詩>는 연탄재가 쌓여있는 복덕방에서 하품을 입이 찢어질 듯, 하는 노인과 함께합니다. 저자는 이 시를 읽고 시인들에게 제발 주저앉지 말라고, 마음의 풍경을 갱신하고 또 갱신하라고, 부디 기고만장을 생의 무기로 삼으라고 합니다. “평평한 밋밋한/ 어눌한 느슨한/ 납작한 헐거운/ 엷은 얕은/ 오그라든 찌그러진/ 찌들어버린 빵구 난/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리듬의/ 김빠진 맥 빠진/ 기진맥진한 기고만장을 잊어버린/ 이런 시!”를 읽고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라는 시는 정양의 <물 끓이기>인데, 노인 두 명이 골목길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습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저자는 요즘 사람들은 끓어오르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참고, 겁이 많아 지레 몸부터 도사리고, 지은 죄가 많아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불의를 보고도 용기가 없어 외치지 못한다, 고 씁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숙이고 계단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어가는 노파 사진은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고 가는 울음 멎게 술 한잔 부어줄 걸 그랬나, 발이 젖어 오래도 멀리도 날지 못하는 새야”라는 구절과 함께합니다.
오래된 골목 안 풍경 사진과 시와 시인의 짧은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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