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나 고령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이가 드니… . ’를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그러나 말만 많지 정작 늘어난 수명만큼 많아진 시간에 대한 운영, 노년의 삶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립하기는 어렵다. 연관이 된다 생각하는 책들을 모아보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 인플루엔셜 ∣ 2021년 ∣ 320쪽
올해 가을이 유독 길어 단풍을 오래 감상했다. 멋진 가을이 길어 좋다는 생각이 들다가 말라가는 단풍을 보니 오지 않는 겨울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봄이 길었으면, 가을이 길었으면 하다가도 때가 정작 늦어지면 와야 할 계절이 기다려지나 보다. 노년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포기, 자리, 루틴…. ’등 10가지 주제로, 세계적 명성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섞어 이야기한다. 300년 전에는 유럽의 평균수명이 30세였단다. 이 책에서 지금의 50대는 그때의 갓 태어난 아이만큼 살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는 비유가 재미있다. 시간이 많아진 건 분명하다. 길어진 시간만큼 따뜻한 봄도, 찬란한 가을도 길면 좋겠지만 뜨거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꼭 필요한 계절이듯이 길어진 노년도 중요하고, 잘 보내야 한다.
젊었을 때 몸은,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회복하고 생각대로 움직여주어서인지 30세까지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인생이 지루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버겁기도 했지만 내가 나를 만든다는 자만이 있었다. 그러다 맘하고 달리 몸이 안 따라주기 시작하면 서류상 내 나이와 스스로 느끼는 나이의 간극도 크다. 이 큰 간격에 나는 어떤 삶을 택해 다시 긴 시간을 보내야 할지 이 책이 팁을 준다.
정작 나이가 들어가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줄어들고, 해야 할 의무도 줄어드는 노년이 참 편안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 공부가 재미있기도 하고 줄어든 일이 더 소중해지고 그 의미가 깊어진다. 노년의 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의 하나로 이 편안함을 꼽고 싶지만 무기력이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편안함하고 동일한 감정으로 착각하는지 점검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터키』 / 『그래서 이스탄불』
장은정 ∣ 리스컴 ∣ 2013년 ∣ 253쪽 / 이재천 ∣ 바른북스 ∣ 2022년 ∣ 320쪽
개인적 관심으로 터키를 공부하다 여행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중 두 권의 여행책을 나이 듦과 연결하여 소개할 책으로 엮어본다. 앞에 소개한 책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프롤로그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꼭 그 나이인 건 아니다”라고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해서이다. 인생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여행의 방법이나 느낌 역시 케이스별로 모두 다르니 기준을 정해 말하기도 어렵다. 여행책의 특성상 누가 그 여행을 했는냐는 여행책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해서 저자의 이력에도 관심이 간다.
『언젠가는, 터키』의 경우 젊은 여성이 저자이고 여행자이다. 세 번의 터키 여행에 대한 정보과 감상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젊은이답지 않은 차분함으로 시간을 주무르는 여행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2022년 펜더믹 상황에서 한 달 이스탄불 살기를 계획하고 9개월 가까이 터키어를 배우고 건축에 대한 조예가 깊은 다방면의 열정가인 의사 여행자가 저자이다. 저자의 나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앞의 저자와는 20살 정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 통념이 이 첵에서는 안 통한다.
두 책 모두 터키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고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혼재한 독특한 문화를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터키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책이다. 젊은 작가는 터키의 모든 것을 잔잔하게, 깊이보다는 넓게, 본인이 본대로 자기의 상황에 맞게 충실하게 엮고 보여 준다. 본인의 감정대로 다스리며 여행지를 안내하는 여백이 좋다.
그런가하면 바쁜 의사의 일상에서 귀하게 시간을 내서 아무도 가지 않는 펜더믹 상황에 이스탄불 한 달 살기를 결정하고, 정말 열정적으로 준비한 후자의 책은 그 에너지와 열정이 너무 과해 고개를 흔들게 할 정도다. 나이는 꼭 그 나이를 의미하진 않는 것이 맞다.
젊게 사는 것,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심지어 욕망을 갈구하는 것이 인생 후반전을 찬란하게 보내는 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여름이 끝나지 않다고 생각하라는 것도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춤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날이 고될수록 편안함이 달콤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을수록 가벼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혹시나 숫자의 나이에 내가 지배당하지는 않는지, 포기함으로 또 나에게 다른 포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심지어 여행도 젊은 날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보면서 말이다.
『방구석 미술관』 /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 블랙피쉬 ∣ 2018 / 2020 ∣ 344쪽 / 424쪽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이 피곤함으로 인식되던 내가 마음속으로 그림이 들어온 경험을 한 적이 스페인 한 달 여행에서였다. 시간의 여유가 같은 작품을 오래 보게 했고, 오래 보다 보니 나만의 감상이 생겼다, 익숙한 이름이라, 배운 작품이라,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등 이런저런 이유가 앞섰던 감상이 아닌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들여다본 귀중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에 미술관을 둘러 볼 여유를 갖고 나만의 감상을 하길 바라면서 미술 관련 좋은 책 두 권을 묶어 소개한다.
『방구석 미술관』은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미술계 거장들을 작가 특유의 위트와 편안한 어투로 소개하고 있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사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해석이 깊어,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술이 좋아 그 주변에 얼쩡거렸다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공부가 놀라워 그의 진짜 감상을 따라가게 된다. 조각으로 있던 얕은 지식이 이어지는 느낌과 무엇보다 그 시대의 환경과 작가의 내면을 알게 하는 일들을 소개하고 그 일들이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이 책을 만나고 읽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내침김에 한국 작가를 다룬 『방구석 미술관 2』까지 읽었다.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을 작가가 방구석으로 불렀다는 이 시리즈는 서구 중심의 미술계 거장들이 더 익숙한 우리에게 큰 화두를 던져준다. 이응노, 김환기, 백남준, 박수근처럼 그래도 이름이라도 익숙한 화가뿐만 아니라 나혜석, 정욱진, 이우환과 같이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있었던 화가, 천경자, 유영국과 같은 작품으로 익숙한 화가까지 그의 일대기가 그려지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미술사가 펼쳐지니 극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이들의 작품이 발판이 되어 지금의 미술과 우리의 선조들의 작품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준다. 좋은 책은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귀중한 보물이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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