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 나오는 소설

 

책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책 속의 책이라고? 그럴 수도.
이런 소설을 읽으면 소설을 더욱 읽고 싶게 만듭니다. 소설 속에서 책을 맛보는 일입니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 문학동네 ∣ 144쪽 ∣ 2009년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이렇듯 작가는 세상의 규범과 편견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인생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편견에 물음표를 달고, 상상하고 질문합니다. ”정원이야, 숲이야?“ “늑대야, 개야?” ”옷장이야, 방이야?“ “남자애야, 여자애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 “남작이야, 자작이야?” ”재단사야, 제본사야?“ “서점이야, 약국이야?” ”산책이야, 도망이야?“ “죽은 거야, 산 거야?” ”에필로그야, 프롤로그야?“ 등 20개나 되는 제목이 그렇습니다. 작가에게 ’좋은 책‘이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끔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루크레시오‘라는 도둑이 어느 밤, 황량해 보이는 저택을 털려고 담장을 넘으면서 시작됩니다. 정원인지 숲인지 모를 곳을 지나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동물과 맞닥뜨리고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모르는 ’칼비노‘라는 아이를 만나 저택으로 들어갑니다. 그 아이가 도둑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가짜 아빠가 되어달라고 하면서 기이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도서관 겸 정신병원에서는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자신을 책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가 작품 자체라고 생각하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몽상가들입니다. 서점약국에서는 책을 마치 약처럼 처방합니다. 서점의 노부인은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둑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책 속 등장인물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들인데, 다른 책을 더 읽게 하면 그건 불난데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부인은 특정한 책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이후 돈키호테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비참하게 늙지는 않았다, 좋은 책이나 좋은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또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 등의 글이 나옵니다. 도서관 정신병원에서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제목을 읽으면서 이야기는 끝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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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츠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 ∣ 196쪽 ∣ 2007년

독서가로도 잘 알려진 소설가가 쓴 단편집인데, ”책과 관련된 기억의 이야기이며, 책이 맺어준 인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하는 책>에서는 주인공이 18살 때 도쿄에서 용돈이 바닥나 책 등을 팔았는데, 그 책을 네팔 헌책방에서 보고 자신의 표식으로 예전에 판 책인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카트만두 노점상에서 다시 팔았고, 취재차 간 아일랜드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매번 책의 의미가 다르게 읽혔는데, 사실 변한 것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었습니다. <그와 나의 책장>에서는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하나켄‘이라는 남자를 사귀고 동거를 시작합니다.
책을 좋아해서 책장을 합치게 되었고, 이후 하나켄에게 애인이 생겨 헤어지고 이사를 해서 책장을 풀다가 하나켄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페이지를 열다가 눈물을 흘립니다. 작가는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는 그 작품 세계에 들어가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한번 책의 세계에 빠지는 흥분을 알게 된 인간은 평생 책을 읽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과 책의 개인적인 만남에 대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밀월을 보내고, 어떻게 관계가 변하는지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합니다. 옮긴이는 ”책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이기에 소중하지만, 한편으로 그 책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빚어진 인연과 추억, 상상의 매개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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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32쪽 ∣ 2004년


이 책은 ‘책’이 주인공입니다. 수난과 학살, 망신, 임신과 진통 과정을 거쳐 착상, 출산 그리고 죽음에 이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이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책의 일생을 그렸습니다. 출판사 사장, 문예대행인, 편집자, 인쇄소, 서적상에 의해 좌우되는 책의 운명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처음 ‘수난‘부분에서 책은 말합니다. “책 노릇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오래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서는 나날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고는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인간이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를 읽어 달라고? 그거야 순전히 자기들에게나 득이 되는 여가 활동이지, 우리에게 좋을 건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그네들의 독서 행위는 우리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란 기억보다 망각하는데 더 뛰어나다면서 자신들이 대신 기억해주지 않았더라면 인간에게 역사란 게 존재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잔인무도한 폭행을 말합니다. ’침 묻히기‘ 사람들이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는 것을 보면 욕지기가 나온다고 하고, 자신에게 최고의 골칫덩이는 여백에 본문보다 더 많은 내용을 휘갈기는 낙서광 또는 작가 지망생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무자비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책을 불살라버리는 것은 책을 도살하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면서, 마녀사냥처럼 아무런 죄도 없이 대량학살된 책이 얼마나 많았느냐고 한탄합니다. 이어 서점에서 잘 안 팔리거나 도서관에서 아무도 찾지 않아 더이상 쓸모없는 신세가 되면 골칫거리로 전락한다고. 한편 책은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시설이 도서관이라고 말합니다. 위선자인 인간들이 도서관을 ’문화의 사원‘, ’문학의 요새‘라고 부르는데,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하면서 ’사창굴‘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잠자리에서 책을 보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잠드는 모습 등 책을 다루는 여러 행태들을 풍자하는 이야기가 펼쳐져 매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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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태

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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