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자녀들은 훌쩍 자라 둥지를 떠나가고 남편과 아내 머리 위에는 어느새 흰 눈이 내립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좀 더 잘해 줄 걸, 사랑한다고 말할걸’,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바로, 지금,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저녁입니다.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가족과 함께 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낮은산|2008년 | 44쪽
늘 엄마를 그리워하던 권정생 작가가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쓴 엄마 까투리 이야기입니다.
불이 난 산속에서 불길을 피해 쫓겨 다니던 엄마 까투리는 결국 꿩병아리 아홉 마리를 자신의 날개 밑에 품고 행여나 불길이 새끼들한테 덮칠까 봐 꼭꼭 보듬었습니다. 며칠 뒤 새까맣게 탄 엄마 까투리의 품속에서 새끼들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 살아서 죽은 엄마 까투리 날개 밑을 엄마의 품 삼아 자랍니다.
자칫 흉측스러울 수 있는 타 죽은 엄마 까투리의 모습이 따뜻하고 푸근한 조각 이불처럼 그려지고 죽은 후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만나니 애잔한 엄마 까투리의 모성애가 배가 되었습니다.
아파도, 슬퍼도, 기뻐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자식인 연결의 고리에서 평생 내 편이 되어주었던 엄마! 혹시 엄마에게 서운한 한 감정이 있다면, 엄마가 돌아가셔서 어디 한 곳 기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 그림책으로 그리운 엄마를 만나보는 건 어떠신지요?
『오늘은 아빠의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
윤여준 글·그림|모래알|2020년 | 64쪽
어느 날 퇴직한 아빠는 아침 식사 당번을 자청할 만큼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냅니다. 취미도 즐기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의 말수는 줄고 한숨은 늘어갑니다. 특히 재취업의 실패로 비 맞는 아빠의 어깨는 한없이 작아보입니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 이 책은 퇴직한 아빠의 일상을 따라가며 독백하듯 전하는 딸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엄마를 소재로 담은 그림책은 많지만 아빠를, 그것도 퇴직한 중년 아빠의 일상을 따라가는 그림책은 소재부터가 신선합니다. 특히 그림책에서 다룬 아빠는 너무 바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애틋함이나, 풍경처럼 묵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아빠가 이제 파자마 차림으로 어깨가 처진 모습을 보이게 되니 이제는 가족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빠가 차린 아침밥을 먹고 가겠다는 딸은 아빠에게 곁을 내주며 거창하지 않은 작은 관심만으로 아빠의 안부를 묻습니다. “아빠, 오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요안나 콘세이요 글· 라파엘 콘세이요 그림 | 사계절 | 2020년 | 144쪽
쉿! 당신에게만 말할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어두운 파란색 표지에 보일 듯 말 듯 음각 글씨체로 쓰인 제목은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비밀이니까!) 마주 선 두 사람은 얼굴을 바짝 대고 서로에게 속삭입니다. 남자는 어깨부터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여자는 한쪽 다리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의 화가 요안나 콘세이요의 에세이에 남편 라파엘이 자신의 글을 더해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부부가 마주 앉아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의외의 장소, 사건, 냄새, 풍경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 수놓는 소박하고 편안한 연필 스케치와 오랜 기억을 따라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요안나 그림의 특징입니다. 다소 두껍고 투박한 질감의 면지에서는 ‘세월’이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노라면 독자들도 어느새 그들 곁에 앉아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 둘, 내보이면서 잊고 지냈던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이수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20년 | 108쪽
소년작가 전이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를 ‘기타 6번 줄의 맑은 음을 닮은 기분 좋은 섬’이라고 표현합니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 자신이 받은 선물을 다시 되돌려 주고 싶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공교육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집에서 기타치고, 지붕에 올라가 글을 쓰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성장하는 그의 곁에는 늘 가족이 있습니다. 그는 가족을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매우 중요한 사람, 내 옆에 없다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고 아파오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전이수는 작품에 사랑과 가족을 듬뿍 담습니다. 바람 좋은 제주 함덕에서 ‘걸어가는 늑대들’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곱고 푸른 마음만큼이나 밝고 유쾌하고 발랄한 색감이 그림을 보는 이들의 마음에 난 생채기에 딱지가 앉게 하고, 진심을 담아 가슴으로 쓴 글들이 맑은 거울이 되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손효순, 김명희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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