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고 그 속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반전을 발견했을 때 그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 어릴 적에 즐겨 하던 말놀이, 흥얼거리던 노랫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구 – 안녕달의 그림책에는 익숙한 강아지 이름 ‘메리’가 등장하고, 아이의 호기심 많은 질문에 엄마가 ‘왜냐면~’이라고 답하는 말놀이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소라껍데기에서 들리는 ‘바닷소리’를 듣고 할머니는 상상 속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어린 시절 한 번쯤 겪었을 일들, 언젠가 듣고 생각해 봄 직한 이야기들, 그러나 그 익숙한 것들은 평범하게 끝나지 않고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정보가 더해져 또 다른 즐거운 상상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안녕달이 선사하는 익숙하지만 기발하고 즐거운 그림책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메리』
안녕달(글·그림)│사계절│2017년│52쪽
할머니 집에는 항상 개가 있었습니다. 메리, 해피, 검둥이, 점박이, 마루… 다 기억나지 않아도 가장 기억나는 이름은 역시 ‘메리’입니다. 할머니 집에 가면, 꼬리를 흔들며 제일 먼저 반겨주는 ‘메리’
어느 설날 아침, 할아버지가 강생이를 키우자고 결심하셨습니다. 강생이? 강아지? 저녁때 아버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고, 온 식구가 강아지 집을 만들고, 할머니는 강아지를 ‘메리’라고 부릅니다. 어미 개를 찾으며 밤늦도록 낑낑거리던 메리는 어느덧 다 자란 개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는 메리와 함께입니다. 흰둥이도, 점박이도, 삽살개도, 진돗개도 할머니 집 개 이름은 모조리 ‘메리’입니다. 전에 키우던 개도 메리, 전전에 키우던 개도 메리. 실은 할머니 동네 개들의 이름은 다 메리입니다. 어느 날 메리가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놀러 온 옆 동네 할머니, 배달 온 슈퍼 집 할아버지, 옆집 춘자 할머니네 손녀에게 새끼강아지를 보냅니다. 마지막 새끼강아지가 떠난 밤, 메리는 밤늦도록 새끼를 찾으며 낑낑거립니다. 온 식구가 다녀간 추석 저녁, 할머니는 혼자 밥을 먹다 말고, 밥상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메리에게도 고기 반찬을 건넵니다. 할머니와 메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갑니다. 그림책은 단순한 스토리 외에 인물들의 대화를 그림에 더 배치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어제도 그카더니 오늘도 그칸다! 자꾸 그카믄 확 묶아 놓는다!” “누야 말 단디 듣고 말썽 피아지 말고 둘이 잘 놀아래이” 등 사투리 가득한 할머니의 대화는 이야기를 더욱 친근하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2. 『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글·그림)│ 창비│2016년│56쪽
할머니 집은 도심 한가운데, 그러나 창문이 큰 옥상 집입니다. 바닷가를 다녀온 손주는 함께 바닷가에 갈 수 없는 할머니에게 소라껍데기를 선물합니다. 그 속에는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게가 움직이는 소리, 바닷소리가 담겨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오후, 목욕통에 몸을 담군 할머니와 메리는 소라껍데기 속으로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소라껍데기에서 나온 소라게를 따라 메리가 소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옵니다. 메리의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납니다. 할머니는 오래된 수영복을 꺼내입고 커다란 양산, 돗자리와 수박 반쪽을 챙겨 메리와 함께 소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속에는 한없이 드넓은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지고, 할머니와 메리는 수박을 나눠 먹고, 바다표범과 함께 일광욕을 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깁니다. 바다 위 기념품 가게에서 조개 모양을 한 바닷바람 스위치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바닷바람 스위치를 선풍기에 끼우자 선풍기는 윙윙거리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선사합니다. 할머니의 환상적인 여름휴가는 손주가 선사한 소라껍데기에서 들리는 ‘바닷소리’로 시작됩니다.
3. 『왜냐면』
안녕달(글·그림)│책읽는 곰│2017년│52쪽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왜’라는 질문을 쉴 새 없이 하고, 엄마는 ‘왜냐면~’이라는 대답으로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때론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 부모들은 답을 멈춰버리거나, 그만 질문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비 오는 날, 노란색 우비를 입은 아이는 “비는 왜 와요?”란 질문을 하고, 엄마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라고 대답합니다. 새가 왜 우냐는 아이의 연이은 질문에 엄마는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야”라며 기발한 답을 합니다. 나무 위에서 긁적거리는 새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바닷속에서 때밀이 수건을 들고 ‘룰루랄라 깨끗이 박박’ 몸을 닦는 물고기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등이 가려운 물고기들은 할아버지처럼 효자손이 필요하지만 고추밭 옆에서 자란 매운 물고기밥을 뱉어버려서 효자손은 도망갔다고 합니다. 엄마의 재치있는 대답에 아이는 “오늘 유치원에서 바지가 맵다고 울었어요”라며 자신의 실수를 용기 내어 말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의 모습을 치마와 바지만으로 표현한 놀이터 풍경은 은유적으로 아이들의 표정과 상황을 잘 표현합니다. 물고기 그림 옆에 ‘더럽대요, 간지러워, 깨끗이, 박박, 엄마 살살, 으메 시원해라, 저기 효자손이 있다’ 등 다양한 물고기의 목소리를 삽입해서 이야기는 다채롭고 몰입감을 더합니다.
4. 『겨울 이불』
안녕달(글·그림)│창비│2023년│68쪽
눈 오는 한겨울, 학교 끝나고 할머니 집으로 온 아이는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따끈한 겨울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겨울 이불 속 세상에는 목욕탕이 펼쳐지고, 곰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는 목욕탕 데스크 앞에는 메뉴판이 붙어있습니다. ‘방바닥 귤, 아궁이 군밤, 불구덩이 고구마, 겨울 냉커피, 얼음할머니 식혜, 곰 엉덩이 달걀’. 아이는 동물 친구들이 곤히 잠든 곳을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 도착합니다. “우리 강아지 왔니”라며 큰소리로 반겨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달걀과 식혜가 먹고 싶은 아이는 곰아저씨에게 주문을 합니다. 곰아저씨가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여니 그 속에는 또 다른 달걀 마을이 등장합니다. 식혜를 받기 위해 다른 이불을 걷으니 그곳에는 한겨울 호숫가 세상이 펼쳐집니다. 식혜와 달걀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아이는 동물들과 깔깔거리며 즐겁게 텔레비전을 보며 사락사락 잠이 듭니다. 할머니 집 겨울 이불 속 세상은 배부르고 따뜻해서 어떤 상상도 가능한 곳입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유주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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