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音癡)에서 치(癡)는 어리석다라는 뜻이 있다.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나 지각이 둔하다는 이유로 음악을 가까이 하지 않은 나에게 이 단어는 딱 어울리는 단어다. 그런 내가 클래식을 제목으로 한 책들을 모아보았다. 갑자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마터면 클래식도 모르고 살 뻔했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 주는 의미가 다가와서다. 잘 안다는 것은관심에서 출발해서 오랜 시간을 들인 노력의 선물인데도 관심도 갖지 않고 노력도 들이지 않았으면서도 둔할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알게 해준 책들이다.
『퇴근길 클래식 수업』
나웅준 ∣ PACE MAKER ∣ 2018년 ∣ 298쪽
‘관점을 다르게 가져보면 지루한 클래식이 재미있다’라고 표현한 작가는 예술사를 공부한 트렘펫 연주자다.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클래식 이야기하겠다며,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한 클래식이 오랜 기간 명맥이 끊기지 않고 전해지는 이유에는 시대는 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위주로 설명하고 있는 음악사,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음악, 그리고 음악가, 그리고 악기를 설명하며 든 예시들이 너무 적절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리가 주는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는 설명 역시 새롭다. 쉽게 설명하니 엄중한 틀과 무거운 장식 들을 벗어던진 클래식의 매력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세레나데>가 주는 처연함이 그 시대가 주었던 암울함과 그 곡을 만든 이의 개인사를 알았을 때 제대로 들렸던 경험, 모 방송에서 시즌으로 방영하는 <클래식이 왜 그래>를 챙겨보며 엄격하게만 느껴지던 클래식 작곡가들이 각각의 시대에서 어떤 역할로 이 음악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듯 이 책은 날 것의 클래식을 느끼게 하고 가까워지게 한다.
어렵고 지루하게 생각되는 클래식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도록 글을 쓰고, QR코드로 음악을 선물하고 있는 이 책으로, 하마터면 클래식을 모르고 살 뻔한 나 같은 분들이 장학퀴즈가 시작될 때 울리는 곡이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고, 멘델스존<결혼행진곡>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도 알게 되면 좋겠다.
『파워 클래식』
정민 외 36명 ∣ 민음사 ∣ 2013년 ∣ 292쪽
클래식이라 칭하면 음악이 떠오르지만 이 책의 제목 『파워 클래식』은 101명의 지성인과 문화계 인사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고전을 추천하고 자신의 이야기로 고전을 소개한 것을 뽑아 엮은 책이다. 나를 포함해서 책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고전이라 하면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 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소개된 고전을 더 찾아 읽지는 않았다. 제목만 알고 있는 많은 고전은 여전히 제목만 알고 있지만 다시 펼쳐드니 읽고 싶은 고전이 눈에 띈다.
내가 읽은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한 김정운 교수는 이 원고를 쓸 즈음 교수직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가 있었을 때였나 보다. 그가 소개한 조르바의 자유가 글쓴이가 누리는 자유와 연결하여 실감나면서도 처절하게 다가온다. 자유를 자신의 이유로 설명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의 에피소드도 떠오르게 했다.
이 글은 이 고전이 이런 내용이었군 하는 인식과 내가 읽은 고전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신선함. 나아가 새로운 시각을 소개한 사람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읽었던 기억뿐 아니라 그 고전을 소개하는 사람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주고 있다. 이 책으로 한 권의 고전을 다시 읽게 되는 행운을 누려보자.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1』
박종호 ∣ 시공사 ∣ 2004년 ∣ 140쪽
신경외과 의사인 작가는 고급스러운 정보와 감상으로, 클래식이라 하면 거리감을 가질 독자들에게는 역시나 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다. 작가 서문에도 이 책에서 소개한 클래식은 작가가 음악과 관련된 수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경험한 이야기라는 전제가 있다.
몰랐을 땐 엄청난 거리감이 있었던 비발디라는 음악가가 그 당시로는 사고뭉치(?)인 자유분방한 사제였다는 흥미로운 정보와 함께 열정 넘치는 현란한 바이올린 소리가 다가온다. 물론 대 음악가 베토벤의 대단함도 알기 버거운데 그의 음악을 해석하고 지휘한 카를로스 클라이버라는 지휘자의 정보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이 책의 구성은 음악가의 시대와 그가 음악을 만들었던 장소와 그곳의 분위기, 그리고 그의 음악을 사랑해서 연주하고 지휘하는 현대의 음악가까지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이안 보스트리지라는 테너 가수를 알게 되기도 했다.
조금 알게 되었다고 클래식이 친숙해졌다거나 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귀는 익숙한 것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상기하면서 클래식을 들어 볼 생각을 하게 한다는 면에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여기에 있는 모든 곡을 욕심낸다면 나처럼 다시 클래식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으니 알고 있었던 곡과 새롭게 관심이 간 곡 정도만 들어 보자. 요사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좋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검색 하나로 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 .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덕분에 주어지는 여유로움을 고전 음악과 고전을 읽으면서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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