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소설 그리고 세상

 

작가를 보고 소설을 선택하고,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프로필을 꼼꼼하게 읽기도 하는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가 궁금하다. 한 작가는 “이야기란 인물들의 고군분투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보다는 견디는 노력”이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했다. 내가 이 작가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은 것이 이런 맘이 있어서임을 깨달았다. 작가와 그가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책을 모았다.


1. 『음악 소설집』

김애란 외 4명 지음∣프란츠∣2024년∣271쪽

‘음악 앤솔러지’라는 콘셉트로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등 인지도가 높은 작가 다섯 명이 쓴 단편과 그들과의 인터뷰가 실린 소설집이다. 각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음악을 녹여내거나 음악 없이도 음악을 느끼게도 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했다. 또한 책 말미에 실린 공통 질문과 개별 질문을 통한 인터뷰에서 소설의 의미가 한층 더 깊이 풀어졌다. 소설이 ‘있을 법한 일을 작가가 꾸며 쓴 이야기’임이 인터뷰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작가의 어떤 생각이 이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윤성희 작가는 자신이 일상에서 음악을 잘 몰라 이 콘셉트 소설을 제안받고 처음엔 거절했지만, 엄마의 꿈속으로 찾아 들어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딸 이야기를 떠올리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인물의 견디는 노력, 특히 죽음을 다룰 때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과 상실을 경험한 인물이 어떤 애를 쓰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슬펐다는 작가는 독자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 오래된 팝 Love Hurts가 등장한다. 가사의 의미가 나이 듦과 연결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김연수 작가의 「수면위로」는 음악 없이도 음악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감당하기 어려워 생각을 멈추는, 생각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한 작가가 고마웠다. 은희경 작가의 「웨더링」은 음악과 관련된 구체적 설정이 나오지만, 음악에 관한 내용보다는 인물들의 심리가 섬세하다. 하지만 독자인 나는 등장하는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보너스가 있다. 마지막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에서는, 음악이 그 음악을 듣던 시절과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매개가 된다.

소설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행위의 밑바탕에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소리와 언어가 주는 매력, 리듬과 시각적 형상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위로도 받고, 공감하며 즐거움도 느낀다. 사람에 따라 운율에 더 깊이 빠지기도 하고, 글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기도 한다. 세상에 음악이 있고, 소설이 있어서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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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훌훌』

문경민 지음∣문학동네∣2022년∣255쪽

작가는 이 책으로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국어 교사인 나는 청소년 문학을 읽으며 감명도 받지만, 때로는 식상한 전개와 설정으로 책을 일찍 덮기도 한다. 청소년이 주요 독자이기에, 나이가 많아지는 나로서는 인물이나 상황에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고 학교라는 배경이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입양가족 이야기를 쓰고 이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분에게 글을 보여주고 확인받은 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고백한다.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지 않으면 더 깊은 감상이 가능하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고 제목이 가벼워 별반 기대 없이 책을 들었지만, 입양가족의 이야기로 가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했고,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 냈다. 세심하게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놓치기 쉬운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인물 간의 관계에서 선의와 신뢰가 따뜻하게 그려진다.

입양과 파양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언젠가는 이 상황을 ‘훌훌’ 털고 날아가기를 준비하는 유리라는 청소년을 응원하며 읽었다. 파양한 엄마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병이 들고, 엄마의 죽음으로 어린 아이를 맡게 되지만 그가 풀어가는 건강한 살아내기는 든든한 가족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파괴하는 딸을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는 딸이 입양한 유리를, 남겨진 손자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죽는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보게 된다.

청소년 대상 소설을 읽을 때 청소년보다도 주변 어른 모습에 더 눈이 갈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유리를 입양하고 연우를 괴롭힌 엄마의 내면에도 공감이 갔고, 유리를 공감하고 도와주는 교사는 단순한 교사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그가 견뎌야 하는 삶이 다가왔다.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교사가 꼰대이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 설정이면 감동이 덜하기 쉬운데, 이 작품 속 교사는 좋았다. 그리고 이 힘든 과정을 다 견디고 지켜봐야 하는 할아버지가 그런대로 중심을 잡아주어 고마웠다. 각자가 닥친 슬픔을 비켜서지 않고, 엎어지지 않고 훌훌 털어내기를 응원하며, 읽는 내가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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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김중미 지음∣낮은산∣2016년∣279쪽

청소년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가 김중미. 그의 다른 작품에 밀려 소개하지 않았던 이 책을 여기에 묶은 이유는,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이다. 고양이, 강아지가 인간과 함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 작품은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강아지를 키우기 전과 후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생명체에 대한 인식도, 의미도, 삶이라는 것이 꼭 인간에게 국한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강아지를 키운다고 결심이 섰을 때, 강아지의 모든 것을 내가 돌봐야 하고, 그런 만큼 나의 강아지라 생각했다. 그러다 1년이 넘어가면서 나의 강아지가 아니라 강아지로서 그 생명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만 소유물이 아니듯, 강아지 역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다. 유독 고양이에 반응하는 강아지를 보면 동물 간의 관계도 궁금하다. ‘개와 고양이’의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위로를 생각하다 자연이 주는 의미까지 확장된다.

작가 김중미는 유달리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사랑했다고 한다. 마음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는 동물을 통해 슬픔을 겪고, 다시 위로를 받은 경험을 글로 표현했다. 모리(집 고양이)가 혼자 살아남아 마음의 병을 얻고, 사람에게 길러지지 않는 고양이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크레머(길고양이) 이야기는 신선했다. 고양이 시각에서 사람, 은주가 서술되니 은주와 주변 사람의 상황이 덜 심각하게 생각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길고양이가 도도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 은주가 힘든 상황을 견디어 낼 것이라 짐작하게 한다. 함께 사는 세상이 자연스럽다.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전화를 받아 무사함을 알려주는 상상을 하는 나는, 함께 하는 강아지의 마음이 읽힐 때가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아지 역시 견주 마음이나 행동을 눈치챈다. 말 그대로 서로에게 반려의 존재다. 형태와 소리 말고도 각자의 눈빛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이 내게 위로가 된다면 세상이 훨씬 넓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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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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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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