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사는 곳은 아시아입니다. 하지만 우린 유럽이나 북미 소설을 중심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문화권 소설을 모르고 지내기도 합니다. 아시아 작가 소설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와 인연이 있는 베트남 작가의 작품과 아시아와 유럽 경계선에 있는 튀르키예, 그리고 중국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은 어디에서인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걸 느끼면 좋겠습니다.
1. 『미에우 나루터』
응웬 욱 뜨 지음, 하재홍 옮김∣아시아∣2017년∣168쪽


베트남 소설입니다. <끝없는 벌판>으로 2013년에 나왔다가, <꺼지지 않는 등불> <뜻대로의 삶>, <까이야>, <아득한 인간의 바다>, <낯선 사람>과 <미에우 나루터>를 더해서 <미에우 나루터>로 나왔습니다. 나머지 소설은 10쪽 남짓으로 짧고, <끝없는 벌판> 85쪽 정도로 가장 깁니다. 예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다가 다시 읽게 되었는데, 감탄 그 이상입니다.
소설 배경이 되는 풍경부터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드넓은 벌판 사이로 자그마한 샛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쯤이면 배를 세워도 될 듯싶었다. 배를 세우자 사나운 가뭄이 사방에서 끌어다 모은 땡볕을 한꺼번에 벌판에 쏟아부었다. 논바닥에 말라죽어 있는 어린 벼들은 마치 떨어지기 직전인 향불의 재처럼 손만 대면 바스러질 듯했다. (…) 벌판에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와 디엔에게는 이름 없는 곳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모든 벌판들을 추억과 함께 떠올리며 이름을 지어 불렀다. 우리 남매가 나무를 심었던 곳, 디엔이 뱀에 물렸던 곳, 내가 처음으로 월결을 했던 곳……. 그리고 앞으로 다른 곳에 흘러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이 벌판을 이 여자의 이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곳을 떠올리면 분명 가슴이 욱신욱신 아려올 것이다.” 그곳에 삶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단지 인생이라는 긴 강의 한 부분을 아버지를 통해 건넌 것이었고, 그러고 나선 떠나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만이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고통스러운 웃음을 토해내고 있다. (…) 우리는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결과도 알 수 없는 걸, 그냥 한번 몸으로 직접 겪어본 뒤에야 비로소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것들은 가슴 속에 묵직한 체증처럼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것에 완전히 통달하자면 우리는 그에 대한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먄 했다.” 주인공은 오리들의 사랑법을 보고 새로운 세상 ‘사랑’이라는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고요. 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아이가 한 평생 즐겁고 생기발랄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줘야지. 엄마의 가르침으로, 때때로 어른들의 잘못도 용서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키워볼 거야.”
표제작 <미에우 나루터>에는 르엉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일찍 부모가 죽고 가난하고 강가에서 누더기와 다름없는 오두막에 나룻배를 임대해서 살고 있습니다. 강 위에서 밥을 먹고 잡니다. 하지만 그는 봉이라는 여자애를 알았고 꿈을 꾸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못 생기고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은 나름대로 사는 법을 익혔고 강가에서 버티며 순수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가슴을 저며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삶에 대해, 특히 이름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듣고 내면 이야기보다 어떻게 힘겨운 삶을 헤쳐나가는지에 중심을 두고 썼다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이유입니다.
2.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문학과지성사∣2005년∣255쪽


가슴 저미도록 파고든 소설입니다. 하산이 겪은 심리적 압박감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하산을 괴롭힙니다. 그런 시대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요. 처음엔 쉽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하산은 왜 그토록 힘들어했는지. 하산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다시 나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다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일은 세상에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할릴은 하산이 6~7살 때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하산 어머니와 관련 있습니다. 한편 하산 어머니는 하산하고만 살려고 했습니다만, 그곳에선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하산 아버지가 하산 어머니를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조금씩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산은 엄마가 사람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아들을 죽게 한 원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선 그게 당연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부와 용맹으로 인정받던 할릴은 하산 엄마 에스메에게 여러 번 청혼을 했습니다. 에스메는 거절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할릴은 그녀를 납치해서 강제로 신부로 삼았고, 에스메를 사랑하던 압바스가 총으로 할릴을 살해했습니다. 비극의 서막입니다. ‘피의 복수’라고. 무스타파 하산 삼촌은 형수는 죄가 없지만 마을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메스메는 하산과 함께 떠나다가 하산만 잡아 집으로 데려가자, 어머니는 하산에게 돌아옵니다. 이후 하산은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매일 꿈을 꾸며 살았고, 마을 새끼 제비들이 죽어나갔는데, 그런 최악의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불행의 그림자가 마을에 드리워졌고 불까지 나게 됩니다. 하산 삼촌은 물론 동네 개들도 하산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하산은 칼날같은 바위에 피가 배도록 걷고 또 걸으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피의 복수’를 하고서야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작가는 언제나 소외된 주변 사람들 즉, 소수민족, 여성, 가난한 소시민, 도시 빈민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보편적이며 인간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고 작품을 썼다고. 이슬람 국가는 오랜 세월 유목민으로서 혈연공동체적 삶을 살아와서 그런 잘못된 일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내나 누이가 성폭행을 당하면 명예죄 즉 피의 복수가 일어난다고. 명예죄는 아버지나 오빠, 남편이 임무를 맡습니다. 국가권력은 여성들을 해친 살인자 남성을 별로 통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부조리를 다룬 소설입니다.
야사르 케말이 1950년대에 코잔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만났던 한 소년이 겪었던 실화를 소설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 하산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만난 사람이야기도 나옵니다.
3. 『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소나무∣2004년∣308쪽


“사실 세상일이란 게 아주 간단한 거야!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를 따라 처리하면 생활은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면 아주 편한 거야. 세상이 편하면, 지구도 그에 따라 추웠다 더웠다하는 거라구.”
주인공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병원 알아보려고 왔는데, 아내가 화를 냈고 선생님은 눈치껏 향수병을 주고 식사 없이 가려고 했다. 결국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선생님이 떠날 때 배웅하면서 섭섭해했다. 딸아이가 병이 났는데, 아내는 화 풀 곳이 없어 선생님들한테서 폐병이 옮겼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진료받고 약값 40원을 내려다 줄 서 있는 약국을 보고 어른 약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도 몸이 좋아진 것 같아 간 볶은 것과 국물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비 오는 날이라 두부 줄이 얼마 안 되어 빨리 사서 집으로 오는데, 10살 남짓 먹은 가정부가 자기 먹을 것만 챙겨 먹으려고 하고 있어 혼 내려다 아이에게 돌아갈까 참았다. 9월이면 내보내기로 했다. 가정부에 들어가는 100원이 아까웠다. 그때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면 되었다. 한편 아내는 통근버스로 편하게 출퇴근이 가능해져 기분이 좋아서 돌아왔다. 9월을 기다렸다. 9월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려는데 쉽게 되지 않았고, 그 사실을 가정부가 듣고 화를 내며 나가 버렸다. 그러나 A유아원에 옆집 인도여자 남편의 도움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집 애가 잘 울어 수행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좋은 유아원이어서 인정했다. 배추농사가 풍년이어서 배추가 남아돌자, 애국배추를 사라고 선전하고, 회사에서 영수증 처리를 해주는 만큼 배추를 샀다. 시장에서 오리장수를 만났는데, 알고보니 대학동창 이태백이었다. 그는 그의 수금일을 도왔고 하루 20원씩 퇴근후에 벌었다. 마지막날 직장 차장이 그를 발견하고 다음날 불러갔고, 장난으로 해본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넘어갔다. 유아원 다니던 애가 울면서 안간다고 해서 알아보니, 설날 때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아이가 ‘숯’이라고 해서 겨우 비싼 숯을 사서 선물하니 아이가 잘 다녔다. 한편 검침원 노인이 갑자기 찾아와 부탁을 했다. 보류중인 서류가 있어서라고, 노인 고향 현서기가 자신에게 부탁해서란다. 그는 노인에게 힘들거라고 말했다. 노인은 700원이나 하는 전자렌지를 선물로 주고 갔다. 돌려주려다 사용해보니 너무 좋아 그만두었다. 다음날 팽에게 서류처리를 부탁해서 해결했다.
이 소설은 황석영 작가가 ‘대단한 작가다! 문학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라고 극찬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낯선 중국 인민들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시민의 삶은 그렇습니다. 통근버스 문제, 두부 사기 위해 줄 서는 이야기, 아이 유치원, 가정부 문제 등입니다. 자녀가 생기면 삶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돈이 필요하고, 가끔 뇌물도 연줄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 과정을 견뎌 나가는 모습이 한편으론 눈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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