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가 생각나는 시절이다.
이 봄의 끝에 오미크론도 벚꽃 엔딩처럼 장렬하고 깨끗하게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나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열정의 이 봄날, 짧은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한 꽃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님을 말한 책들을 모아보았다.
『아빠와 조무래기 별』
박일환,박해솔 ∣ 삶창 ∣ 2012년∣ 279쪽
진정한 멋스러움은 생활의 흔적이 어우러져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라고 느낀 적이 많다. 쨍하고 머리를 치는 기발함도 멋지고, 화려한 조명 아래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특별함도 멋지지만 일상을 같이 하는 가운데 은근한 멋은 또 다른 매력이다. 시어가 주는 쨍함과 예술적 미도 좋지만 생활이 느껴지는 시를 만날 때 친근하고 푸근해진다. 이 시집은 생활시로도 매력이 넘쳐나,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진다. 아버지가 시를 쓰고 딸은 화답을 하듯 그림을 그렸다.
어릴 때 일방적인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접어들면 거부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시 눈부시게 성장해서 부모의 참된 사랑을 이해한다. 중간에 다소 삐걱거림도 그 아이가 그런 일방적인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증이리라. 아빠의 사랑이 한 아이를 성장시키고, 다시 그 아이의 성장이 아빠를 편안하게 하는 내용들로 그득한 시집의 시와 그림들을 보는 것이 참 따뜻하다.
시와 노래와 그림은 참 잘 통한다. 활자에 표현된 마음을 읽고, 소리로 들리는 감정을 느끼고, 색과 선이 주는 아름다움들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그 풍성함이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함께 한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겠다. 그런 의미로 이 시집을 이 좋은 봄날 읽기를 권한다.
『쉬엄쉬엄 가도 괜찮아요』
서정홍∣ 단비 ∣ 2019년 ∣ 112쪽
책꽂이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 시집들은 읽을 여유만 있으면, 짧은 글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산골 농부의 순박하고 거침없는 시들이 이 봄날, 도발적인 햇빛만큼이나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겨 소개해본다.
시 속에 자연이 있으면 그 여백이 더 놀랍다. 상상하기에 따라 다르게 모습을 나타내지만 이 시 속의 자연은 우리 일상이다. 화보 같은 자연도, 환상적인 자연도 다 멋지지만 우리 삶과 밀착된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자연이야 말로 친근하고 따뜻하다.
농부로 산지 17년차라는 시인의 시 속엔 자연이 선사한 주름진 얼굴이 있고, 햇빛이 만들어 낸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몸은 마르고 손바닥은 거칠어도 정신은 올곧고 눈빛이 살아있는 형형한 모습이 연상된다. 그 모습에 따듯한 밥도 있고 맛난 감자도 향긋한 나물도 있다. 시인보다 더 시인이 된 농부의 아내와 마을 사람들이 시집 가득 등장한다.
어느 시인에겐 봄은 고양이기도 하지만 농부시인에겐 향긋한 나물이고, 먹여 살려주는 논밭이 깨어나는 시기라 등만 닿으면 잠이 쏟아지는 때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시인은 쉬엄쉬엄 가라고 토닥여준다.
『청소년 마음시툰 1,2,3』
김성라 :글. 그림 시 선정 :박성우 / 글 그림: 싱고 ∣ 창비교육 ∣ 2020년 각 300여쪽
어린 시절 만화방에 살다시피 해서 책꽂이 한쪽은 안 읽은 만화가 없을 정도로 탐닉했음에도 어른이 되니 글이 더 눈에 들어오고, 그림들은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느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곤 만화와는 멀어졌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좋은 만화는 글에서 주지 못하는 구체적 상상을 도와주기도 한다.
시를 웹툰 형식으로 표현한 책들을 모아보았다. 눈이 잘 안 보이고 피로를 빨리 느껴, 책과 멀어지는 씁쓸함을 느낀다는 분들에게 그림과 함께 한 책들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지런히 적혀 있는 한 편의 시도 함께 말이다. 더구나 시를 웹툰 형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감각이나 생각이 시인의 시심과 다르게 드러나는 포인트를 보는 재미도 제법 좋다.
내려놓은 것에 익숙해지는 나이는 소중한 것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시인의 마음이나 글귀들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이럴 때 새로운 형식의 시집들도 살펴보기를 권한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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