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종류의 일들을 만나 해결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 또 여행이기도 하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도 그 일상을 셋팅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많은 처리들을 했을 터인데 여행을 하기위해 또는 여행의 과정에서 특별한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하는 것을 보면 삶이란 문제를 만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삶을 여행에 빗대기도 하나 보다.
여행이 멈춘 팬데믹 상황에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여행을 하는 이유에 내 여행의 주제가 있는 지도 살펴보고, 살아보는 여행이 가능해지면 어떤 곳으로 갈지, 즐거운 상상도 하게 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 문학동네 ∣ 2019년 ∣ 214쪽

김영하 작가는 나이가 제법 있음에도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하는 새로운 세대의 전형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너무 기발해서 좋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기법이나 소재에 멀미 같은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가 창조한 세계와 인물이 아닌 유독 여행을 즐겨한다는 작가인 그를 느낄 수 있어서 또 다른 신선함이 있었다.
 
하는 일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 겹치는, 아니 조금이라도 맞닿아 있는 사람은 일을 하면서 조금은 더 행복하지 싶다.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모두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거나 글을 썼던 여행지, 또는 글감을 던져 준 여행의 이야기 속에 나온다. 여행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와 겹친다면 더 풍성해지겠구나. 그렇다면 나에게 여행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힘들고. 그래서 때론 아무것도 아닌 여행객이 되기 위해 떠나고, 오래 살아온 내 삶의 터전이 주는 상처를 떠나 잠시 머문 여행지의 환대를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여행의 이유가 그것만이겠는가?
작가는 여행을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같다고도 했다. 소설을 읽기 전 그 설렘. 내 삶이 아닌 낯선 이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변화를 겪고 다시 내 현실로 돌아오지만 다시 그 여행을 꿈꾼다는 점에서 기막힌 비유다, 소설책을 고르고 첫 장을 펼칠 때의 그 설렘, 그 세계에서 겉돌기도 하지만 가끔은 푹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행지를 고르고 그 낯설음에 힘들다가도 다시 가방을 싸는 이유를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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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 남해의봄날 ∣ 2020년 ∣ 223쪽

책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그림들을 만나는 이 책은 보물 상자 안에서도 매력적인 물건임을 뽐내고 있다. 이 멋진 물건을 어찌 안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애를 써야 겨우 보이는 구멍가게를 그리고, 화가로서 묵혀 두었던 생각과 이야기를 전해드린다는 작가이자 화가는 프롤로그에 구멍가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늘 두근거렸다고 고백한다.
 
너무 탁월하면 부러움보다도 편안함을 주는데 이 작가의 그림이 그러하다. 펜으로, 한 올 한 올 색을 입혀 모습을 드러낸 구멍가게들, 그 곳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도 그림만큼이나 편안하다. 사람이 없는 외진 길, 정해진 길이 없는 길을 가는 작가의 여행은 목적은 있지만 목적지가 없어 더디다고 한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한다,
 
그림만 있었으면 다 보이지 못할 것들이 작가의 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로 더 잘 보인다. 물론 글만 있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은 선과 색이 어우러져 너무도 따뜻한 자태를 뽐낸다. 그림 속 구멍가게는 모든 것들이 다시금 태어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을 읽는 것도, 화려한 조명 아래 자태를 드러내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각기 매력적이지만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이 책 속의 그림들은 오감을 자극해서 책장을 넘기기가 아깝다.
 
자신만의 보물 상자가 있는 사람, 그 안에 넣어둘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나만의 보물 상자를 만들고, 오래도록 들여다 볼 보물들을 모아야겠다. 여행이 그 안에 넣을 수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구멍가게 #여행 #동전하나로도행복했던구멍가게의날들 #아크릴잉크와펜 #골목


『여행 말고 한 달 살기』

김은덕 백종민 ∣ 어떤 책 ∣ 2021년 ∣ 415쪽

20인치 캐리어에 짐을 싸고 한 달에 500불 내외의 숙소와 1000불 내외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해외의 마흔 곳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는 이 부부는 이 한 권의 책 속에 엄청난 정보들을 제공한다. 수많은 여행 책을 보았지만 여행정보와 함께 생각거리를 동시에 던져주는 책을 만나기 어려운데 눈에 딱 걸렸다.
 
살아보기를 권하는 이유, 자신들이 살아본 도시를 소개한 대목, 여행경비를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에서도 읽을거리와 정보가 풍부하다. 중요하고도 중요한 숙소를 고르는 노하우, 짐을 싸는 요령들이 구체적이고도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여행이 아닌 살아가기에서 필수인 현지에서 즐기는 방법과 현지 이웃들과의 관계 맺기도 구체적이라 열려있는 마음으로 다가가게 한다.
 
보통의 여행은 목적이 있어도 보름을 넘기기 어렵다. 딱 한 번, 한 달 동안 여행한 적이 있었다, 볼거리가 너무 많은 스페인과 포루투칼을 욕심내서 돌았지만 수많은 볼거리가 남은 것이 아니라 힘들었다는 강렬한 기억만이 더 진하게 남았다. 다시는 긴 시간 여행을 안 하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다.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었다.
 
이 책은 그런 여행 말고 삶의 공간으로 그 곳을 바라보게 해준다.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맞는 도시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어떤 계절에 그 곳에 있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하면 좋을 도시인지 생각하게 한다, 가야 할 이유는 넘친다. 물가가 저렴해서, 볼거리가 많아서, 날씨가 좋아서 등. 여행전문가가 진솔하게 뽑은 도시들을 우선 이 책으로 둘러보고, 나만의 도시를 정해보는 것이다. 코로나가 물러가고 내가 직업에서 자유로워지는 때에 반드시 실천해보리라 마음먹으며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이 책을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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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싸기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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