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노년의 삶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하는 일도 위로하거나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정도입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이 살아오면서 쌓은 삶을 달관한 지혜, 관용, 여유와 감수성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노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60을 지나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국내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노인 인구 비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여 노년의 나이에 노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는 이후 40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은 주로 은퇴한 6, 70대 노인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와 기품을 보여줍니다. 노인들도 인간이라면 지니고 있을 삶에 대한 애착, 욕망,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축적한 삶에 대한 통찰은 돋보입니다. 또 평생을 심심산골에서 일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삶은 그 자체가 문학이고 아름답습니다. 노년의 삶을 담은 소설과 시를 소개합니다.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 302쪽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은 주로 노인입니다.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에는 열아홉 꽃같은 나이에 서른을 넘긴 띠동갑 홀아비와 결혼한 복희씨가 나옵니다. 복희씨는 전처소생 아이까지 오남매를 기르고 결혼시켜 손녀손자까지 다 보았지만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남편이 중풍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욕만 보이는 남편을 보면서 치를 떱니다. <대담한 밥상>에서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할머니가 나오고, <그리움을 위하여>에는 주인공과 8살 터울인 사촌 동생이 나오는데 둘 다 환갑 진갑 지낸 나이입니다. <그래도 해피엔드>에는 정년퇴직한 노인 부부가 나옵니다. <촛불 밝힌 식탁>에는 은퇴 후 모아 놓은 돈으로 50평대 아파트를 아들 식구와 함께 살고자 하는 노인이 나옵니다. 며느리 때문에 20평 아파트 두 채를 사서 자식들과 마주 보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거리를 무시하며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자주 찾아갑니다. 아들 부부는 할머니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소설에는 노인이 느끼는 사랑,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삶에 대한 그리움이 보이며, 그리움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럴 것 없이 살았으므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이 소설은 노인들이 읽으면 절절한 마음이 들겠지만 젊은 사람들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작가는 책 끝에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시집살이 詩집살이』
김막동, 김점순, 도귀례,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조남순, 최영자 ∣ 북극곰 ∣ 2016년 ∣ 184쪽
책에는 며느리로서 살아온 곡성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김막동, 김점순, 도귀례,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조남순, 최영자가 저자입니다. 곡성의 아홉 시인이 124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제목에 ‘詩집살이’를 보탠 이유는 뒤늦게 한글을 배우며 시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시 제목을 통해 할머니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혼, 남편, 시어메, 부부싸움, 동행, 시집살이, 가을걷이, 품앗이, 밭농사, 봄농사, 잠실농사, 수박농사, 소내기, 콩타작이 그것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마음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서글플 때가 쎗지라, 환장하것어, 오래 사시쇼, 서럽다, 속은 타들어가고, 큰일 날 뻔했시야, 한숨만 나와, 좋겠다.
시는 간결합니다. 삶의 정수만 남았습니다. “봄도 숨이 차서 복복 기어 온다.” “가야 할 사람 가야제” “어찌나 무섭던지” “몸땡이살 보타지게/ 일만 하고 살았다” “함께 늙어가네” “헌 소리 또 하고/ 헌 소리 또 하고” “쑥밥을 해서 먹은 걸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네.” 할머니는 바라는 마음을 시에 온전히 뱉어냈습니다. “팔십이 넘으니까/ 새끼들에게 짐이 될까/ 병원 생활도 싫고/ 요양 병원도 싫고/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 부르시면 가고 싶은디.”
구절구절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쩡쩡 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는 “할머니들은 인생을 시로 쓰지 않고 시를 인생으로 지었나 봅니다.”라고 썼습니다. 할머니들의 삶 자체가 시입니다.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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