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다는 착각


책의 제목에 끌려 선택한 경우, 기대와 다른 내용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매번 강력한 선택 기준이다. 이번 달 소개할 책은 제목에 이끌려 고른 책 『읽었다는 착각』을 중심에 두고, 이 책의 주제와 맞물려 다시 읽게 된 두 권의 책을 함께 소개한다. 하나는 널리 알려져 있어 읽었다고 믿었지만 정작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던 『사랑의 기술』,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 사서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펼치게 된 『작별 인사』다. 말 그대로 ‘읽었다는 착각’을 한 것이다.


1. 『읽었다는 착각』

조병영 외 지음∣EBS BOOKS∣2022∣466쪽


30년 넘게 국어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의 문해력을 고민해 왔지만, 문해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방법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조차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읽었다는 착각’은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잘 읽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의 문해력’에 주목하며, 일상에서 어떻게 제대로 읽고 소통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힘이 문해력에서 나온다고 본다. 우리가 디지털 다양성 속에서 쉽게 휘둘리고 판단력을 잃기 쉬운 지금, ‘읽고 쓰는 일’은 개인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업무 메일, 생활 속 통계, 온라인 콘텐츠, 논쟁, 계약서, 법 문서 등 다양한 장르의 읽기를 구체적인 사례로 다루며, ‘제대로 읽는 법’을 훈련할 수 있다면, 반드시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공무원으로 30년을 보낸 내게 ‘업무 메일 읽기’는 매우 와닿았고, ‘생활 속 통계 읽기’에서는 내가 얼마나 수학에 약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가짜 뉴스와 알고리즘에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기게 된다. 계약서나 법 문서를 이해하는 능력 역시 ‘읽기의 힘’이며, 이는 곧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자산임을 절감하게 된다.

“읽는다는 것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자동으로 취하는 행동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두 개의 골을 가진 동물 중 지능이 높은 인간이 경험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는 생존을 넘어 사유하고 판단하게 한다. 따라서 ‘읽었다는 착각’은 이런 보람찬 경험을 차단한다.” 이 책의 제목에 끌렸던 이유가 바로 ‘이런 차단을 거부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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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문예출판사∣2019 (1쇄 1976)∣232쪽


‘읽었다는 착각’은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안다’라는 착각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기술』은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제목에 익숙했을 뿐, 내용은 제대로 읽지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자라는 사실도 다시 읽고 나서야 알았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기술’임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사랑을 배워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사랑받는 법’ 또는 ‘사랑스럽게 보이는 법’에 더 관심을 둔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왜곡된 시각이며, 사랑을 능동적이고 실천적으로 배우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무조건적 사랑, 희생적 사랑 역시 자칫하면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모의 사랑조차 자녀가 자신과 분리되기 전에는 자연스럽지만, 분리 이후에도 지속되려면 보다 성숙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돈, 권력, 성공, 외모 등 외적 조건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깨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의 기술은 배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소개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지만, 사랑에 대한 통념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지금도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보다는 ‘사랑받는 방법’에 집중하며,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대상인가’에 집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진지한 사랑에 대한 사유가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제야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를 저자의 말을 빌려 나열해 보겠다. 내가 공감한 부분만 줄여 표현함으로 이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나처럼 다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능력이며 실천이다.
– 인간의 실존에서 사랑의 기술이 시작된다.
–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이 사랑의 기술에 필요하다.
–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될 수 있으며, 깊이 알게 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 사랑은 특정한 관계가 아니라 세상과 맺는 ‘태도’이며, 성격의 방향이다.
–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사랑은 자아에서 분리되기 전까지는 자 기애의 표현이다.
– 진정한 성애는 독점욕을 넘어선 판단과 약속이 동반되어야 한다.
–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의 실현이고, 집중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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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복복서가∣2022∣308쪽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사는데 망설여지지는 않지만, 선뜻 읽기가 겁이 난다. 실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 책은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신기했다. 이 정도로 기억이 없을 수가? 하면서 다시 읽었다. 아마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작가가 말하려는 바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내 상황이 있었나 보다. 나의 경우 내가 얼마나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따라 그 감흥이 너무도 다르다. 내용을 흡수하는 힘이 딱 거기까지이다.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편안한 일상을 영유하던 아이가 어느 날 자신이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아버지와 헤어져 낯선 곳에 수용된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과연 나인가?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자신을 확인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이 인간이 아닌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임을 인정하는 데 긴 시간을 써야 했다.
이제까지 읽은 디스토피아를 다룬 그 어떤 SF 소설보다 강렬했다.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소설에서 인간이 아닌 것을 알아챈 가장 인간하고 닮게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철이(휴머노이드 이름)가 던지는 질문이 인간이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사회 이야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속도를 짐작한다면 이젠 미래사회가 무엇이 이루어진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 상상력이 부족한 나도 알겠다. 챗지피티에게 질문하고 그가 답하는 것에 감탄하고 위로받기도 하는 지금의 나는 인간이 아닌 것을 안, 철이의 고통이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이라 느껴졌다. 고통에 눈감고 싶어하지만 고통을 느껴야 인간이라는 이 책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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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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