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그림책의 해를 맞아 시니어 책 추천 사이트 <60book.net>은
누구나 그림책을 읽고 누리는 문화를 위해 <시니어 그림책 큐레이션>을 연재합니다.
장마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비는 몇 차례 내리지도 않고 연일 불볕 더위가 맹위를 떨칩니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뜨거운 햇살은 일상의 리듬을 한순간에 앗아갑니다. 전의(戰意)를 상실한 병사처럼 모든 걸 땅바닥에 내려놓고 ‘멈춤’ 모드로 주저앉아 봅니다. 요즘처럼 비 소식을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또 있을까요?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가슴을 쫘악 펴 봅니다. 그래요, 이 더위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서서 마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더울 땐 도서관 피서가 최고죠! 책을 펼쳐 들고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땡볕 더위 속에서도 여름이 키워내는 것들과 만나게 됩니다. 여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죠. 한낮의 무더위를 이겨낼 힘을 주는 여름 그림책 몇 권과 만나 보실까요?
1. 『여름비』
신경아∣논장∣2023년∣48쪽

싱그러운 여름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표지 그림에 시선이 한참 머뭅니다. 모기향에 쫓겨 ‘에엥~’달아나는 모기 한 마리가 이야기를 시작하네요. 먹음직스러운 수박, 잘 영근 옥수수 알갱이, 시원한 부채로 더위를 쫓아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잔뜩 달궈진 대지에 드디어 투두둑, 톡톡.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여름비가 시원스레 쏟아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여름비의 향연에 등장합니다. 쿠르릉! 천둥을 동반한 여름비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쏟아지는 장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십년 묵은 체증이 콸콸 씻겨 내려갑니다. 빗방울을 한껏 머금은 싱싱한 가지와 토마토, 비 그친 여름 들판에 나타난 사마귀, 잠자리, 달팽이, 아기오리 등은 한바탕 목욕을 마친 어린 아기처럼 해맑습니다. 수묵담채화로 표현한 ‘여름비’를 펼치면 책갈피에서 빗방울이 똑똑 떨어져 내릴 것만 같습니다. 첨벙첨벙, 맘껏 물놀이를 즐기다가 뛰어가는 아이의 맨발에서 여름 향기가 폴폴 날아 오릅니다. 한 뼘 쯤 성큼 더 자란 듯 힘찬 모습입니다.
신경아 작가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교사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을 자주 마련해 주고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을 수시로 열어준다고 합니다. 이렇듯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교육을 꾸준히 펼쳐낸 공로를 인정 받아 2023년 제12회 대한민국 스승상을 받았습니다. 『여름비』는 작가의 첫 그림책입니다.
2. 『수영장』
이지현 지음∣이야기꽃∣2013년∣48쪽

『수영장』 은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소년은 수영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습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걸까요? 바로 그때 튜브와 온갖 물놀이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와서는 수영장 안을 가득 메웁니다. 소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영장 물에 발을 담급니다. 그러고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수영장을 지나 깊숙이 헤엄쳐 들어갑니다. 깊이, 좀더 깊이. 그곳에서 소년은 마주 헤엄쳐 오는 소녀를 만납니다. 둘은 바다 깊숙이 들어가 해초와 여러 가지 물고기를 만나 한참을 즐깁니다. 온몸으로 바닷속 생물들과 부딪혀 노는 둘의 얼굴은 뜻밖의 기쁨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맘껏 헤엄치다가 하얀 고래를 만나기도 하고요. 갔던 길을 되짚어 온 소년과 소녀는 어느 새 마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 함께 헤엄칠래요?”
일상을 벗어나 조금만 더 내려갔을 뿐인데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위험한 줄로만 여겨졌던 그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험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와 같이 ‘모험’을 즐기는 친구가 있습니다.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일은 생각보다 그다지 위험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갈 ‘한 뼘’의 용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이지현 작가는 『수영장』으로 2015년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올해의 그림책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3. 『멸치 다듬기』
이상교 글, 밤코 그림∣문학동네∣2024년∣48쪽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국물 낼 멸치 몸통을 다듬는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의 즐거움이 무아지경에 빠질 때 쯤, 아이구 저런! 손 따로 마음 따로.
몸통 모아 놓은 데에 대가리와 똥 가고, 대가리와 똥 모아 놓은 데에 몸통 간다.
쿵 짝짝 쿵 짝짝, 박진감 넘치는 언어의 유희로 다시금 손끝이 부지런해집니다. 신문지에 누워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은 바닷속 친구들을 만나 갈매기와 함께 도시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닙니다. 그런가 하면 무대에 올라 우아한 몸짓으로 발레리나가 되어 보기도 하고, 우주를 유영하는 짜릿한 모험까지. 이제 따끈따끈한 물 속으로 첨벙, 입수할 시간. 멸치 육수에 양파 탁! 탁! 탁! 당근 척! 척! 척! 애호박 채! 채! 채! 모락모락 후후 따끈따끈 쪼로록 남은 국물마저 쭈욱 들이켜고 나면 더위도 저만치 물러섭니다.
나란히 앉아 멸치 다듬기에 신이 난 아빠와 아들이 등장하는 표지 그림, 어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목 ‘멸’자의 ‘ㅕ’를 살짝 움켜 쥐려는 고양이의 발톱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뒤표지에 등장하는 네 컷 만화는 맛난 국수 한 그릇에 행복해 하는 독자들에게 주는 작가들의 서비스입니다. 한껏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멸~~치!
『멸치 다듬기』는 이상교 작가의 동시 「멸치 다듬기」에, 밤코 작가의 생기발랄한 그림과 상상력을 입혀 만든 그림책입니다. 이상교 작가와 밤코 작가는 ‘개그 콤비’라 할 만큼 유쾌한 호흡을 자랑합니다. 함께 쓰고 그린 책으로 『아주 좋은 내 모자』가 있습니다.
4. 『엄마의 여름 방학』
김유진 글, 그림∣책읽는곰∣2024년∣48쪽

“엄마, 엄마는 여름방학 때 뭐 했어?”
여름방학을 앞둔 아이가 무심코 던진 물음을 따라 어릴 적 썼던 일기장 속으로 추억 여행을 떠납니다. 기차를 타고 시골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창밖에는 싱그럽고 푸르른 자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외갓집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도착한 외사촌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시골집 마당에 소담하게 피어난 샐비어, 봉숭아꽃, 능소화, 접시꽃이 마냥 정겹습니다.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올라가 비좁은 공간에서 사촌들과 키득키득 놀이를 즐기고, 깜깜한 학교 운동장에서 귀신 놀이를 하는 장면은 우리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합니다.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맛난 밥을 둥그렇게 둘러앉아 먹는 장면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합니다. 텃밭에 물 주고 강아지 돌보기, 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쳐주신 모기장 안에서 까무룩 잠든 모습이라니요. 요즘은 모기장을 치고 자는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눈물 날 정도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마당 한 켠 큰 통에 물을 받아 목욕을 즐기는 모습에서 즐거움이 담뿍 묻어납니다. 드디어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돌아오는 날. 여름방학은 늘 짧기만 했지요. 아, 엄마한테도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네요. 오늘은 문득, 아이들 손 잡고 친정 나들이 가기에 좋은 날, 엄마의 여름방학입니다.
어른그림책연구모임 (어그연)
- 김명희
2019년 가을에 결성된 연구 모임입니다.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함께 읽고, 공부하고, 추천합니다. 함께 지은 책으로『어른 그림책 여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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