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자신의 삶에 철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되지 싶다. 살다 보면 철학이라는 단어를 인식하지 않아도 나름의 철학자가 된다. 내 경우,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한 긴 시간, 내가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나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의 이치를 알기를 바랐지만, 정작 내게 철학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늦었다. 철학을 친근하게 내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였다면 내 바람에 다가가기 수월했으리라. 10만 부가 팔렸다는 철학 기본서는 내용이 탄탄하고도 깊이가 있고, 젊은 작가의 에세이는 철학서에서 말한 내용의 다른 버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두 책을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어 다시 꺼내 들어 읽었다.
1.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 사계절 ∣ 2011 ∣ 346쪽


이 작가의 저서 중 하나인 『감정 수업』을 오래전 읽었을 때, 그 놀라움이 기억난다.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언어로 이리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정이라는 것을 이렇게 세심하게 구분하여 알고 있다면 마음을 잘 알 수도 있겠구나! 감탄했다. 그 작가의 책인 이 기본 철학서는 10만 부가 더 넘게 팔렸다지만 이제야 읽은 나로서는 더 널리 알리고 싶다. 이 책이 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어렵고 낯선 사유를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풀어서 친절하게 서술해, 독자가 한 걸음 쉽게 다가가도록 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우리의 고통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일시불로 겪어내라고 권한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데 철학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글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 책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나와 너의 사이, 나, 너 우리의 철학,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진 니체에서 출발하여 공자, 맹자, 노자뿐 아니라, 임제의 <임제어록> 혜능 <육조단경>, 최시형 등 동·서양을 넘나든다. 비교적 알려진 철학적 사유임에도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아서 수정이 필요했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학자의 철학적 사유도 넓고 깊게 들어가게 도와준다. <논어>에서 말하는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타인의 배려에서 출발하고, 맹자로부터 시작된 수양의 윤리학이 정약용에 이르러 실천의 윤리학으로 진화된다는 설명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개념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책임을 부과한다.’ 아렌트의 ‘사유의 의무’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사회도, 그리고 어느 시기나 철학이 꼭 필요함을 인정하게 한다. 아이히만(나치 전범)으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아렌트) /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철학적 사유가 우리의 현재 고민과 어떤 접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철학을 배우거나 논하거나 생각하기에 우리 일상이 너무 번잡하고 정신이 없다. 그러다가 고민과 불안에 갇혀 있는 나를 자각하는 순간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맞이한다. 남들이 보는 나, 교육된 자아를 넘어서서 나를 찾는 과정에 철학적 사유가 자신을 직면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다룬 철학적 내용이 광범위하고 깊이 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2.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 놀 ∣ 2020 ∣ 293쪽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 에세이였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로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는 프로필에,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사람, 밝지만 가볍지 않은 사람이라 소개했다. 책장은 가볍게 넘겨졌지만 넘기기 전, 머물러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일상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는데,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깨달음의 궁극 기본 원리는 경험과 성찰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자존감을 지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타인과 함께한다는 것, 당당하게 산다는 것,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사랑을 배운다는 것’ 이렇게 6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문장을 문단처럼 써서 살짝 거슬리기도 했지만 계속 읽다 보니 끊어 쓴 것에 나름대로 흐름이 있어 쉽게 읽히고 마치 옆에서 말하고 있는 듯, 책장이 잘 넘겨지는 효과도 있다. 흔히 듣는 말처럼 편안하고 툭 던지는 투임에도 눈길이 머무는 문장이 많았다. 그중 몇 구절만 적어 보면, “제 인생은 특별하지 않지만 소중합니다. 인간관계에 완벽한 답은 없고,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으려 하면 마음만 병들 뿐이다. 관계는 영원하지 않음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다들 조금만 덜 열심히 살면 좋겠어요. 설득되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내려놓아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읽어내기보다는 의심하고 억압하도록 교육받았고.” 등 새기고 기억해서 내 일상에 적용하고 싶은 글이 그득하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강조하며 삶이 반복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질문했다. 마치 나무는 계절 내내 다른 모습이지만 그 나무이듯 이번 생이 끝이 아니라면, 진정한 나로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공자가 타인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그들의 차이를 인정하라는 말은 인간관계의 완벽한 답을 구하지 말라는 말과도 연결해 본다. 동서고금 철학자의 사유를 들여다보게 하고, 독자들 눈높이에 맞추어 해석하고 예시까지 들어 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으며, 현재 나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이 책은 짧게 끊어, 툭툭 던지듯 현재 자신의 고통을 다루면서도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고 핵심을 짚고 있어, 살면서 필요한 질문에 대한 맞춤형 답안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내가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시작되지만,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고민한 주제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닮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은 그 책대로, 나답게 살기로 결심한 작가가 관계에 대해 자신을 내려놓고, 조금 더 나답게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섬세한 언어로 적은 이 책은 이 책대로 살아가는 답을 얻는 것 같다.
3.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 타케 ∣ 인플루엔셜 ∣ 2014 ∣ 331쪽


주제를 정하면서 오래전 읽은 이 책이 생각이 났다. 다른 책과 엮어 2년에도 소개했지만 다시 한번 읽었다. 이 책은 제목이 10년 전 사회적 분위기에 부합하게 지어지고, 철학(심리학)이 바탕이지만 철학자와 청년과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 쉽게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자기계발서의 붐도 타서 스테디셀러다. 20세기 초 아들러의 이론이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깊이 있는 해석 덕에 지금의 우리에게 화두를 던져 주었고, 그 이후 많은 철학의 기본서와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게 했다고도 생각한다. 2년 전에는 ‘나를 위한 용기’에 방점을 두고 소개 글을 썼다면, 이번 소개 글은 아들러 심리학이, 동서고금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로 소개한다.
추천의 말을 쓴 김정운(심리학 교수)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한 마디로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점 같은 찰나로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를 춤추듯 즐겁게 몰두하라”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썼다. 어떤가? 너무나 많이 들어보고 생각하게 한 말들 아닌가? 위 두 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고, 이 책의 두 번째 쳅터도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제목을 뽑았다.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을 트라우마를 부정하라고 명쾌하게 해석했고,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를 강조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주관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괴로움은 결국 자신이 선택함으로, 자유도 행복도 모두 환경의 문제가 아닌 용기의 문제임을 역설했다. 나를 괴롭히는 열등감, 과거의 트라우마, 타인과의 경쟁에서 오는 불행감이나 불안감 모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삶에서 비롯되니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는 의미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풀고 싶을 만큼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까운 사람과의 수다부터 일부러 듣는 강연, 상담, 그리고 책 읽기까지 방법은 많다. 나의 경우 가장 확신을 주는 방법은 고민 끝에 선택한, 내가 읽은 책 속에서 그 길을 찾을 때다. 해서 나는 책 읽기의 매력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막막했던 마음에 걸어야 할 길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넘치는 자기계발서는 관계에 대한 대처를 말하고, 소설은 관계에 대한 갈등이 구현되고, 에세이는 그런 고민을 담은 사람을 만난다. 책을 읽으면 고민과 고통에 대한 길도 찾고 위로도 된다. 이만하면 책을 읽는 이유로 훌륭하지 않는가?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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