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이 소중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절실해집니다. 계절마다 느끼는 소소한 삶은 우리를 단단하게 합니다. 아침이 오면 오늘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지 살피는 일도 일상이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파하면 함께 마음을 여는 일도 나이 들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구절처럼 소풍 같은 인생입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산책하는 여유를 가지는 그림책입니다.
1. 『차곡차곡』
서선정 지음 ∣ 시공주니어 ∣ 2021년 ∣ 52쪽


우리 주변 일상을 계절별로 보여줍니다. 연필로 그린 그림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봄이 옵니다. “할머니의 부엌살림들도 봄맞이 중입니다.” “할아버지의 화분들도 봄기운에 들썩들썩. 나날이 씩씩해집니다.” 봄꽃 향기, 한낮의 따스함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여름에는 소나기, 장마, 수박, 뜨거운 모래알이 나오고, 그리고 가을이 다가옵니다.
“까슬까슬 마른 빨래에서는 가을 햇볕 냄새가 납니다./ 속이 꽉 찬 채소들에게 여름 내내 애썼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바람과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들판 다시 계절들이 쌓여 갑니다.”
겨울에는 책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차가운 조약돌.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물소리와 함께 겨울이 흘러옵니다./ 골목마다 풍겨 오는 고소한 냄새가 켜켜이 쌓여 갑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오랫동안 깜박이는 신호등./ 까만 밤하늘,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차오르는 하얀 세상입니다.”
그림을 보고 넘기면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어느새 이야기와 그림이 함께 책장을 넘깁니다. 계절이 책장을 넘기고, 그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우리 주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엽서 같은 그림과 짧은 문장이 정겹게 어울립니다. 그런 삶의 순간을 마음속으로 건져 올리는 그림책입니다.
2. 『아침에 창문을 열면』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 36쪽


제가 사는 집 두 번째 방 창문을 열면, 아침마다 솔바람이 풍겨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향기를 맡습니다. 이곳 송정마을은 그게 너무 좋습니다.
책에서도 아침이 밝아오면 창문을 엽니다. 그것도 활짝. 이제 거리가 나오고 강물이 흘러가고 물고기가 뛰어오릅니다. 이웃으로 산책 갑니다. 맑은 날씨면 좋겠죠. 그런데 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좋답니다. 창문을 열고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채화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림만으로도 느껴집니다. 거리가 북적거려야 좋겠죠. 가끔 서두르기도 하고요. 그러다 다시 아침을 맞이하고 창문을 열고요.
“오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무 그늘이 내 방이에요./ 언제나 살랑살랑 바람이 불지요./ 역시 나는 이곳이 좋아요.” 라고 말합니다. 유난히 밝은 색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일상이 소중한 것은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침을 책으로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3. 『네가 울 때에』
홍순미 지음 ∣ 봄봄출판사 ∣ 2020년 ∣ 40쪽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나요? 그럴 땐 무시하나요? 남자라서, 어른이라서, 울지 못하나요? 그렇진 않으시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이 울 때는 어떡하나요? 그런 마음으로 책에게 다가가 봅니다.
이 책은 “하늘이 높고 푸른 바람이 부는 날에”는 어떠세요?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문을 엽니다. 그리곤 마구 내뱉습니다. ‘돌멩이’, ’웃기지‘ 등이 나오면서 갑자기 유쾌해지다가, ’많이 힘들었구나‘ ’아팠겠다‘ 라면서, 안아주기까지 합니다.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힘든 사람을 가만히 안아주는 풍경입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을 보며 누워야겠지요. 일상이 편안해지는 그림책입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일상 속에서 마음을 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4. 『그날 아침,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루 지음, 염명순 옮김 ∣ 여유당 ∣ 2021년 ∣ 40쪽


아침에는 그냥 집을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하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도시는 깨어나 이미 바빠 움직입니다.”를 생각하며 받아들였습니다. 도시는 항상 바쁘니까요.
주인공은 일어나 샤워하고 옷을 입고 ’우유에 섞은 시리얼 한 그릇과 꿀 바른 빵 한 조각‘을 먹고 길을 떠납니다. 그게 여행이 시작된 겁니다. “떠나야 해. 자, 어서! 가방을 싸자!”
중요한 건 뒤도 안 돌아보고, 오직 앞만 보고 가는 겁니다. 그러다 세찬 바람을 만나고 흔들리고 길을 묻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신기한 것은 멜론 하나를 나눠 먹고, 그에게 텐트를 주는 겁니다. 다시 앞으로 움직입니다. 강가 우거진 숲에서 곰을 만났지만, 오랫동안 바라보고 떠납니다. 불을 밝힌 거대한 도시를 만나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주고 바꾸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늘도 많이 걸었습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겠지요.
불현듯 떠난 아침이었고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갑니다. 이웃들을 만나고 새들이 지저귀면서 아름다운 하루가 다시 열립니다. 삶은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벼워져야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거창하지 않은 여행이 삶을 가볍게 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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