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을 통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다른 이들과 만나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살아갑니다. 여기 다양한 여행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행길에 비우고 버리는 가치와 나눔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평화롭고 안전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가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험의 환상여행을 다녀옵니다.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여행 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지라도 우리의 오늘은 여행 그 이전과는 다르게 더 풍요롭고 깊게 바뀌어 있을 겁니다.
『그날 아침,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루(지음) | 염명순(옮김) | 여유당 2021년 | 40쪽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부엌 창가에서 나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곧바로 입을 옷가지들과 필요한 물건들을 커다란 배낭에 가득 챙겨 넣고 여행을 떠납니다. 세찬 바람에 지도가 날아가 버리고, 멜론을 나눠 먹은 사람에게 텐트를 주고, 호신용으로 챙겨왔던 총은 강가에 놔둡니다. 걷다가 멈춘 마을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과 포도 한 송이와 바꿉니다. 선글라스와 우산 등을 덜어내며 걷고 또 걷습니다. 커다란 배낭은 작은 가방과 바꾸고, 모기장은 그물을 손보는 어부에게 줍니다. 그렇게 물건들을 주고 나누고 버리니,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걷기 여행 속에서 나누고 비울수록 채워지며 형성되는 연대를 이야기하는 작가는 무심히 환경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동양화를 보는 듯한 그림들은 주황, 노랑, 파랑의 색과 면과 선으로 대비되게 표현하여 도시와 자연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보여줍니다. 도시는 숨 막힐 듯 가늘고 촘촘한 직선으로, 자연은 거친 듯 굵고 넓게 면을 칠해 자연의 생명력을 나타내며 인간은 자연 안의 생명체처럼 작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노랑으로 표현된 도시의 하늘은 마지막 장면에서 파란 하늘로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게 그대로였고 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를 사고, 이웃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방에서 발견한 씨앗을 함께 심습니다. 건물들은 초록으로 덮이고 이웃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새들이 지저귀고 나팔꽃과 인도 장미가 내뿜는 달콤한 향기로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디디에 레비(글), 알렉상드라 위아르(그림), 마음물꼬(옮김) | 고래이야기 | 2017년 | 34쪽
여름방학을 맞은 마르쿠스는 증기선을 타고 탕가피코 강 상류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밀림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홉 살에 처음 혼자 떠나 아홉 날을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여행이기에 앞서 겁이 납니다.
게다가 이 여행에는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마다 원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해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마르쿠스도 억지로 도자기 조각상과 이어폰을 바꾸고, 대나무 피리와 게임기를 바꾸고, 시시해 보이는 작은 빨간 상자와 운동화를 바꾸면서 이번 여행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받아들게 되는 마르쿠스는 이런 규칙이 계속 못마땅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원주민들에게 받은 시시하고 쓸모없어 보이던 물건들이 마르쿠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선들로 거침없이 표현된 웅장한 대자연의 밀림이 우리를 마주합니다. 그렇게 마르쿠스와 함께 여행을 하며 탕가피코 강의 원주민들의 나눔을 지켜보며 과연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제 아빠를 만난 마르쿠스의 여행의 마지막 물물교환은 무엇이었을까요?
『긴 여행』
프란체스카 산나(지음), 차정민(옮김) | 풀빛 | 2017년 | 48쪽
난민 소녀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열면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 등장합니다. 전쟁은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도, 사랑하는 아빠도 모두 앗아가고 엄마와 두 아이는 전쟁이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막막한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짐을 꾸리고 정들고 익숙한 모든 것에 작별 인사를 하고 밤에 몰래 집을 떠나 여러 날을 달려 마침내 국경에 도착합니다. 거대한 국경 문은 굳게 잠겨있고, 엄마와 두 아이는 국경 경비원의 눈을 피해 컴컴한 밤 국경 문을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작은 보트에 몸을 실어 끝없는 바다를 건너고 기차를 타고 여러 나라의 국경을 지나면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안전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긴 여행을 계속합니다.
가족을 향해오는 전쟁의 거대한 검은 손, 높고 촘촘하게 뻗어있는 나무들 앞에서 엄마와 두 아이는 작고 나약한 모습으로 서 있고, 다른 편 끝에 위치한 거대한 국경 문은 가족의 탈출이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강렬한 색채의 국경 경비원의 손짓과 고압적인 시선, 거대한 얼굴은 위협적이며 그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이나 바닥에 숨어있는 엄마와 두 아이의 모습은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입니다. 이들을 도와주는 인물조차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게 거대한 검은 그림자로 표현되고 그와 대비되어 국경을 넘는 한없이 작은 가족의 모습에서 공포와 두려움이 드러납니다. 두 아이가 잠든 후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엄마의 하염없는 눈물과 어두운 배경은 난민 가족의 절망적이고 암담한 상황을 극대화합니다. 전쟁을 피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엄마와 두 아이의 긴 여행은 때론 우리가 가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하루, 행복한 일상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가슴 깊이 깨닫게 합니다.
『머나먼 여행』
에런 베커(지음) | 웅진주니어 | 2014년 | 44쪽
에런 베커의 첫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에렌 베커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아프리카, 북유럽과 남태평양을 여행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머나먼 여행>을 그렸습니다. 이 책은 그 해 칼테콧 아너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그 후 작가는 <비밀의 문>, <끝없는 여행> 등 3부작을 출간합니다.
함께 놀 친구도 없고 가족도 모두 바빠 외로운 소녀는 어느 날 방에서 빨간펜을 발견하고 그 펜으로 문을 그려 마법 여행을 시작합니다. 문밖에는 아름다운 전등으로 가득 찬 숲이 펼쳐있고 그 숲을 따라가다 냇가를 발견한 소녀는 다시 빨간펜으로 배를 그려 아름답고 환상적인 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왕국의 수로를 따라가다가 폭포 앞에 다다르자 다시 빨간펜으로 하늘을 나는 풍선을 그려 왕궁의 하늘 위에 있는 비행선으로 다가갑니다. 거기서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보라색 새가 잡혀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소녀는 용기를 내어 탑에 갇힌 아름다운 꼬리의 보라색 새를 구해 날려 보냅니다. 무섭게 생긴 장군은 소녀를 대신 새장에 가두고 얼마 후 보라색 새가 다시 소녀의 빨간펜을 찾아와 소녀는 앙탄자를 그려 타고 사막으로 날아갑니다. 사막의 한 야자수 아래 있는 보라색 문으로 보라색 새를 따라 나오자 그 문은 소녀의 집 앞 우체통 출구였습니다. 소녀는 거기서 보라색 펜을 가진 소년과 함께 자전거를 그려서 타고 놉니다.
소년이 날려 보낸 보라색 새를 소녀는 마법 여행에서 발견하고 갇혀있는 보라색 새를 용감하게 구해줍니다. 그 보라색 새는 소녀를 현실 세계로 인도하고 소녀는 혼자 놀던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중세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소녀의 환상 속 세계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그런 마법 세계가 어딘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글없는 그림책은 독자를 자신만의 환상적인 상상 속 이야기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회
어른그림책연구회 – 손효순, 유주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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