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출발

 

MBTI(성격유형검사) 네 가지 척도 중 직관(실제 너머로 인식)과 감각(실제적인 인식)이냐를 물으면 감각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나는 보이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미루어 생각하는 상상(想像)은 평소에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학도 시작은 상상이며,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상상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직관과 감각의 차이도 혼란스럽다. 관심이 적었던 실제 너머의 인식이 궁금해 알고 싶고, 과학을 기반으로 한 책이 매우 흥미롭다. 작가의 엄청난 상상에 감탄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허구인 소설이라 쉽게 받아들인 이야기를 엮어 직관과 감각이 한 끗 차이임을 말하려 한다.



1.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을유문화사 ∣ 2018(40주년 기념판) ∣ 630쪽

이 책을 사두고 5년은 족히 지났다. 어쩌면 영원히 안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상황이 너무나 비참하여, 무언가 다른 생각이 필요했고 시간도 많아졌다. 평소 내 생각의 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절실했는 데 이 책이 걸린 것이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통해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보는 저자의 논리는 40년도 넘게 이슈화되고, 여전히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해석되고 있다, 덕분에 나 같이 과학적 사고가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책에 실린 30주년 기념 서문에서 저자는 여전히 자신감을 보이고, 가장 논란이 된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이유를 언급한다. 낯선 내용이라 겁을 먹고 읽기 시작했지만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고, 친절한 번역 덕에 생각보다 이해가 잘되었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로 시작되는 글은 각 장이 위트가 넘치는 제목으로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판 권두사(1976년)를 쓴 로버트 L 트리버스는 “다양한 동물과 조류의 실제적인 실험과 이론도 설득력 있지만,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의 개념, 이기주의의 유전학적 정의, 친족이론, 성비이론, 자연선택설 등을 도킨스가 얼마나 명쾌하고 세련된 문체로 펼쳐 냈는지” 언급했다. 특히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함을 논리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뭐가 그렇게 논쟁이 되었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자세하게 읽고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다행히 저자가 친절하게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설명한다) 이러한 논쟁이 도리어 저자의 의도가 널리 알려지게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자아(자기 자신에 관한 각 개인의 의식 또는 관념)가 있는 인간을 그 어떤 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하여, 40년이 넘게 논란이 된다, 사회생물학의 논쟁이 되었던 유전적 요인과 환경 문화적 요인 그 어느 하나에 무게를 두고 설명하려는 태도는 이미 인간의 본질을 설명함에 벗어날 수 있음을 유쾌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과학적 증명까지 곁들여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나는 새삼스럽게 늦은(?) 나이에 이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 들은 내 동기에 주목한다. 책을 읽기가 번거롭거나 안 내키면 이 책을 언급한 많은 동영상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 #이기적유전자 #리처드도킨스 #DNA #종


2. 『상상목공소』

김진송 ∣ 문학동네 ∣ 2011 ∣ 315쪽

작가는 상상을 “역지사지와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작용으로, 상상력은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고,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 불안정한 현실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좀 더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기 위해 현실을 독려하는 수단이다”라고 했다. 상상력은 “물질의 속성이 갖는 제약을 어떻게 넘어서는가의 문제로 과학지식, 경험지식, 자연지식을 이어주는 상상의 웜홀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책 여러 곳에서 작가가 그리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했고, 목수로 나무를 다루고, 자투리 나무를 이용해 작은 물건을 만들고 그 물건에 이야기를 넣고 다시 그 이야기를 쓰기를 번갈아 하는 자신을, 작가를 아는 사람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라는 표현이 있다. 그는 글을 썼고, 이미지에 익숙한 미술사를 공부했고, 그리고 목수로 10년을 살았다. 의자와 탁자를 만드는 틈틈이 자투리 나무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물건을 만들고, 그 움직이는 물건에 작가의 실제 너머로 인식하는 상상의 이야기를 넣었다.

나무라는 물질의 특성을 이해한 목수가 자연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 지식 있어야 가능한 움직이는 물건을 만들어 작가의 경험지식이 반영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그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물질문명과도 그 궤를 같이 하지만 상상의 세계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심오한 생각과 말하려는 이야기는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기계적 원리를 말하는 자세한 대목에서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확실하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진 못하겠다. 마치 위의 책 『이기적 유전자』 만큼이나 내게는 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단 “과학 지식, 경험 지식, 자연 지식을 이어주는 상상의 웜홀이 필요하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경험만이 전부라는 생각을 넘어서고 싶은 간절함을 보탠다.
4장 진화와 상상력, 이 챕터에서 벌레의 상상력과 『이기적 유전자』의 도킨스가 언급된다. 인간도 꽃도 벌레도 나름대로 생존과 번식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창의적 인간은 학문적이거나 언어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과 경험을 동원하여 다른 분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고 상상력은 공감력”이라는 작가의 말에 힘 받아,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분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바란다.


#목수일기 #상상 #창의적 #서울에딴스홀을허하라 #나무로깎은책벌레


3. 『파이 이야기』

얀 마텔 ∣ 작가정신 ∣ 통합본 2023 ∣ 229~684쪽

얀마텔의 다른 중 단편과 묶어 특별 합본판으로 나온 책을 친구가 선물했다. 오래전에 읽은 『파이 이야기』는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 4개 부분을 수상한 덕에 유명세를 치러서, 너도나도 읽은 듯하지만 막상 다시 읽어보면 제대로 읽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것 같다. 유명해서 접한 책은 다른 사람들의 갈채와 감동에 덩달아 내 느낌인 양 착각하기도 하니까말이다. 나는 이 책을 호랑이와의 바다에서 사투와 동거를 내 경험지식으로 이해했고, 전혀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 읽었음을 알아차렸다. 다시 읽은 『파이 이야기』는 위 두 책과 연결되고 우주에 대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합본판이라 두꺼운 책 첫머리에는 한국 독자들에게 만나게 된 기쁨을 친필로 써 앞 장에 실었다.“『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과 『파이 이야기』를 읽는 것은 상상을 통해 핀란드에서 인도로, 작가로서의 첫 시작인 책부터 성숙기의 책까지 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고, 상상의 끝판왕을 경험하게 하는 작가의 매력에 빠진다. 세밀한 묘사와 치밀한 구성 역시 압권이다.
파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작가이야기> 에서 이 책을 쓴 당시 작가의 상황과 이 이야기의 의미를 풀어 놓은 것도 이 책 이해를 도왔다. 조난 경험을 말하는 피신 몰라토 파텔과 그의 이야기를 듣는 책 속 작가가, 얀 마텔(?)임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하는 피신 몰라토 파텔은 인도 사람으로, 힌두교인으로 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접한다. 신과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눈치챈다면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물론 피신은 동물원을 경영한 부모님 덕에 일찍 동물과 더불어 살았고 호랑이와 오랜 시간 동거했다. 이는 그가 머문 식인 섬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생명체에 대한 지식과 관찰력이 어마 무시함이 드러나다. 살아난 피신이 종교학과 동물학을 공부했음이 당연하게 느껴지게 한다.
보이는 세계만을 믿는 많은 인간은 피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더더욱 규정대로 일 처리를 하려면(보험금은 그가 호랑이와 동거한 내용으로는 받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때론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을 넘어서는 상황도 있다. 보통 그럴 때 신과 대면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종교와 신의 존재를 묻고 있다. 알아차리기 힘든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 때론 공감했고, 세상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하고, 보이는 것만 믿기에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신의 뜻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도 생각한다. 책 내용에 피신이 무신론자보다 불가지론자가 더 싫다는 대목이 있다. 피신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무신론자도 불가지론 자도 아니니 이슬람이든 힌두교든 기독교든 다 믿을 수 있는 피신과도 같은 사람 아닐까? 그런 엉뚱한 결론을 내려본다.


#신 #종교 #파이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 #호랑이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60+책의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이미지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저작물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다운로드, 인쇄, 복사, 공유, 수정, 변경할 수 있지만, 반드시 출처(60book.net)를 밝혀야 합니다. (CC BY-N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