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집을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제목 보고 골라 읽는 재미입니다. 마음 크게 먹지 않아도 한 번에 읽을 수 있습니다.
테마 소설집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골라 읽을 수 있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일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소설을 모았다는 점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테마 소설집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때는 장편소설을 읽을 여유가 없거나 단편소설만의 매력에 빠져서입니다. 그러다 소설습작을 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해 소설가들이 어떻게 썼는지 궁금했습니다. ‘개’ ‘고양이’ ‘자전소설’ ‘가족’ ‘죽음’ ‘사랑’ ‘지하철’ ‘학교’ ‘거짓말’ 등 주제는 매우 다양합니다. 출판편집자가 묶기도 하고, 사서 교사 등 책을 좀 아는 선생님들이 어떤 주제와 관련된 단편을 뽑기도 했습니다. 장편을 읽기 힘들 때, 소설로 다가서기 위하거나 단편만의 매력에 빠지고 싶을 때 단편집은 유용합니다.
『밀지 마세요, 사람탑니다』
전건우, 정명섭, 조영주, 신원섭, 김선민, 정혜연 ∣ 들녘 ∣ 288쪽 ∣ 2022년
학교로 출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새벽부터 지하철을 탔는지. 그러다 ‘지하철 앤솔로지’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하철 이야기를 모은 소설집이라는 것. ‘밀지 마세요’ 제목에서 또 한 번 나를 자극했습니다. 자주 보는 풍경이니까요. 출근길 서울 금천구청역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몰려 들어옵니다. 겨우 내려 한숨 돌리며 뒤를 돌아보면 사람들이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겨우 빠져나온 공간 속으로 그들이 들어가는 풍경은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가를 보고 의아했습니다. 나름 젊은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생소한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살펴보니, 인문학과 소설, 픽션과 팩션, 다큐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작가는 추리소설가였고, 웹소설을 쓰고 문학상을 수상하며 추리소설가로 자리를 잡고, 범죄소설을 스는 엔지니어로 한국추리 스릴러 소설을 쓰거나, 판타지 장편소설을 쓰며 웹소설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거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숨겨진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장르를 벗어나는 작품을 썼다는 사실입니다. 작품 속 문장을 보면 더욱 끌릴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 해야될 지 모르겠는데 그 지하철은 정상적으로 멈출 때보다 조금 더 뒤쪽에 서 있었어요. 그러니까 앞쪽에 그 만큼 공간이 있을 거란 얘기였죠. 허리를 굽히고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게 좀 끔찍하긴 했는데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좀비가 온다고 계속 소리치니까 다른 방법이 없었죠. 그 빌어먹을 지하철 틈새를 기어갔어요. 진짜 영원히 이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지하철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간 준구는 황급히 바지 뒷주머니를 뒤졌다.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리며 만져질 뿐 늘 넣어두는 지갑이 없었다. 그 순간 절감했다. 자신은 2020년이 아니라 85년을 살고 있다는 것을. 교통카드 따위가 있을 시기가 아니었다.”
『파인다이닝』
최은영, 황시운, 윤이형, 이은선, 김이환, 노희준, 서유미 ∣ 은행나무 ∣ 232쪽 ∣ 2018년
‘파인 다이닝‘은 ’고급 식사‘ 또는 ’고급 식당‘을 뜻합니다. 다양한 주인공들이 요리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어릴 적 수녀의 꿈을 키워오다 수녀가 된 주인공이 열차 비정규직 승무원으로 취직한 언니가 두 번째 딸을 낳자 언니에게 줄 미역국을 끓입니다. “저는 새벽 내내 푹끓인 미역국의 맛을 봅니다.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더합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작가는 “KTX 해고 승무원의 승리와 복직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SNS상에서 주고 받은 두 작가와의 농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한 작가가 요리를 하지만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해 망쳐버리고, 그 작가의 망친 요리 포스팅에 팁을 달아주는 다른 작가는 책 이야기보다 그때 더 생기가 넘쳐있었다고. 그러면서 요리하는 마음과 소설 쓰는 마음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를지, 궁금해졌고, ’음식 소설‘이 아닌 ’요리 소설‘을 모든 책을 내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차리고, 그릇에 담아 가져가고, 건네고,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그 시간과 체온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낙지탕, 닭도리탕과 파스타, ‘천개의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밀푀유나베‘ 음식 등이 나오고, 베이비 시트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나옵니다.
『연결하는 소설』
김애란, 구소현, 오선영, 서이제, 김혜지, 임현석, 김보영, 전혜진 지음, 배우리, 김보경, 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52쪽 ∣ 2023
교과서적인 ’가르침‘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서교사들이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수많은 정보,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담아낼 수 있는 미디어의 가능성과 슬기로운 활용 방법”을 고민하면서 8편의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언어‘ ’인쇄 미디어‘, ’매스 미디어‘, ’소셜 미디어‘, ’미래의 미디어‘가 나옵니다. 이 책으로 “미디어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결코 미디어에 잠식되지 않고 슬기롭게 해석하고 생산하며, 책임감 있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길 응원“하고, ”타인의 삶 속으로 기꺼이 들어 가 진실된 소통으로 연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희망“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책만으로 유일한 소통을 하는 그녀가 나오고, 오지 않는 행운을 기다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침묵의 미래>, <후원명세서>, <고요한 시대>, <시트론 호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상태
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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