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 그림책 『첫 번째 질문』(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천개의바람, 2014)을 펼치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질문들이예요. 맑고 투명한 수채화 그림들과 다정한 물음들 앞에서 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을까요? 그때는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땅만 쳐다보며 집과 직장을 정신없이 오가던 시절이었죠. 그림책 한 권이 팽팽한 일상을 멈춰 세우고, 메말라 버린 감성을 일깨우며, 촉촉한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강렬한 체험을 했답니다.
이제는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삶에 ‘하늘’이라는 쉼표를 찍는 거죠. 하늘의 빛깔과 구름의 모양을 살피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면서 잠깐 쉬어 가는 그런 쉼표. 하늘은 눈부신 햇살, 붉은 노을, 은은한 달빛, 찬란한 별빛 등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해요. 과학의 발달로 많은 비밀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하늘은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절박할 때는 도움을 청하고 싶고, 정의로운 심판을 기대하기도 하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이기도 하죠.
이맘때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깊지요. ‘하늘멍’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마음속 깊이 접어두었던 상상력의 날개를 활짝 펼쳐보아요. 하늘 여행의 길잡이로 좋은 그림책들을 소개합니다.
1. 『하늘 조각』
이순옥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 52쪽
상쾌한 아침, 작고 귀여운 하늘 조각이 똑, 똑, 똑! 노크해요. 어느 집 창문으로 찾아와 멋진 자기 모습을 봐달라는 듯 인사합니다. 빌딩 사이, 분주한 자동차들 위로도 하늘이 보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이지만 어제와 똑같은 하늘은 아니죠.
바쁜 사람들은 하늘을 보지 않지만, 하늘은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답니다. 하늘은 하늘에만 있지 않아요. 건물 틈 사이, 나무 틈 사이, 땅에도 하늘 조각들이 숨어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속 소년과 아빠는 앞만 보고 가느라 숨어 있는 하늘 조각들을 그냥 지나쳐 버려요.
마침내 소년의 시선이 하늘 조각과 만나는데, 어디서 어떻게 만날까요? 바로 땅 위의 물웅덩이랍니다. 이 그림책 최고의 명장면!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조각이 소년의 놀란 두 눈에 가득 담겨요.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잘못된 거울」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해요. 원작자도 분명 좋아했을 기발하고 멋진 오마주입니다.
이순옥 작가는 두 차례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고, 『틈만 나면』을 비롯하여 여러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색깔을 테마로 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 『하늘 조각』은 파랑(색)을 상상력의 상징으로 쓴 것이라고 해요. 그림에 파랑을 더하듯이 일상에 상상의 세계를 가볍게 섞어본다면, 삶이 훨씬 더 즐겁고 아름다워지겠죠.
2. 『우리 집 하늘』
전병호 시, 김주경 그림 | 도토리숲 | 2020년 | 26쪽
시인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서 바라본 하늘이 한 편의 시가 되었고, 또 멋진 그림책이 되었어요. 산동네 소년의 조그만 집 하늘은 반 평 정도의 네모난 하늘이었죠. 해가 고개만 빼꼼 내밀다 지나가고, 달도 한걸음에 건너가 버리는 작은 하늘. 하지만 밤이 되면 좁았던 하늘이 억만 평으로 넓어지는 신기한 마법이 일어나죠. 그 마법의 열쇠는 바로 옥상! 그곳에서 소년은 아무도 가지지 않은 밤하늘과 수천 개의 별을 모두 차지할 수 있지요.
제 고향집에도 옥상이 있었어요. 부모님께 야단맞거나 사춘기의 오묘한 감정들이 출렁일 때면 찾아갔던 소중한 아지트였죠. 옥상 한구석에 웅크린 채 올려다본 밤하늘은 웅장하고 아름다웠어요. 은하수를 보면서 혼자 「반달」 노래도 부르고,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 등의 별자리를 찾다 보면, 울적한 마음과 심각한 고민은 어느새 하늘 높이 사라져버렸죠.
전병호 시인의 시는 담담하고 간결하지만, 벅찬 감동을 줍니다. 김주경 그림 작가는 짧은 시에 함축된 이야기와 이미지를 긴 파노라마로 활짝 펼쳐 보여줍니다. 독자들은 그림을 따라 소년과 함께 동심 가득한 상상의 세계로 날아올라요. 소년과 동물들이 보름달 위에 걸터앉아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이렇게 그림책 한 권으로도 황홀한 우주여행을 다녀올 수 있답니다.
3. 『언제나 하늘』
조미자 지음 | 미래아이 | 2020년 | 34쪽
연분홍 하늘을 바탕으로 동그란 거울 속에도 하늘이 담긴 예쁜 표지의 그림책이에요. 첫 장을 살짝 넘기면 파란 하늘에 빨간 풍선이 떠 있어요. 이상하죠? 풍선만 보면 마음이 어려지고, 가슴이 설렙니다. 유명한 대중가요 「노란 풍선」의 가사처럼요. 누군가 놓쳐버린 풍선을 따라 하늘 산책을 떠나볼까요?
빨간 풍선이 어느 집 파란 대문 위에 머물렀다가, 창문마다 작은 하늘을 품고 있는 건물 위로 날아갑니다. 햇살 가득한 옥상에서는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어요. 풍선은 점점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하얀 구름에 닿을 것만 같아요.
넓은 운동장에 도달할 즈음, 날이 저물면서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노을빛은 점점 짙어지고 붉어지다가 마침내 절정에 도달하지요. 이 세상 모든 색깔과 빛깔을 머금고 붉게 일렁이는 노을! 찬란한 순간을 붙잡은 그림에 압도되어 한참 바라봅니다.
조미자 작가는 『불안』, 『걱정 상자』 『가끔씩 나는』 등 내면의 감정을 다루는 그림책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언제나 하늘』은 평소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가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든 작품이에요. 익숙한 동네 풍경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늘을 정성껏 그렸답니다. 작가의 멋진 솜씨 덕분에, 멀리 떠나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지요. 그저 우리 곁에 언제나 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산책만 해도 충분하지요.
4.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올 줄이야』
최민지 지음 | 모래알 | 2022년 | 56쪽
독특한 제목의 책을 펼치면 땅에 웅크리고 있는 소녀에게 빨간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소녀가 그 줄을 잡고 파란 하늘로 계속 올라가요.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넘겨보니, 빨간 줄의 정체는 바로 책의 가름끈(책갈피끈) 이랍니다. 가름끈에서 동아줄로 뻗어나간 작가의 상상력!
하늘 높이 ‘책 세상’으로 올라간 소녀는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친구(책사람)도 만나요. 잠시 괴물책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요. 소녀와 책사람이 구름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여요. 소녀가 땅으로 내려준 가름끈(동아줄)을 잡고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노을빛 하늘 위로 올라가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눈 밝은 사람은 그 행렬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들을 발견할 수도 있지요.
한글 단어, 자모, 문장부호들을 콜라주한 이미지들만 있고 글이 없는 그림책이예요.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지만, 각자 마음대로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좋답니다. 최민지 작가는 『문어 목욕탕』, 『코끼리 미용실』 등 기발하고 참신한 시선의 작품들로 유명하지요.
책을 통해 얻은 온갖 혜택과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한다면, 책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맞습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동아줄을 잡고 하늘 위로, 책 세상으로 올라가 볼까요?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변영애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60+책의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이미지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저작물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다운로드, 인쇄, 복사, 공유, 수정, 변경할 수 있지만, 반드시 출처(60book.net)를 밝혀야 합니다. (CC BY-N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