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색다른 맛이에요 – 손바닥 소설이라는 느낌이거나 기발하거나 이상하거나

 

짧은 소설을 ‘손바닥 소설’, ‘‘미니픽션’, ‘미니서사’라고 부릅니다.
소설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합니다. 길이가 짧아 전철이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시작은 춘천행 청춘열차를 타면서였습니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길이가 짧아 빨리 읽었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길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한 편 읽고 눈을 감고 내용을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장편보다 단편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와 비슷합니다. 짧은 소설은 단편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몇 번 곱씹어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색다른 맛이기에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국내 작가들 짧은 소설 모음집과 기발한 작가 소설과 외국 작가의 짧은 소설 모음집을 소개합니다.



1. 『이해없이 당분간』

김금희 외 ∣ 걷는 사람 ∣ 236쪽 ∣ 2017년

엮은이는 희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수한 희망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고, 절망만 가득한 시절도 희망만으로 가득한 시절도 없었다고. 이 짧은 소설 모음집은 절망과 희망을 두루 기록한 작품집인데, 신예와 중견 소설가에게 요청하였고 원로 소설가까지 참여하여 다채로운 소설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몇 작품 소개합니다.
신춘문예 단편소설인 <거리의 마술사>로 젊은 작가상을 받은 김종옥의 <사랑>입니다.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변하기 전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기억의 문제라기보다는 경험의 문제에 가까웠다.”로 시작됩니다. 그는 결혼한 그녀를 만나서 종로를 걸었고 그때 대학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의 가정형편이 나오고 조직 이야기, 남자가 군대 간 이야기가 중간에 나옵니다. 커피 마시다 큰길에서 그녀와 헤어졌는데,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대학교 1년 선배였고, 운동권이었고, 운동권치고는 예쁘고, 세련되게 옷을 입은 여자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렇습니다. “사랑이었다. 아직 사랑을 말할 때는 아니지만, 아니, 이제 사랑을 말할 때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일 줄.”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가 마신 종이컵을 찾으면서입니다.
다음은 2009년 이후 여러 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문학상도 받은 작가 박솔뫼의 <내 기억으로 나는>입니다. “내 기억으로 나는 인쇄소 부근 골목에서 어릴 때 자주 놀았다. 작은 인쇄소와 기념패나 상장을 제작하는 가게와 의료기기 수입상이 있는 골목이었다.”로 시작해서 “그렇다면 나는 또 그것을 내 기억으로 나는, 이라고 말하며 언젠가 말하고 있겠지.”로 끝납니다. 주인공은 공간에 몇 개의 점을 정하고 그 안에 뭐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을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합니다. 자신의 기억으로 말입니다. 뭔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그런 것이라고.
표제작인 임현의 <이해없이 당분간>입니다. ‘나’는 여자친구 연희를 만나서 버스를 타면서 데이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멀리까지 가거나 돌아오거나 두 바퀴를 돌거나 했다고. 심지어 간단한 것을 챙겨 먹거나 마시기도 했다고. 공동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짠 곳도 버스 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떻게 다르냐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혼자 자주 타던 버스를 타고 갑니다. 끝은 이렇습니다. “버스 안에는 아저씨와 나 둘뿐이고,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따로 또 함께 울고 있었다.” 이유가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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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망상,어』

김솔 ∣ 문학동네 ∣ 296쪽 ∣ 2017년

책 제목이 특이합니다. ‘망상어’가 아니라 ‘망상, 어’입니다. ‘어’는 말씀 ‘어‘입니다. 작가는 등단작부터 발상이 좋고 기발한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는 심사평을 받았다고 하며,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했다고. 36편의 짧은 소설이 나옵니다. 제목만으로도 느낌이 옵니다. ’맥주와 콜라의 대위법‘, ’고독한 자들의 점심식사‘ ’방귀‘ ’각주구검‘ 등등. 그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표제작 <망상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물고기가 새끼를 낳는다고? 웃기지 마. 새끼를 낳은 건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야. 뭐, 네가 직접 그 물고기를 낚았다고? 하긴, 너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면서 연신 중얼거립니다. “모두 망상이야. 네가 살고 있는 곳에선 망상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게 틀림없어.” <고독한 자들의 점심식사>는 “L과 S는 오늘도 혼자서 점심을 먹는다. 나란히 또는 마주 보고 먹는 게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한 채, 서로를 경계하면서” 식사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두 명만 따로 밥을 먹고, 그것을 이겨 낸 보상으로 집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고독을 이겨낸 보상을 받는다고. “건축, 문학, 영화 따위에서 두 개의 대위적 양식이나 주제 따위를 결합시켜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 대위법인데, <서점과 도서관의 대위법>은 서점과 도서관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서점은 만남의 공간이고 도서관은 은둔의 공간이다.” “서점의 책들은 권리를 양도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은 의무를 보급한다. 서점은 입구와 출구를 여러 개씩 따로 가지고 있지만 도서관은 단 한 개의 입구를 출구로 삼는다. 서점에는 책을 위한 책이 많고 도서관에는 책에 의한 책이 많다.” “서점은 미술관의 별관이고 도서관은 건축가의 휴식처이다. 아이들은 서점 대신 도서관에서 자라야 하고 노인들은 도서관 대신 서점에서 늙어야 한다.” 이런 식입니다. 가끔 이런 짧은 소설로 멍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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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작 스마트소설』

주수자 옮김 ∣ 문학나무 ∣ 259쪽 ∣ 2021년

저자는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듯 짧은 소설이 최근 많이 나왔다면서, ’스마트 소설‘이 지향하는 짧음이 ’소설의 시적 순간‘과 닿아 있다고 말합니다.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부터 나옵니다. 시골 남자가 문지기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문지기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고 시골 남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은 왜 있는 걸까? 법의 문으로부터 한 줄기의 광채가 비쳐온다는 그 문은? 과연 법이라는 객관적인 문이 존재하는 걸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카프카의 소설은 어렵습니다. 스마트 소설은 더욱 어렵습니다. 소설을 옮긴 저자는 “무수한 질문들이 미지로 남아 있는 미로같은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로드 던세이니 <불행교환상점>도 특이합니다. 말 그대로 불행을 교환하는 상점. 낡은 갈색 들보 출입구에 빛바랜 노란색 글자로 ’만국 불행 교환상점‘이라고 쓰여 있는 상점을 주인공인 ’나‘가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죽음에서부터 엘리베이터 타기까지 세상의 모든 일이 불행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셔우드 앤더슨의 <그로테스크의 책>은 괴상하고 기이합니다. 수염이 희고 늙은 작가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몸이 아닌 그의 안에 무엇인가가 자신을 젊게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한 시간 동안 일하고 한 권의 책을 썼는데, ’그로테스크들에 관한 책‘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열정의 진실, 부와 가난의 진실‘ 등 수백 개의 진실을 나열했고 그들이 아름다웠고 그러한 진실들이 사람들을 그로테스크로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책은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소설 끝에 나옵니다.
저자는 소설을 소개하고 평설을 덧붙이면서, 독자들이 순간의 통찰들이 짧은 소설 안에서 자유롭게 길을 열었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고, 창조적인 독자가 이 책의 주인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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