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특히 무슨 일을 잘 해내고 받는 칭찬이야말로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잘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시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오늘도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애쓰는, 그렇지만 또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서툰 몸짓으로 보여 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한 그림책 4권을 소개합니다.
『완벽한 아이 팔아요』
미카엘 에스코피에(지은이), 마티외 모데(그림), 박선주(옮긴이) | 길벗스쿨 | 2017년 | 30쪽
완벽한 아이를 대형마켓에서 판다는 설정으로 마켓 카트에 아이가 들어가 있는 책표지를 보는 순간 책 내용이 무척 궁금합니다. 뒤프레 부부는 대형 마켓에서 원하던 완벽한 아이를 삽니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된 바티스트는 밥 투정도 안하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잠도 일찍 자고 공부도 잘하고, 친절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내 아이가 이렇게 완벽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아빠가 학교 축제 날짜를 잘못 알고 실수를 하는 바람에 바티스트는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게 됩니다. 많이 속상했던 바티스트는 집에 와서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화를 냅니다. 이에 깜짝 놀란 뒤프레 부부는 바티스트를 데리고 다시 대형마켓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화를 낸 바티스트의 수리를 요청하려고 하죠. 이에 마켓 직원이 바티스트에게 새 가족에 대해 지금의 가족에 대해 묻습니다. 바티스트의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 혹시 저한테도 완벽한 부모님을 찾아 주실 수 있나요?”
둥글둥글한 등장인물들은 따라 그리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앞의 면지에 있는 엄마 아빠 두 사람의 모습이 맨 뒷장의 면지로 가면 아이와 함께입니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이 어리고 서툴다는 사실을 깜빡합니다. 사실 아이들만 서툰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도 덤벙대거나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실을 깜빡하고 완벽한 부모 역할과 완벽한 아이의 역할을 원한다면 가족이 모여 이 그림책을 함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코린 로브라 비탈리(지은이), 마리옹 뒤발(그림), 이하나(옮긴이) | 그림책공작소 | 2021년 | 40쪽
완벽했던 앙통의 수박밭에 수박 한 통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건 한 통이지만 앙통에게는 수박밭 절반이 사라진 것만 같습니다. 오와 열을 맞추고 빈틈없이 늘어선 수박밭의 빈자리에 앙통이 서 있습니다. 수박밭에 온갖 정성을 쏟은 앙통은 도둑맞은 한 통의 수박 때문에 깊은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온통 사라진 수박 생각뿐이고 앙통의 눈에서는 수박 눈물이 흐를 지경입니다. 억울하고 슬픈 마음에 악몽까지 꾸고 난 앙통은 수박밭을 지키기로 합니다. 하지만 깊은 밤 쏟아지는 잠으로 수박밭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 일을 어쩌나요?
간결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오히려 앙통의 상실감과 절망을 공감하기에 충분합니다. 거기에 몽환적이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한 그림은 좌우 대칭인 듯하면서 양쪽을 한꺼번에 보게 만듭니다. 그렇게 보다 보면 보는 이에게 앙통의 불안과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도둑맞은 수박 빈자리에 서 있는 앙통, 수박밭을 지키겠다고 밭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은 앙통, 큰 수박 사이에서 고개를 숙인 앙통을 보면서 앙통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데, 자꾸 웃음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밤새 길고양이들로 인해 앙통의 수박밭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됩니다. 난장판이 된 수박밭에서 아침을 맞은 앙통은 처음으로 모자를 벗어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제 도둑맞은 수박의 빈자리는 사라졌습니다. 수박은 더 싱싱해 보이고 비로소 앙통의 수박밭은 자금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해졌습니다.
앙통으로부터 오늘도 어수선했지만 무질서한 우리의 일상이 완벽했다고 위로받고 싶어지는 그림책입니다.
『완벽한 우리 아빠의 절대!
안 완벽한 비밀 11』
노에 까를랑(지은이), 호넝 바델(그림), 윤민정(옮긴이) | 바둑이하우스 | 2020년 | 22쪽
제목에서 이미 아빠의 어설픔과 엉성함이 느껴지고, 이어 표지를 넘기면 꿀 떨어지는 눈으로 딸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가 전해주는 행복감이 보태집니다.
그렇게 그림책은 왼쪽에 아빠의 모습을 “아빠는 늘 이런 사람이야.” 하고 펼쳐놓습니다. 몇 시간씩 꼼짝 안 하고 숙제를 하고, 무엇이든 뚝딱 만드는 조립의 달인이며, 근면함으로 운동도 빼먹지 않고, 언제나 용감하며, 어떤 경우에든지 잘 참고, 정리 정돈은 기본이며, 요리도 물론 잘하고, 우아함을 좋아하며. 책은 명작만 읽고, 뭐든지 잘 고치는 기계 박사입니다.
그런데 그림책의 오른쪽에서 마주하는 실제 아빠의 모습은 완벽함과는 많이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이 안 완벽한 우리 아빠의 비밀입니다.
<완벽한 산타클로스의 절대! 금지수칙 19>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평을 받은 노에 까를랑과 호넝 바델 콤비는 이 책에서도 감동의 반전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아빠가 사랑하는 딸에게 한껏 부풀려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빠들의 모습입니다. 사실 아빠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 앞에서만큼은 완벽해 보이고 싶습니다. 그래야 딸에게 훨씬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테니까요.
아빠의 이런 사랑으로 인해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더 빛이 난다는 것을 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아빠의 비밀을 눈감아 주겠지요. 완벽하지 않은 우리의 아빠들을 위로하는 그림책입니다.
『완벽한 계획에 필요한 빈칸』
쿄 매클리어(지은이), 훌리아 사르다(그림), 신지호(옮긴이) | 노란상상 | 2016년 | 48쪽
매일매일 계획을 짜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 막내, 첫째, 둘째, 할아버지 모두 열심히 메모를 합니다. 집안은 그런 메모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번역자는 그 가족들이 적어놓은 많은 메모들을 모두 번역해서 옮기는 일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이 낯선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와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했지만,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메모에 적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둘째 에드워드는 조금 달랐습니다. 남자가 집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둔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잠시 어색했던 두 사람은 곧 궁금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자와 에드워드는 서로에게 질문을 하며 지붕 끝에 앉아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로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메모도 하지 않고요. 그러자 두 사람은 아주 멋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지요.
이 가족은 아직도 열심히 메모를 합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칸은 늘 비워둔답니다, 혹시 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메모를 잘하고 계획을 열심히 짠다고 한들 우리의 삶이 그것에 딱 맞게 흘러가 줄까요? 불쑥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끔은 쉬어가야만 할 때가 생깁니다. 또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부지런히 서둘러야 할 일도 생기지요.
그걸 잊고 빈틈없이 빡빡하게 계획을 세운다면 의도치 못한 다른 일들이 생겼을 때 매우 난감합니다. 또 불쑥 찾아온 행복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라도 계획을 짤 때는 빈칸을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적절하게 짜진 빈칸으로 뜻밖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완벽한 계획이 될 것입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손효순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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