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아지는 나이는, 사회에서 꼭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뒷전에 물러났구나!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구나” 하는 비참함, 때론 무기력해지는 시간을 견뎌내기도 해야 한다. 그러다가 그런 시기를 넘기면, 많아진 시간을 온전하게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는 시기임도 깨닫게 된다. 그 시간을 누릴 나를 위한 예술 세계가 필요하다. 그 세계로 안내하는 책들을 모아보았다.
『널 위한 문화예술』
널 위한 문화예술 편집팀 ∣ whale books ∣ 2021년 ∣ 323쪽
이 책은 2018년 ‘널 위한 문화예술’이라는 유튜브 채널로 예술 이야기를 시작해서 21년 기준, 40만 구독자가 있다는 유튜브 내용을, ‘예술의 순간들을 두고두고 간직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책을 읽은 후에 나도 유튜브에 들어가 보았다. 이미 방영된 내용들이 엄선해서 책으로 재탄생되었다.
아직도 책으로 읽는 것이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오는 나는 책을 먼저 만나고, 들어보는 유튜브가 아주 좋았다. 눈이 나빠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이가 되어가니 유튜브는 매우 고마운 도구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대부분의 내용은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물처럼 허망하고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인기를 끈 영상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지고 나 같은 독자는 다시 양질의 내용을 시청할 수 있으니 반가웠다.
유튜브 내용은 더 방대하겠지만 이 책은 ‘명화의 비밀’, ‘예술가의 이유’라는 큰 장으로 나뉘어 20명도 넘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중간중간에 색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색의 특징과 의미를 기술했는데 아주 유익했다. (색을 깊게 생각하거나 상식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웠다)
많은 그림 관련 책에서 언급한 상식적인 내용도 있고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기도 하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술술 글을 읽어내려 가게 했다. 책에 소개된 그림들은 비교적 유명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무리 들어도 시대가 너무 다르고 생소한 예술 세계인지라 식상하지 않고 내 짧은 미술의 이해를 도왔다.
이 책을 읽고 보았더라면 더 많은 것이 보였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시 여기에 소개된 그림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 여행을 계획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니 나를 위한 예술 세계로 끌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림트* 전 원경 ∣ arte ∣ 2018년 ∣ 303쪽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가 작가에게 제안한 화가 중, 클림트를 선택해서 그가 살았던 빈을 여행하면서 그의 작품활동을 짚어보고 글을 썼다는 서문을 읽는데 이 작가는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있고 멋진 여행도 하고 글도 써 이리 좋은 책을 냈으니 말이다.
클림트 미술작품을 새로운 전시 형태로, 워커힐 전시장에서 본 후 더 관심이 가게 되었는데,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그 작품이 탄생한 세계를 탐험하고, 화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훌륭하게 수행된 책을 통해 클림트 미술 세계를 더 알게 되어 반가웠다. 더불어 작가의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자연스레 녹아 있어, 한 화가를 통해 미술사 전반을 아주 조금은 더 이해한 것 같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어가는 시기에 평생을 빈에서 살며, 화가로서 온갖 영화와 아픔과 성장을 겪은 클림트를 통해 빈이라는 도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다시 한번 여행을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클림트의 빌라에서 시작해서 부르크 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그리고 빈분리파 회관인 전체 시온을 거쳐 이탈리아 라벤나 산비탈레의 성당으로 이어지는 여정과 그 여정과 함께하는 클림트 그림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고, 고대와 이어지는 클림트 미술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여러 화가의 고민이나 그 시대의 미술품의 의미, 그리고 유명 화가들로 이어지는 미술사를 어렴풋하게 알게 된 듯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나를 위한 클림트의 예술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예술 세계가 배움, 또는 상식, 때론 다른 사람에 대한 권유, 혹은 유명함으로 시작되더라도 그 예술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은 다 각기 다른 이유와 상황이다. 나는 이제야 클림트의 그림들이 내 이유와 상황에서 보이기 시작하니 나를 위한 예술 세계가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에겐 정말 시간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이소영 ∣ 창비 ∣ 2022 ∣ 254쪽
다양한 도구들이 많아 책이 덜 중요해지고 있지만 책을 내기에는 어느 시대보다 수월한 때이다. 마음만 먹으면 책을 출간하는 것이 큰일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젊은 층에서 어떤 이들은 책을 내는 일에 열정적인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도 개인을 위한 책도 많이 내고 있다. 출판의 영역이 넓어진 장점도 있지만 독자 처지에서는 좋은 책을 골라야 하는 수고로움을 게을리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동시에 꼭 출판까지 해야 할 책이었는지도 점검하게 된다.
미술 관련 책을 읽다가 책 홍보 문구가 흥미로워 선택한 책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잊혔거나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의 삶과 작품에 매료되어 살다가 유명하지도 영향력도 없는 화가에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결국 자신이 사라지고 싶지 않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고 표현했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참 어울리는 나이의 작가였다. 그 욕망도 나이가 들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안다면 좀 덜 괴로운 심정으로 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사에 길이 남은 유명한 화가들과 그림들도 사실 다 소화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전공자나 혹은 개인적 관심사로, 잊히거나 사라진 화가를 소개한 이런 미술 이야기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나를 위한 예술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렵고 크게 와 닿지 않아도 이런 미술품도, 작가도 있었다는 또는 이 미술품을 보고 개인의 감상이나 미술적 의미를 책으로까지 엮었다는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모두는 각자에게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훌륭한 것을 남기지 않았어도 각자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 감동을 준 그림이 클림트의 <키스>도 될 수 있지만 내 집에 걸려 있던 작은 민화 액자일 수도 있으니까. 여기 소개된 이름도 잘 모르는 화가의 그림들을 설명한 글 속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나만의 예술 세계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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