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보름달이 뜨지만 이맘때처럼 기다려지지는 않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유난히 바라는게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하지만 추석이 추수전 풍년을 기원하는 명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요. 일 년 내내 공들인 농사로 풍요로운 겨울을 나기를 바랐을테니까요.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달을 보며 비는 것은 한낮의 거만한 태양보다 어두움을 밝히는 부드러운 달빛이 너그러워 보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달빛도 사실은 태양빛이에요. 태양빛이 달에 비춰져서 달빛처럼 보이니까요. 달은 묵묵히 뜨겁고 눈부신 태양빛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어두운 밤을 밝혀주고 있어요. 그믐의 밤은 달에게 휴식이고, 보름 밤의 달은 고통의 절정이겠어요. 태양빛을 마주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위해 달은 날마다 조금씩 태양빛을 받아 차곡차곡 쌓고 있으니까요. 어찌 그런 달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찌 그런 달을 품은 그림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랑스러운 ‘달’그림책 입니다.
1. 『달기슭』
신영희 지음 | 개똥이 | 2023년 | 32쪽
높은 건물이 없는 너른 들판, 집 뒤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바다나 강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은 달맞이 하기에 안성맞춤 입니다.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커다랗고 둥근 달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보이지요. 그런 달맞이 장소는 누군가의 깊은 바람일거에요.
일본에서 그림책을 그리며 지내는 신영희 작가의 『달기슭』은 달에 가고 싶은 이들에게 달맞이를 할 수 있는 산이 된 순이 이야기 입니다. 순이의 산은 달에 가고 싶지만 가 닿을 수 없는 많은 이들의 쉼터가 됩니다. 순이의 머리는 새들의 둥지가 되고, 순이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는 물고기들의 쉼터가 되지요. 순이의 가슴은 순이처럼 더이상 걸을 수 없는 이들의 집이 되기도 합니다. 보름달이 떠오른 밤에는 함께 달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그림책을 펼치면 캔버스의 질감이 느껴지는 거친 그림이 눈길을 끕니다. 장면마다 노랗게 표현된 순이와 순이의 산을 찾아온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란 달과 순이 그리고 고양이와 새와 아이를 보면 달이 그들에게 와 있다는.걸 알 수 있어요. 기다리면 보름의 밝은 달이 달기슭에 와요. 아무리 걸어도 갈 수 없는 달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일도 있어요. 그믐의 깊은 어둠에 묻힐 때도 있고, 달을 가린 흐린 구름이 세찬 비를 뿌려 슬픔이 솟아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잊지 않고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또 다른 날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2. 『무무씨의 달그네』
고정순 지음 | 달그림 | 2021년 | 44쪽
‘친구 마니에게’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그리운 친구에게 보내는 무무씨의 편지 입니다. 무무씨는 작은 구둣방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신발을 닦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많은 손님들이 깨끗한 신발을 신고 저 멀리 보이는 달로 떠나려고 합니다. 하나같이 기대와 희망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찾아오지요. 하지만 무무씨는 달로 떠나지않고 달을 바라볼 수 있는 그네를 만듭니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달을 바라보며 쓸쓸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무무씨는 달을 볼 수 없어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무무씨는 정말 달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은 바라보고 싶기 마련이니까요.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해요. 그 곳이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소설가는 에펠탑을 싫어했답니다. 만약에 에펠탑을 좋아했다면 탑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매일 식사를 했을거에요. 달을 볼 수 없어서 달로 떠나지 못한 무무씨 처럼요.
어쩌면 무무씨는 안가는게 아니라 못 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너무 느려서 못 갈 수도 있고, 겁이 많아서 떠나지 못 할 수도 있어요. 행복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행복을 위해 머무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3. 『달사람』
토미 웅거러 글.그림, 김정하 옮김 | 비룡소 | 1996년 | 40쪽
밤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달은 커다란 도화지 같아요. 무엇이든 상상한 것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옛날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산다고 상상했어요.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상상하며 자신도 풍요로워지기를 바랐을 거에요. 1931년에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역에서 태어나 전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프랑스 사람으로 불리웠다가 독일 사람으로 불리웠던 토미 웅거러는 달을 바라보면서 외롭게 웅크리고 있는 달사람을 상상했나 봅니다.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커다란 달에 잔뜩 웅크리고 지구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는 달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데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죠. 달사람은 지구사람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느날 별똥별 꼬리에 매달려 지구에 도착합니다. 달사람은 환영을 받았을까요? 지구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달사람은 결국 달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얼마 전에 달에서 동굴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탐사기지로 쓰면 좋겠다면서 벽을 보강해야한다고 하더군요. 그 동굴이 달을 탐사하는 우주인에게 안전한 집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다행일까요? 달사람은 지구사람을 침입자라고 내쫓지 않았으니까요. 달사람이 우주선 꽁무니를 붙잡고 다시 지구에 오면 “달사람이다!” 대신 “Shell we dance?” 하실래요?
4. 『키이우의 달』
잔니 로다리 시. 베아트리체 알레마나 그림, 양나래 옮김, 김소연 다듬음 | 마이어,날다 | 2024년 | 32쪽
<키이우의 달>은 1960년에 출간된 『하늘과 땅과 노래』에 실려 있던 시 입니다. 2차세계대전을 겪은 시인의 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 본 화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는 단정하지만 웅변하듯 들립니다. 그림은 굵은 크레파스처럼 힘이 있어 보이지만 따뜻하지요. 전쟁 중인 키이우에 있는 달이나 이동하는 코끼리의 발길을 비춰주는 달이나 어두운 잠자리의 두려움을 달래주는 달이나 다 같은 달이지요. 지금 이 시간 어디에서 바라보든 우리가 바라보는 달은 다 같은 달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이 책을 발행한 출판사는 용산에 있는 작은 서점이에요. 상호 아래 ‘그림책 선물가게’라고 쓰여 있답니다. 이 그림책과 정말 잘 어울리는 출판사에요. 왜냐하면 이 책은 수익금 전액이 기부되는데, 바로 그림책 전문 NGO ‘북인터네셔널’에 기부가 됩니다. 북인터네셔널은 전 세계의 책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모국어로 된 책을 만들어 배부하는 단체 입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요. 작지만 아름다운 이 그림책은 밤새 지구의 모든 이에게 빛을 밝혀주기 위해 여행을 하는 달과 같은 출판사와 북인터네셔널이 함께 빚어낸 달빛 입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유수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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