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생전 처음 맞는 해처럼 각오를 다집니다. 숫자가 바뀔 뿐인데 단단히 마음을 다잡거나 고쳐먹어서 엄청난 변모를 이뤄낼 것 같은 말들을 쏟아냅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어도 나! 안되어도 나! 입니다. 별다름 없는 자신일지라도 그대로 인정하며 살자고 ‘마음먹기’해 보면 좀 더 여유로운 2024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쾌한 책들과 함께 우리의 마음 밭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마음먹기』
자현 글/ 차영경 그림 | 달그림 | 2020년 | 48쪽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정사각형 그림책이 마음에 안정감을 줍니다. 표지는 마름모꼴의 흰색 테이블보 위에 푸른 점선 테두리가 시선을 끄는 원형 접시, 그 가운데 하트모양의 노랑 마음이 환한 얼굴로 인사합니다.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요리해서 어떻게 먹는다는 걸까요?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요리조리 합니다.’라는 말이 귀엽습니다. 마음 담 메뉴판에 5가지 구성과 15가지 내용이 독자의 입꼬리를 들어 올립니다. 인기 절정메뉴-마음 찜(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마음 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등 메뉴판을 누비는 작가의 반짝이는 창의성에 눈을 질끔 감고 읊게 됩니다. 메뉴판 뒤로 이어지는 열 가지의 마음 요리법은 우리네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참 재미있게도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림 작가님은 글 작가와 쌍둥이 마음을 가졌나 봅니다. 그림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마음 모양으로 눈이 즐겁습니다. 완성된 17접시의 마음 요리에 뒤따르는 17가지 얼굴의 표정들! 두 작가의 재치에 독자의 마음이 먹혀버릴지도 모르니, 조심히 읽기를 바랍니다.
『천하무적 영자 씨』
이화경 글 그림 | 달그림 | 2020년 | 40쪽
이 책은 이화경 작가가 할머니를 소재로 쓴 그림책입니다. 환하고 친근한 노랑, 빨강, 파란색으로 시작되는 앞표지에는 영자 씨의 반쪽 얼굴만 보입니다. 빨간색 뽀글이 파마머리와 파란 얼굴 속 흰자위의 검은 눈동자, 하얀색 입매, 뒤표지를 펼치면 온전한 영자 씨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갈매기 주름 잡힌 이마 아래로 높이 올려다보는 눈은 세월을 가늠하는 듯하고, 올라간 입꼬리는 “세월 너쯤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영자씨는 세월의 도전 앞에 닦지 않아도 썩지 않는 틀니와 깨알 같은 글자도 읽을 수 있는 돋보기와 든든한 다리가 되어줄 구르는 다리를 준비하고 매일 아침 반짝 눈을 뜹니다.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며 우리 엄마입니다. 매일 아침 혼자서 눈을 뜨고, 병원을 자식 집보다 더 자주 가지만 세월에 주눅 들지 않고 단단히 마음먹는 또 다른 영자 씨이지요. 엄마의 눈 속에 젊은 영자 씨가 웃고 있습니다.
『괜찮아 아저씨』
김경희 글 그림|비룡소|2017년|36쪽
어느 마을에 괜찮아 아저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으로 멋지게 치장하기를 좋아합니다. 10가닥 머리카락을 곧추세우기, 9가닥 3겹으로 묶기, 8가닥 가르마 타기, 7가닥 꼬기, 6가닥 땋기, 3가닥 핀 꽂기, 2가닥 더듬이 만들기, 1가닥 리본 달기, 마침내 빛나는 대머리에 꽃관 두르기! 이래도 저래도 ‘괜찮아 아저씨’는 매일 행복합니다.
사람들에게 머리 모양이 주는 인상은 제법 큽니다. 모양은 둘째치고 모발이 풍성하지 않으면 대머리 증후군에 휘둘리며 탈모에 관한 여러 방비책을 찾아 나서게 되지요.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잃지 않으려 약을 먹고 고가의 샴푸를 쓰고 모발을 심는 등 머리카락 돌보기에 비용과 시간을 들이며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대체로 불만족해 보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괜찮아 아저씨’는 빠져 없어지는 머리카락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남은 머리카락으로 즐거움을 가꾸어 나가지요. 아저씨는 여하튼 행복을 선택합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괜찮아 아저씨’ 뒤에 줄 서렵니다!
『진정한 일곱 살』
허은미 글 / 오정택 그림 | 만만한 책방 | 2017년|32쪽
책 표지는 7살 어린이가 썼을 법한 글씨로 ‘ㄹ’ 받침을 거꾸로 쓴 ‘진정한 일곱 살’ 제목이 쓰여 있고, 빨간색 쫄쫄이 복장에 검정 아이 마스크를 한 배트맨이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영웅의 키를 훌쩍 넘는 파란색 숫자 7 아래로 배트맨이 날아가는 모습에 동심이 깨어 나왔습니다.
진정한 7살이 되려면 이도 하나 빠져야 하고, 채소도 고루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애완동물도 잘 돌볼 줄 알아야 하며, 마음이 통하는 단짝 친구도 있어야 하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글쎄요? 70살에게도 어려운 주문일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이 관리가 마음처럼 안 되고, 싫은 음식은 여전히 싫으며, 내가 더 돌봄을 받고 싶고, 있는 짝마저 원수가 되기도 하고, 나에게 소중한 걸 다른 이에게 양보하는 건 더더욱 어려우니 말입니다. 불쑥 솟던 용기는 사진첩에 묻힌 추억처럼 찾을 때 쉽게 꺼내지지 않네요. 그런데 마지막 장에 “괜찮아” 진정한 일곱 살이 아니면 진정한 여덟 살이 되면 되고, 또 안 되면 진정한 열 살이 되면 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주니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참 고마운 말입니다. “괜찮아요, 올해에도.”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김정해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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