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렵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철학처럼 어렵습니다. 각각의 삶의 철학이 있듯이, 각각의 시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누어 생각하면 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만 받아들이면 되지요. 가끔 누군가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다가서도 됩니다. 그렇게 시메타북을 찾게 됩니다. 시를 좋아하거나 시를 쓰는 사람이 모아 놓은 시를 찾아 읽으면 됩니다. 일상에서 다가오는, 일상으로 들어가는, 삶을 노래하는 시를 읊으면서 자신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소래섭 ∣ 해냄 ∣ 292쪽 ∣ 2017년
저자는 사소한 일상에도 시가 깃들어 있다고 알려줍니다. 삶 속에서 시를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침을 시작하면서, 텔레비전, 구두에서, 지하철 등에서 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종길의 <경이로운 나날>입니다. “경이로울 것이라곤 없는 시대에/ 나는 요즈음 아침마다/
경이와 마주치고 있다.// 이른 아침 뜰에 나서면/ 창밖 화단의 장미 포기엔/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영글고,// 산책길 길가 소나무엔/ 새순이 손에 잡힐 듯/ 쑥쑥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향다반으로 보는/ 이런 것들에 왜 나의 눈길은 새삼 쏠리는가./ 세상에 신기할 것이라곤 별로 없는 나이인데도.// 그런 나이에도 그런 풍경이 보이는 감수성을 지녀야 할 일이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 펴낸 시집에 있습니다. 신기할 것이 보이지 않는 나이에도 감수성을 지니며 살아가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저자는 “향다반으로 보던 것들, 즉 밥과 차처럼 늘 익숙한 풍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눈길이 쏠린다고‘ 덧붙입니다. 저자는 ”오늘은 내일이 되고, 또다시 아침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주가 탄생하는 시적인 순간이, 이 글에서 소개한 세 편의 시가 여러분을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 라면서, 함께 읽으면 좋을 시를 소개합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말해주는 문태준의 <아침을 기리는 노래>, 삶이 지루할 때마다 아침 시장을 찾아갈 이유를 노래한 이상국의 <아침 시장>, 그리고 정현종의 <아침>입니다.
복효근의 <버팀목에 대하여>라는 시는 나무를 받치고 있는 버팀목을 관찰하여 쓴 시입니다. 저자는 ”나무를 받치고 있는 버팀목 또한 나무로 만든 각목이라는 사실입니다. 일으켜 세운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라면 각목은 죽은 나무입니다.“라고 말하며, 시인의 놀라운 관찰을 상상력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삶도 죽음에 기대고 있다고 합니다. 문동만의 <그네>, 복효근의 <탱자>, 송영동의 <무허가>라는 시도 함께 읽으면 좋다고 합니다.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곽재구 ∣ 이가서 ∣ 178쪽 ∣ 2004년
저자인 시인은 ‘갈대와 억새 지천으로 꽃 핀 863번 지방도로’에 머물면서 하늘의 별밭으로 시가 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지상에서 함께 읽은 시들이 많습니다.
양원식의 <할머니와 손녀>, 장석주의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 강희안의 <시계 소리를 듣다보면>, 이찬의 <길의 세탁소>, 김수영의 <오래된 여행가방> 등입니다. 그중 몇 편의 시와 함께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유홍준의 시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에서 말합니다. 시인은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면서,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이 어쩌면 이렇게 죽음의 그늘에서 능청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시 속 본문처럼, 벤자민, 금붕어와 튤립, 국화, 어머니, 예수, 귀머리거 시인도 죽어가는 곳이라고. 그곳이 우리들의 집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언제부터 우리들의 집이 죽어가기 시작했을까, 라고. 그런데 되살릴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아파 온다고 합니다.
최두석의 <미소>라는 시도 좋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울적한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그냥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이어지는 시구절로 이야기합니다. “생애를 바쳐 벼랑 위에 마애불을 새긴 백제 석공이여, 그대 또한 그대의 오늘을 한탄했는가. 아니면 한탄하는 모든 이의 한숨소리가 안타까워 벼랑 위에 속 깊은 아름다운 웃음을 새겼는가. 어쩌면 그 미소는 오늘이 꿈이며 사랑임을 아는 모든 이에게 바쳐지는 불립문자인지도 모른다.”라고.
황지우의 <거룩한 식사> 마지막 연을 옮깁니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도가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시시하다』
진은영 지음 손엔 사진 ∣ 예담 ∣ 288쪽 ∣ 2016년
진은영 시인이 신문에 연재한 ‘아침을 여는 시’ 가운데 92편을 골라 엮었습니다. 박준, 김태형, 나희덕, 황학주, 채호기, 배용제, 이진희, 김소연, 이문재, 심보선, 성기완, 김민정, 황인숙,하재연, 손택수, 김행숙, 오은, 허연, 권혁웅 등 한국 시인과 자크 프레베르, 세사르 바예호, 에밀리 디킨슨,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앙드레 프레노, 레이먼더 카버, 니키 지오바니, 파블로 네루다, 슈테판 도이나슈, 루이 아르공 등 외국 시인의 작품도 나옵니다.
이문재의 <사막> 전문을 봅니다.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시인은 사막을 “모래와 모래 사이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말하면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야 할 것들이 부서져버려 마음이 황폐해졌다고 탄식하는 중”인지, 아니면 “비슷한 것들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오래오래 함께하려면 사물과 사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 의문을 던집니다.
황인숙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를 읽고는 “친구와 연인과 가족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종종 무례해”진다고 말합니다. 그걸 알 수 없다고요. “가끔은 그들 자신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생각하는 중인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마지막에 “그러나 알 수 없어요.”로 끝납니다.
하재연의 <나만의 인생>에서는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다, 나는 맘대로 눈동자를 깜박이고 담배를 피우고 내 맘대로 거리로 나간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나의 의지란 얼마나 무력한가요.”라고 말합니다. 철학자 뷔리당이 말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 배고픈 당나귀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마음이 허기지고 위로가 필요할 때,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위로의 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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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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