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문제로다

 

“아~ 00동 냄새.” 낯익은 풍경을 만나면 풍경에서 냄새가 납니다. 아주 익숙하고 편안해 지는 냄새요. 집에 도착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역시 집이 최고야.” 합니다. 집은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지요. 새 집으로 이사한 첫 날,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저녁이 되면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얼마동안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 살면서 살고 싶은 집을 꿈꾸니까요. 아니면 사고 싶은 집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인생은 머물만한 집을 찾아가는 여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집』

이현주 지음 | 살림 | 2020년 | 44쪽

표지와 면지를 넘기면 푸른 언덕이 등장합니다. 언덕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손을 보면, 아! 두 번째 집은 그런 의미구나. 하고 눈치를 차리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자궁’이라는 첫 번째 집에 살다가 ‘부모’라는 두 번째 집을 만납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는 누군가의 첫 번째 집이 되었다가 두 번째 집이 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집》의 작가 이현주는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집에 비유했습니다. 집은 모든 이의 시작점입니다. 면지를 지나 마주한 본문은 온통 그림과 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첫 번째 집에 머무는 동안은 마치 우주를 여행하는 듯 보입니다. 집을 옮길 때는 이삿짐을 줄이기도 늘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집과 만나는 길에는 쥐었던 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집이 잊혀 질 때쯤이면 두 번째 집은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집으로 옮겨갈 수 있는 마음의 길이 자라납니다.
이 그림책의 면지는 빛을 뿜는 문 같습니다. 그 문을 열고 나아가면 새로운 집을 만나게 됩니다. 이 그림책을 펼치는 독자에게 면지는 아이와의 첫 만남 혹은 부모와의 첫 만남으로 여행하는 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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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릴리 범범』

박정섭 글,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22년 | 56쪽

집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이 연일 기사에 오르내리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장만한 집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기 칠 수단이기도 하지요. 《삘릴리 범범》은 부동산 주인 토선생에게 속아서 호랑이가 득시글한 집을 산 소금장수 이야기입니다. 사기꾼 토선생과 함께 번 돈을 꿀꺽하려는 호랑이는 벌을 받고 선량해 보이는 소금장수는 집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치 마당극을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책 속에 삽입된 QR코드를 이용하여 음악과 함께 감상하면 더욱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난리법석에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피리 하나와 방귀 한 방으로 모든 불의를 물리친 소금장수의 행운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옛이야기 속 부모들은 왜 그렇게 ‘피리’를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일까요? 소금장수 역시 부모에게서 달랑 ‘피리’하나 물려받았습니다. 우리 선조는 예술이 사람에게 주는 위로와 힘을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니 갱년기 노화를 이겨내는데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소금장수는 그 피리로 호랑이와 함께 큰돈을 법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호랑이도 피리 소리에 저절로 춤을 추게 되는 그저 그렇지만 희귀한 호랑이라서 구경꾼을 끌어 모았지요. 자기 의지라고는 약한 이를 괴롭힐 때만 쓰는 욕심 많은 호랑이니 별 수 없습니다. 역시나 욕심 많은 사기꾼 토선생과 함께 천 길 낭떠러지로 사라질 수밖에요. 안타까운 것은 큰돈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저 소금장수가 원한 딱 그만큼의 집이 남았을 뿐입니다. 소금장수가 소원했던 집은 어떤 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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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집』

재럴단 엘슈너 글, 루시 반드밸드 그림, 서희준 옮김 | 게수나무 | 2020년 | 36쪽

어디에서 살까? 노후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살고 싶은 곳을 찾게 됩니다. 이젠 시간이 좀 여유로우니 번잡스러운 도시를 벗어나서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집》은 훈데르트바서가 동료들과 함께 지은, 비엔나에 있는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주의 건축가이자 화가이고, 환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연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자연 속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기보다는 도시를 자연주의화한 건축물입니다. 커다란 나무 주위를 높다란 벽이 둘러싸고 나무 주위로 건물이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혹시나 도심 속 건물을 위해 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합니다. 다 지어진 건물 사이사이에서 나무줄기가 자라나고 커다란 나무는 건물들 한 가운데서 왕이 된 것처럼 서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나무들도 이 집에 사는 세입자이니 서로 돌봐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무도 사람도 지구에 사는 주민이니까요.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물이 종종 미디어에 소개되곤 합니다. 그런 건축물은 아름답지만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집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가깝게 있기에 더욱 빛이 납니다. 제주 우도에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있다고 하니 여행 중에 들러 봐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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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다비드 칼리 글,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 봄개울 | 2020년 | 40쪽

한 소년이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이 싫어서 떠나버리기로 합니다. 마음에 드는 ‘나의 집’을 찾아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죠. 소년은 ‘나’만의 집을 찾았을까요? 다비드 칼리가 쓰고, 세바스티앙 무랭이 그린 《나의 집》입니다.
좀처럼 나와 딱 맞는 집이 골라지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인테리어를 바꾸고, 계약기간이 지나면 새 집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매일 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방문합니다. 집을 고를 때는 소년처럼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년의 이유를 들어보면 ‘그렇지, 나도 그래.’하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림책 속의 소년은 어떻게 그렇게 내 맘을 잘 아는지요.
좋은 집의 조건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직업적 성공과 딱 맞는 집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예술가가 된 소년이 여전히 딱 맞는 집을 찾기 위해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걸 보면요. 그러니 나에게 어울리는 진짜 나의 집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금 여기가 진짜 나의 집일지도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향으로 가서 자리 잡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좀 들었을 때 멀리 이사하는 게 꺼려지기도 합니다. 역시 집이란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틀림없습니다. 이 그림책의 앞면지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등장합니다. 뒷면지에 등장하는 비행기의 머리는 위를 향할까요? 아래를 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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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유수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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