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또는 무겁게 시를 만나요 – 특별한 시집 3권으로 따스한 삶을 –

 

‘가볍게 무겁게‘ 어쩌면 소개하는 시집과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짧으니까 쉽게 와 닿으니까 가벼울 수도 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이 나오니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니까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만. 실은 ’따뜻하게’ 만으로 제목을 달려고 하니까 무언가 부족해서 그렇게 붙였습니다. 특별한 시집 3권으로 따스한 삶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행복』

정끝별 ∣ 이레 ∣ 2001년 ∣ 142쪽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한때 시집을 사 모으기도 했습니다. 시를 쓰고 시 공부하고 시인의 마음을 품어보려고. 그렇게 마음에 드는 시가 한 편이라도 있으면 시집을 사서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그냥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엮음시집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중 저자가 엮은 책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짧은 시 산책입니다.
저자는 “더러는 자주 보는 벗들의 시가 있어 한결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하지만 꼭 함께했어야 할 시들도 빠져 있고 짧은 시만이 좋은 시는 아닐 것이기에 옆구리가 빈 듯 허전하고 남루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보태는 이야기도 좋습니다. 안찬수의 ‘욕심’이라는 시는 이렇습니다. “은행나무 밑에 서 있으면/ 은행나무가 되고 싶고// 소나무와 함께 서 있으면/ 소나무가 되고 싶고// 감나무에 기대어 서 있으면/ 감나무가 되고 싶고” 저자는 이 시의 제목을 ‘무심(無心)’이라고 이어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들을 나무는 다 내주고 다 받아들여서라고. 유용주의 ‘시멘트’라는 시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 인생이란 스스로 가루가 되도록 부서졌을 때 단단해진다고. 시멘트가 그렇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안도현의 ‘사랑’이라는 시도 있습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매미의 짧디 짧은 생을 말해줍니다. 정현종의 ‘섬’이라는 시도 짧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짝패로 읽어야 하는 시가 박덕규의 ‘사이’라는 시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그렇습니다. 흑백의 이분법에 의해 재단되는 우리의 시대상황을 풍자한다고 말합니다.
 


#짧은시 #정끝별 #시산책 #시모음 #안도현의_사랑 #정현종의_섬


『그 바닷속 고래상어는 어디로 갔을까』   

 김기준 지음 최성순 사진 ∣ 스타북스 ∣ 2021년 ∣ 240쪽

사진을 좋아합니다. 시도 있고 사진도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물속 사진입니다.
한국 최초 수중 에세이, 수중시집이라고 합니다. 가리비의 경우, 가리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가리비라는 시가 나오고 사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닷속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조개라고,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조개이며, 보티첼 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가 타고 있는 조개라고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가리비찜과 가리비 치즈구이 이야기도 나오는 등 풍성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캐스터네츠를 흔들며 플라멩코를 추던/ 당신이 처음으로 살짜기 그 속살을 보여주었을 때/ 점점으로 반짝이는 저 푸른 별들이/ 내 가슴을 아득하게 흔들어 놓았지/ ~~ 한 잔의 소주와 함께 연탄불 위에 놓여진/ 당신의 몸을 뒤적이며 그 신비를 탐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여기까지/ 흐르고 흘러서 왔을까 까맣게 우는 당신.”
복어도 나옵니다. 매운탕, 지리, 찜 등 담백한 요리 이야기로 시작해서, 뚱뚱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그 작은 날개를 앙증맞게 파닥이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저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독소를 만들어냈는지 궁금해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시에 독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귀엽고 순박한 착한 복어야/ 넌 어찌 그리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니/ 가열해도 사라지지 않고/ 극미량으로도 숨을 못 쉬게 만드는/ 자연계 최고의 맹독을 ~~~”
글을 쓴 이는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이며 시인이고, 사진을 찍은 이는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스쿠버다이버지 편집장을 역임하고 스쿠버넷 매거진 발행인입니다.
 


#수중시집 #수중에세이 #고래상어 #바다의시인 #가리비 #바닷속으로



『반짝이는 너에게』

 조병도 ∣ 바른북스 ∣ 2022년 ∣ 136쪽

”어제 온 비에게/ 오늘 부는 바람에게/ 내일 내릴 눈에게/ 피고 지는 꽃에게/ 서성이는 별에게/ 길 잃은 새에게/ 외로운 이에게/ 그리운 그대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 어느 누군가의/ 반짝이는 너에게”
시인은 시의 집 문을 열어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머물며 쉬었다 가라고.
저는 한동안 이 시집을 끼고 지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 구절이 계속 눈에 밟혀서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입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들은 시집 한 권 내는 일이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삶 자체가 글쓰기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지만 제대로 된 글이 아니면 책을 내는 일을 주저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알기에 그가 쓴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고 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집을 나온 사연도 시를 이끕니다. 시인은 암투병 중이고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날 시집을 펴냈습니다. 몇 번 다시 읽은 구절을 옮겨봅니다.
“반짝이는 건/ 깨지기도 쉽다는 것을// 아름다운 건/ 흠집나기도 쉽다는 것을” “병도 선사,/ 잠시 술잔을 멀리한 채/ 마음을 비우려고/ 도심 속 암자 식도암으로/ 수행을 떠났노라~~ 흰 눈이 하얗게 내린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삶을,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세상을 똑바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세상을 비스듬히/ 살아볼 일이다/ 세상을 똑바로/ 살아보기 위하여” “절벽 아래서/ 무릎 끓어본 사람이면 알지/ 아득하다는 게/ 절망의 또 다른 이름임을…// 절벽 아래서/ 무릎 세워본 사람이면 알지/ 아득하다는 게/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임을…”
 


#조병도 #반짝이는너에게 #딸의결혼식 #사랑하는사람 #그리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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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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