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겨울날들이 일주일도 넘게 계속되었지만 말라가던 단풍은 겨울비에 모조리 떨어져, 마른 가지들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한파가 닥쳐 그 마른 가지들이 모든 물기를 거둔 채 추위를 견딜 채비를 끝냈다. 연둣빛으로 올라오는 봄날의 설렘이 환희라면, 쨍한 겨울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늠름하게 추위에 맞서는 마른 가지는 경이롭다. 인생도 이렇듯 봄날은 봄날이라 겨울은 겨울이라 의미가 있고 좋다. 조화로운 삶을 생각하게 한 책들을 모아보았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 창비 ∣ 2023년 ∣ 304쪽
이 책을 여기에 적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너무나 아프고 두려움이 몰려와서이다. 하지만 아픈 것도 견뎌야 하고 두려움도 맞서야만 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기에 적기로 했다. 눈부시게 빛나던 딸에게 어느 날 찾아온 양극성 장애,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사는 것이 힘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가 직업이 의사이기에 가능했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아이가 아픈데 무슨 기록을 해서 책을 펴내냐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살아가야만 한다. 몸이 아프다면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고, 간병해야겠지만 정신이 아픈 것은 더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고,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기 일쑤라 두려움이 자신을 갉아먹게 놔두기싶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가족은 보통 죄책감에 빠지고 밖으로 드러내기를 어려워해, 환자 못지않은 우울감을 겪는다. 더구나 아픈 이가 내 아이라면 부모는 보통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원인을 찾고 괴로워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의사인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 병동에 아이를 반복적으로 입원시키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절망하고 자책한다. 그러나 의사이기에 할 수 있는 자료를 찾고, 약을 연구하고, 동료 의사와 상의하면서 알아낸 것들을 기록한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찾았고, 그 자료를 글로 쓰며 이 정보도 없어 마음이 더 아플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알렸다. 많은 연구 끝에 양극성 장애는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진다는 통계를 붙들고 오늘도 시간을 견대낸다고 했다. 읽는 내내 마음 저렸다.
이 책은 몸이 아픈 것처럼 정신도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신이 아픈 것을 병으로 인식해서 치료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유가 있어야 몸이 아픈 것이 아니듯 정신 역시 이유가 있어야만 아픈 것이 아니며, 대부분 정신질환은 자신을 자책하고 주눅 들어 마음 졸이느라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는 거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눈을 들어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절실한 확신이 필요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글이 주는 확신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멘탈이 흔들린다면 잠시 서자. 그래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고, 오늘 하루 잘 살아냈다면 칭찬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약한 모두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새마음으로』
이슬아 ∣ 헤엄 ∣ 2021년 ∣ 284쪽
이 책의 저자는 꽤 유명하다. 자신의 글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대박이 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출판사를 세우고 책을 펴내고, 웹툰도 그리고, 인터뷰어로도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응급실 청소, 아파트 계단 청소, 농업인, 인쇄소 기장, 수선집 사장, 경리)을, 그 일의 가치가 잘 드러나도록 저자가 이야기를 끌어내서 노동의 의미를 따뜻하게 풀었다. 인터뷰를 하거나 대담을 책으로 펴낼 때 우리가 기대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이 인터뷰집에서 저자의 인터뷰어로의 자세와 태도에 우선 감동했다. 이웃이지만 저자에게 어른인 그들의 오랜 직업 현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이처럼 유연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것을 옮길 수 있음에 감탄한다.
인터뷰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하는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좋은 질문과 진솔한 대답으로 길지 않은 글에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로 살고 있고, 나 역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노동의 의미를 가치롭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웃의 어른으로 직업을 사랑하는 이가 생각하는 노동의 의미는 큰 파문을 남기며 마음에 남는다. 어린 나이의 작가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나이와 상관없이 더 어른스러운 혜량이 있다.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려준다. 중간중간 매력 넘치는 사진도 한몫하면서 책이 주는 매력에 빠져보자.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보리 ∣ 2023년 ∣ 248쪽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이 무너지기 쉬운 환경은 갈수록 심화되어, 시대와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려 애쓰지만 만만하지 않다. 외부의 영향에 무너지거나 힘겨운 사람들은 반세기 넘게 꾸준히 사랑받은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마침 스콧 니어링 40주기를 맞아 23년 만에 고침판이 출간되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의 가치가 더 새삼스럽다.
1930년 대공황 뉴욕, 그 시대를 살아내던 이 부부는 뉴욕 생활을 그만두고 버몬트 숲속 시골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니어링 부부는 땅을 일구고, 돌집을 짓고,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는 소박한 삶을 살았다.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 사회 속에서 건전함을 지켜 내고자 했다. 그들의 버몬트 숲속에서 삶은 경이롭다 못해 강렬한 충격을 준다. 그들이 세운 조화로운 삶의 원칙은 첫째,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 둘째, 땅에 발붙이고 살고, 먹을거리를 손수 길러 먹으며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 셋째,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고, 여러 가지 끔찍한 착취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들면서 살았다. 너무나 대단해서 내가 살아갈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어렵지만 이런 삶을 추구하고 실천한 사람이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에 정착하게 된 과정은 시대와 공간만 다르지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지식과 현명함으로 단풍 시럽과 설탕을 만들게 된 계기 역시 그들의 조화로운 삶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감동이다. 11년 동안 집을 짓는 과정은 너무나 자세하게 언급되어 읽는 것만으로도 이런 삶의 가능성을 알게 해준다. 텃밭을 넘어 먹거리를 장만하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는 그들이 부럽고도 경이롭다. 조화로운 삶은 어쩌면 나 자신의 절실함에서 나오고 꾸준함을 통해 실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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