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은 항상 어렵습니다. 철쭉과 진달래는 아직도 헷갈립니다. 예전에 야외수업할 때 아이들이 학교 화단에 피어 있는 꽃 이름을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찾아보기 시작해서 꽃을 살피는 공부는 계속되었습니다. 최근 꽃과 시가 만나는 책을 보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꽃 이야기도 알고 시까지 덤으로 만났으니까요. 함께 꽃도 찾고 시도 만나시기 바랍니다.
1. 『꽃, 마주치다』
기태완 ∣ 푸른지식 ∣ 320쪽 ∣ 2013년
이 책에는 천상의 향기를 지닌 서향화부터, 수로부인의 꽃 철쭉, 이부인이 환신했다는 오얏꽃, 형제의 우애를 지닌 박태기나무, 찔레꽃, 작약, 앵두, 인동초, 봉숭아, 수국, 맨드라미, 나팔꽃, 능소화 등 많은 꽃들이 사연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30년간 꽃 탐방을 다닌 꽃 인문학자로 친근한 우리 주변 꽃들을 이야기합니다.
철쭉과 진달래, 영산홍 이야기입니다. 철쭉과 진달래는 사촌지간이지만 개화 시기가 조금 다른데, 철쭉이 조금 늦다고 합니다. 진달래는 참꽃이라 화전놀이 대상이지만 철쭉은 개꽃이라고 먹지 않고 소도 탈이 난다고 합니다. 셋은 본래 한집안이라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고. 연산군은 영산홍을 좋아해서 후원 심으라고 하고, 땅을 파고 움막을 지어 추위가 닥쳐도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오얏꽃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자두의 순수한 우리말이 오얏이라고 하는데, 자두는 자도에서 나왔고 복숭아의 한 품종을 지칭한다고. 도리는 복숭아와 오얏을 말하고, 두 꽃은 동시에 나란히 피는데, 오얏꽃은 담백하고 섬세하고 곱고 향기롭고 우아하며 깨끗하고 무성하면서도 밤에도 볼 수 있으니 복숭아꽃에 견줄 바가 아니라고까지 말합니다. 또 “노자의 성명이 이이 李耳 라고 하는데, 후세에 노자는 신선을 꿈꾸는 도교의 신이 되었기 때문에 오얏을 ‘선리 仙李’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는 오얏에 얽힌 노자 이야기도 있고, 가을에 핀 오얏꽃을 노래한 고려시대 김극기의 시 구절도 보여줍니다. 한편 항상 남에게 의심받을 짓을 하지 말고 조심해서 처신해야 한다고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모자를 바로잡지 말라.”는 옛말도 소개합니다.
2. 『꽃 산행, 꽃시』
이굴기 ∣ 궁리 ∣ 304쪽 ∣ 2014년
저자는 3년간 많은 산을 돌아다니면서 꽃을 찾으면서, 꽃도 좋지만 꽃이 함께한 풍경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곤충, 바위에도 특별한 감흥을 느꼈고 그런 상황에 걸맞은 시 한 편이 찾아와 주었다고 합니다.
강원도 영월의 유명한 관광지 선돌 근처 식물 탐사를 하다가, 선돌이 잘 보이는 전망대 돌계단을 넘어 가파른 아래로 내달아 서강을 끼고 청령포까지 연결되는 유배길에서 한 많은 단종을 떠올렸습니다. 그곳에서 지천에 활짝 핀 야생화를 보고 나무를 보면서 옛 자취가 녹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숨죽여 피어나는 졸방제비꽃, 이름도 참 시원한 세비리아 살구나무 그리고 몽고뽕나무, 줄기가 댜들야들한 꼭지연잎꿩의다리, 깎아지른 절벽의 능선에 핀 바위솜나물. 이름과 달리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백선.”을 이야기하다 김춘수의 <길바닥>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패랭이꽃은/ 숨어서/ 포오란 꿈이나 꾸고// 돌멩이 같은 것 돌멩이 같은 것/ 돌멩이 같은 것은/ 폴폴/ 먼지나 날리고”
발 없는 식물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은 기발하고 독창적인데, 봉선화처럼 손대면 톡, 터져서 주위로 힘껏 흩어지기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자는 사무실 근처 인왕산을 자주 오르는데, 그곳에서 예전 여름 태백산에서 봤던 제비꽃을 보게 됩니다. 헤어졌던 형제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고. 그러다 자하문 쪽에서 올라 정상을 집고 내려와 범바위를 지날 때 함께 갔던 식물 전문가가 작은 열매를 가리켰고, 지지난주 지리산에서 만난 어느 짐승의 똥 속에 누워있던 노란 열매를 떠올리고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노박덩굴 씨앗을 이야기합니다. 이어 송찬호의 <산토끼 똥>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산토끼가 똥을/ 누고 간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그 까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이 밖에 다양한 시가 계절과 함께 나옵니다. 유홍준의 <오므린 것들>, 어효선의 <꽃밭에서>, 신경림의 <갈대>, 문인수의 <쉬!> 등등.
3. 『시인의 꽃』
권성훈 ∣ 새미 ∣ 174쪽 ∣ 2024년
“시는 꽃이다. 꽃이 흔들리면서 피듯이 시도 시인의 상상 속에서 흐느끼면서 발화한다. 그것도 최소한의 언어를 통해 최대한의 사유를 발생시키면서.” 라고 하면서, 저자는 ‘시인의 꽃’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유와 조건들과 실존의 절박함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시인들의 꽃에 관한 시를 소개합니다.
조오현의 <할미꽃>, 정현우의 <소금 꽃>, 정진규의 <박태기 꽃>, 이지엽의 <은방울 꽃>, 이해인의 <석류꽃>, 오세영의 <들꽃> 등 170편 남짓 시인의 꽃이 나옵니다. 천상병의 <들국화>입니다. “산등선 외따른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누인다.// 가을은/ 다시 올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늦은 11월까지 피는 들국화는 국화과 식물을 두루 일컫는 ‘보통 명사’라고 합니다.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등이 들국화인데, 구절초는 가을 여인, 쑥부쟁이는 기다림과 그리움, 감국은 가을의 향기, 산국은 순수한 사랑을 말합니다. 이 시는 산등선 외딴 곳에서 들국화를 보면서 시상이 확장했다고 말하고, 연약한 들국화처럼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시들어갈 인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편의 시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감각과 지각의 차원을 넘어 행동하는데 있다.”고 하면서, 이건청의 <연꽃 밭에서>를 소개합니다. “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신달자의 <꽃>이라는 시를 통해서는 들꽃들을 탐욕없이 마주하면 자신이 해방되고 자유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꽃으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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