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브라운을 찾아서

 

오랜만에 앤서니 브라운 전시회가 있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책 밖을 빠져나온 원화는 글과 함께 읽는 것이 아닌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 하고,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실물 크기의 캐릭터와 배경은 마치 그림책 속 세계로 들어온 듯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책 속 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한 미디어아트, 캐릭터와 함께 하는 포토존, 작가가 직접 더미북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 등 1976년 첫 작품 <거울 속으로>를 시작으로 50년간 작품 활동을 한 작가의 방대한 작품 세계가 펼쳐지면서, 전시 공간은 더 깊고 풍성하게 다가왔습니다.

전시회에 소개된 많은 작품 중 가족 이야기, 일상 소재를 세이프게임으로 변형한 이야기, 고릴라 책, 초현실주의적 특색을 지닌 작품 한 편씩을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1. 『우리 할아버지』

앤서니 브라운 지음, 장미란 옮김| 웅진주니어 |2024년 | 32쪽

<우리 할아버지>는 2000년 <우리 아빠>부터 시작된 앤서니 브라운의 가족 이야기 중 가장 최근 작품입니다. ‘너희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야?’라는 질문과 함께 손주들은 할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쪼글쪼글 주름이 많아. 꼭 공룡 같기도 해” 할아버지의 주름 가득한 얼굴은 마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생각나게 하지만 아이는 “난 공룡이 참 좋아!”라며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습니다.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를 키우는 몸집이 큰 할아버지, 아무리 바빠도 손주를 향해 활짝 웃음을 지어준다는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 옷을 입은 할아버지. 자동차 모양으로 가득 찬 샛노란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손녀가 소개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나올 법한 마법사 모습의 할아버지는 신기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포옹은 곰 인형처럼 부드럽고, 할아버지는 귀를 쫑긋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늘 최고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분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손주를 껴안고 있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포옹에서 행복은 따스하게 전달됩니다.

연두색 표지를 가득 메운 증명사진 속 할아버지의 모습은 책에서 아이들이 소개한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입니다. 책 속에서 아이들이 소개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훨씬 더 푸근하고, 유머러스하며,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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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

앤서니 브라운 지음,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3년 |  32쪽

형은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엄마는 바쁘고, 대니는 조금 울적하고 심심합니다. 엄마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보라고 하지만 대니는 바닷가는 매일 똑같고 재미없다고 투털거리며, 스크러피와 산책을 떠납니다. 스크러피와 막대 던지기 놀이도 하고 재밌게 생긴 조약돌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드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대니는 바다 한가운데 사람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 스크러피를 보내 데려오게 합니다. 너무 먼 거리였지만 스크러피는 파도를 헤치고 용감하게 나아가 그 사람을 구해왔습니다. 스크러피가 구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대니의 형 마이크였습니다. 마이크는 대니가 자신을 구한 영웅이라며 칭찬을 해줍니다.

이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형 마이클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 형과 함께 스포츠도 즐기고, 세이프게임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의 그늘 속에서 살며 열등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고, 이러한 어린 시절 경험에서 소심하고 겁쟁이 캐릭터인 윌리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형에게 헌정하는 이 책에서는 세이프게임을 하듯 대니는 형을 구하는 용감한 동생으로 실제 경험과 다르게 이야기는 변형됩니다. 작품의 배경은 작가가 새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동네로 전시장에서 그림책 속 집과 똑같이 생긴 해변을 거니는 앤서니 브라운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 겪은 일, ‘지금 이곳 나의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되지만 세이프게임을 하듯 이야기는 변형해서 만든다고 합니다. 전시장에 가면 그림책의 앞뒤 면지를 가득 메운 세이프게임의 조약돌 변형 그림 위에서 여러 각도의 거울 놀이 사진도 찍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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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지음, 이훤 옮김 | 웅진주니어 | 2024년 | 24쪽

책을 펼치면 아주 커다란 고릴라 손 위에 작은 새끼 원숭이가 귀여운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흰얼굴카푸친원숭이 등 다양한 유인원이 등장하면서, 늙음과 어림, 슬픔과 행복,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혼자와 ‘함께’, 큰 것과 작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대의 반대는 닮음이라는 반대의 세계를 표현합니다.

앤서니 브라운 하면 고릴라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주름과 혹, 굳은살,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오른 살, 털, 근육을 보면 연필을 놀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고릴라(유인원)를 그리는 것에 싫증이 난 적이 없다”라며 작가는 고릴라 사랑을 드러냅니다. 고릴라는 크고 공격적이고 무서워 보이지만 가족을 돌보는 친절하고 근사한 동물입니다. 그림책 속 고릴라는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옷을 입고, 가장 사람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측면도 내포하고 있어서, 어린 독자들이 자신을 고릴라 주인공과도 쉽게 동일시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고릴라는 럭비와 권투를 좋아하고 크고 강한 인상을 가졌지만 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이야기를 들려주던 섬세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림책에서 ‘함께’라는 단어를 표현한 페이지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유인원들이 총집합해 있습니다. 마치 다함께 모인 단합대회 후에 사진 한 컷 남기듯이, 모두 행복한 표정입니다. 어느 우울한 날, 혼자 있다고 느껴질 때, 이 그림책을 펼치고 늙은 고릴라의 온화한 눈빛과 노랑 꽃을 들고 있는 행복한 표정의 원숭이, 풍선을 날리는 오랑우탄의 가벼운 미소, 그리고 아주 커다랗고 친절한 눈빛의 고릴라를 만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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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

앤서니 브라운 지음, 김보경 옮김| 웅진주니어| 2025년 | 32쪽

아침에 아빠가 엄마와 나가며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무엇이 변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조셉의 눈에는 집안 물건이 조금씩 이상하게 보입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의 주전자는 부드러운 꼬리와 귀를 가진 고양이로 변하고, 조셉의 방에 있던 슬리퍼에 날개가 달리고, 거실 소파는 악어와 고릴라 모양으로 변해갑니다. 혼란스러운 조셉은 밖으로 나가 축구공을 차 보지만, 축구공은 알로 변하고 그 속에서 새가 날아갑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셉은 자전거도 타 보고 담 너머도 살펴보지만, 자전거 바퀴는 사과로 변해 움직일 수 없고, 담장 너머는 커다란 동물의 눈으로 가로막혔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셉은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불을 끕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아빠와 엄마가 아기와 함께 들어옵니다. 조셉은 이제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거실 소파에 앉아 엄마 아빠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여동생을 안아 봅니다.

새로운 동생의 탄생을 기다리며 혼란스럽고 걱정스러운 조셉의 심리상태를 주변 사물의 ‘변형’을 통해 표현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이 잘 드러난 그림책입니다. 조셉의 방과 거실에 걸린 그림, 텔레비전 속 영상과 축구공의 변화, 담장 밑에 있던 소품의 변형,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바라보는 조셉의 표정을 따라가며 읽으면 작가의 디테일한 깊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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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유주현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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