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시를 만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시가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한번 다가서기만 하면 다시 만나기도 쉽습니다. 웹툰으로 시를 읽으며 가까이 가고, ‘센류’라는 일본의 정형시로 노인들의 삶을 만나고, 세상을 새롭게 보려는 ‘사전’으로 시에게로 갑니다. 시 읽는 시작을 다른 방식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1. 『시누이』
신미나 지음∣창비∣2017년∣300쪽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물감 대신 봉숭아 꽃물로 색을 칠했던 것처럼 종이책이라는 틀을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시를 읽어보면 어떨까?’라는 작은 궁리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시와 친해지고 싶은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치라고” 그리고 “되도록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한편씩”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한 편의 시가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가 물꼬를 트고 흘러나오길” 기다렸고, “시와 그림 어느 한쪽이 기울거나 승하지않고 어우러지길” 원했다고 했습니다.
웹툰 그림이 있고 시 전문이 나옵니다. 김기택의 <봄날>이라는 시에는 그림이야기가 나옵니다. “언니랑 내가 진달래를 한 소쿠리 따오면 엄마는 화전을 부쳐주셨습니다./ 동글게 반죽한 참쌀 위에 꽃잎을 평평하게 올리고 미나리나 쑥으로 잎사귀 완성!/ ‘맛보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봄바람 불고 볕 좋은 날/ 옥상에 이불을 널고 기지개를 쭉 펴보는 것/ (…) 따듯한 봄볕에 노곤노곤하게 몸을 지지고 참으로 오랜만에 환해져보는 것” 그리고 시입니다.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잔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중략)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보는가/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시는 2~30여 편으로 많지는 않습니다만, 시에게 다가서기에는 더없이 좋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가볍게 다가서길 바랍니다.
2.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지음, 이지수 옮김∣포레스토북스∣2024년∣320쪽


‘실버’는 일본식 영어로 ‘노년세대’를 뜻한다고 합니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에서 따온 말이라고. 풍부한 경험이 많아, 여러 분야에 도움이 되지만, 한편 나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힘든 세대라고 합니다. 이 책은 2011년과 2012년의 입선작을 포함해 여든여덟 수를 모은 <실버 센류> 걸작선입니다.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입니다. 그들에게 고민이나 푸념거리가 있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은 바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작품을 소개합니다.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청력검사로/ 잴 수 없는/ 온갖 비밀 다 듣는 귀”, “내용보다/ 글자크기로/ 고르는 책” “입장료/ 얼굴보더니 단박에/ 할인해줬다”,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경치보다/ 화장실이 신경쓰이는/ 관광지”, “자기 소개/ 취미와 지병을/ 하나씩 말한다”,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오랜만에 보는 얼굴/ 고인이 연 이어주는/ 장례식장”
3. 『시작하는 사전』
문학3 엮음∣창비∣2020년∣220쪽


스물네명의 시인들이 자신이 감각하는 세계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이제 “그저 볕이 잘 드는 의자에 앉아 이 사전을 펼쳐보기만 하면 된다”고요. “다시 보고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보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사전”이라고요. 이 책을 펼치면 시의 미래를 잠깐 볼 수도 있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싶은 때 사전을 펼친다. 그런데 그 정확함이라는 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정확함일까. 그렇다면 이 사전은 어떠한가. 명쾌한 답을 주기는커녕 번번이 출발선 앞으로 데려다놓고,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게 되는 사전인데.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을 때” 이 책은 귀하게 쓰일 거라고 합니다. “시와 함께하는 사전이라면, 사전에서 출발하는 시라면, 우리의 세계는 얼마나 더 멀리, 얼마나 더 새롭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가족’에 대하여, 국립국어원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이 책은 “성별, 혈연, 결혼 여부,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당사자 간의 의사에 따라 맺을 수 있는 공동체. 법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다.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행복주택, 마일리지 합산, 법적 보호자와 상속자. 이런 단어들 속에서 얼굴의 미래를 헤아려볼,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시간의 이름”이라고 하고, ‘골목’은 “큰 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문. 열리기는 하지만 닫을 수는 없는 문; 인생” 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주민현의 <어두운 골목>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와서 걷기 시작했지/ 익선동의 작은 골목을// 당신은 언젠가 돌반지를 사러 여기에 왔고/ 나는 오래전 연인과 이곳에 왔었지// 그때 우리는 서로를 몰랐고/ 지금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울어져 걷고 있다// 사랑은 있겠지, 쥐들이 사는 창문에도// 골목 끝의 허름한 모텔과/ 취객이 갈기고 간 흔적을 모른 척하며/ 정말 사랑은 있겠지, 시궁창 같은 인생에도//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속없이 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고/ 누군가 비웃듯 웃으며 지나간다//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아이는 자신의 가장 싫은 부분을 닮는다/ 아이를 향해 윽박지르는 남자는/ 사실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다// 휴일이란 아직/ 책의 남은 페이지들과도 같아// 우린 다투어도 좋을/ 여든일곱가지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한다”
이어 기억은 “불안과 미안이 찍어낸 마블링과 그 이본 異本들.” 노래는 “잊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 부고는 “아무 소식도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봄밤. 모르는 고양이, 꽃, 구름, 내 뒷마당의 푸조나무, 그곳에서 영원히 사랑받을 어린이들…… 생각한다. 조용해지는 봄밤. 달라진다. 완전히 달라진다.” 노트는 “새 노트에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사람의 팔꿈치 자국이 남아 있다” 라고.
신선하지 않나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닌가요?
끝으로 윤다혜의 <노트에 적을 것>리안 시를 소개합니다. “노트를 산다/ 흰 노트에/ 읽은 구절을 쓰고/ 검정 노트에/ 읽힐 구절을 쓰기로 한다/ 흰 노트와 검정 노트를 가지고/ 시장에 간다/ 쪽파 앞에서/ 여기에는 왜 케일이 없나요?/ 재킷 안주머니 속의 땅콩을 꺼내 먹을 때마다/ 벅찬 마음이 듭니다/ 점원은 유심히 바라본다/ 주머니 안쪽의/ 볼 수 없는 무엇을/ 보았다고 믿는다 ~”
단어 ‘찾아보기’와 새로운 형식의 ‘작가 소개’ 등 다른 읽을거리를 갖춘 책입니다. 한 편의 시가 새롭게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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