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되어버린 고래 이야기 – 그림책으로 담은 고래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고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어릴 적 동화 속에서나 보았던 파랑새처럼 모든 소망을 이루어줄 것 같은 신비한 존재이거나, 수족관 속에서 안타깝게 유영하는 힘을 잃어버린 바다의 제왕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래가 자주 나타난다는 먼 바다를 찾아 수고로운 여행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고래를 보는 일이 꼭 이루고픈 희망 사항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멀리 있어 볼 수 없지만 어쩐지 친근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더라도 늘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다정합니다. 많은 사람이 고래를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간직하며 그리워하지요.
고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고르며 고래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나 전설 속으로 멀어져 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언젠가 고래 고기를 얻기 위해 잔혹한 살육이 벌어지고, 낭자한 피바다가 넘실대는 어지러운 광경을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결코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할 일들이 세상 어딘가 벌어지고 있음을 눈감지 말아야겠습니다. 환경 문제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리는 동물이기도 한 고래는 점점 더 파랑새가 되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사람들처럼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르는 동물이자 어떤 동물보다 지능이 높다는 고래는 어쩌면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속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책으로나마 그리운 고래 이야기를 마음껏 담아 봅니다.



1. 『엄마의 노래』

이태강 글.그림|달그림|2023년|56쪽

알록달록 바닷속 마을에서 새끼 고래가 태어납니다.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듯 어린 고래의 탄생과 성장이 가슴 아픈 현실과 맞닿아 그려집니다. 커다란 몸집의 고래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이 미소를 머금게도 하고 한편 장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저 물 밖에 잠시 드러난 고래 일부를 볼 수 있지만 고래들이 떼 지어 물속을 뛰노는 모습은 무엇보다 큰 감동이지요. 평생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다 이루듯 고래 떼를 보는 일이 하나의 소망이 됩니다. 이런 멋진 바닷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영문도 모른 채 어린 고래는 엄마를 잃고 엄마의 노래만 남아 있네요. 그래도 슬픔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굳건하게 딛고 일어나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어린 고래 이야기가 코끝이 찡한 감동을 전합니다.
수채화로 그려진 바닷속 풍경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색감과 느낌이 함께 변해갑니다. 그러나 고래의 무심한 표정 속에서 시시각각 요동치는 상황의 변화는 어쩌면 하찮기만 하지요. 아들을 두고 죽음으로 껴안은 엄마 고래의 슬픔에는 우리가 나눠 짐 져야 할 몫이 있지 않을까요? 어린 고래가 엄마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온 세상을 두루 여행하며 커다란 가족을 이루어가길 내내 마음 졸이며 기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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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래들의 산책』

닉 블랜드 글.그림|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2022년|40쪽

이 책에서는 다양한 고래들의 생김새와 습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래가 바다를 버리고 인간이 사는 육지로 나와 살게 된다는 상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머 넘치고 기발한 재미가 가득하지요. 원래부터 육지 동물인 고래가 다시 육지로 나와 인간이 사는 세상을 차지한다면? 생각하지 못한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분열하며 그러다 결국 난장이 되고 맙니다. 귀여운 고래 캐릭터와 심각한 사람들 표정이 대조를 이루며 한 구석에 자리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환경을 지켜나가는데 그 어디보다 적극적인 나라인 호주 출신의 작가가 유머로 풀어나간 이 책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작가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인간의 삶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고래가 세상을 차지했을 때 결국 온통 뒤죽박죽 얽히듯이, 사람들만이 지구에 군림하며 환경에 위해를 가했을 때도 결국 모두 파멸에 이른다는 메시지를 아기자기한 그림에 담아 전해줍니다.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생’만이 진정한 환경 지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인간에게 온 지구를 차지하고 쓰레기로 가득 채울 권리가 있었던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자 하루빨리 회복해야할 생명에 대한 가치를 빗대어 표현한 재미있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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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혹등고래, 생명 무늬로 피어요』

이대건 글. 오치근 그림|책마을해리|2024년|40쪽

책을 펼치면 묵직한 수묵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굵은 붓으로 그린 거친 물살의 소용돌이와 먹의 농담이 만든 산과 들의 풍경이나 바다 주변의 생명무늬가 힘차게 펼쳐 눈에 들어오지요. 바닷가 갯벌에 그려진 끝없는 줄무늬 속에 생명의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산과 들과 바다에 어울려 살아가고 그 속에 바다 소년과 혹등고래가 함께 있습니다. 어느 날 바다 소년이 바다의 생명과 만나고 그 생명은 다른 생명과 이어져 결국 혹등고래와 맞닿게 됩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고래와 친구가 되어 여행을 하며 소년은 바다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를 알게 되지요. 고래와 여행을 마치며 소년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약속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지 우리도 함께 기억하고 지켜가기를 바라봅니다. 수묵화로 힘차게 그려낸 그림과 더불어 리듬감 있게 시처럼 읽히는 글이 어울려 잔잔한 울림을 전합니다.
혹등고래는 ‘바다의 수호천사’ 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 사례도 여럿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따르는 친근함이 오히려 혹등고래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이유가 되었을까요? 이제는 멸종 위기 생물이 되어버린 혹등고래가 생명무늬로 피어나 더 친근하게 우리 곁에 머물기를 소년과 함께 약속해 봅니다.
 


#혹등고래 #생명무늬 #너울신호 #생명의기억 #바다의수호천사


4. 『눈먼 고래』

윤미경 글. 이준선 그림|키큰도토리|2023년|40쪽

제목에서부터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눈먼 고래와 다리가 불편한 고래 아이는 조금 불편한 몸을 가졌지만 고래섬에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아직 서로를 만나지 못한 둘은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섬사람들의 커가는 욕심이 고래를 함부로 잡고 바다를 더럽히게 되면서 결국 고래섬은 고래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야 맙니다. 어김없이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닥쳐옵니다. 붉은 눈물을 흘리는 고래섬으로 밀어닥친 파도가 온 섬을 휩쓸어 부수고 할퀴어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르지요. 그 성난 파도의 요동 속에서 눈먼 고래는 파도에 휘말린 고래 아이의 외침을 알아듣고 소년을 찾아냅니다. 드디어 고래와 소년은 만나게 되었지요. 서로를 포근히 감싸 안은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지 요동치던 파도조차 조용히 지켜봐 주는 듯합니다. 이 따뜻한 만남이 오래 기다린 고래 아이와 눈먼 고래에게 영원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찢기는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서야 사람들은 후회하며 고래를 잡던 그물과 작살을 버리게 되지요. 하나 둘 돌아오는 물고기와 갈매기, 그리고 고래 무리 속에 눈먼 고래와 고래 아이도 함께 돌아왔을까요?
민화 느낌의 배경과 에니메이션 풍의 그림이 조화롭게 어울려 친근합니다. 고래들의 활기찬 움직임이나 집어 삼킬 듯한 파도가 눈앞에 들이닥치듯 생생하지요. 고래와 소년이 조우하는 장면은 정지화면처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네요. 그림을 보는 재미와 함께 안타까운 고래 아이와 눈먼 고래의 사연에 함께 빠져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 너무 늦지 않도록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의 고래섬을 지키러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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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손대희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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