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계절 봄이 가는 것이 아쉬워, 창경궁 야간개장을 다녀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9』를 들추어 보게 되었고, 벗들과 멋진 봄 여행을 한, 남쪽이 소개된 1편, 2편도 다시 읽었다. 지속적 관심과 사랑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유홍준 교수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궁궐과 관련된 책은 작년 이맘때도 엮어 소개한 바 있다. 한 번 소개한 책, 9편을 넣어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2』를 권기봉 작가의 다른 답사기, 그리고 지역이 많이 겹치는 답사기 두 권과 엮었다. 같은 공간이 소개되고 있지만, 시각도 표현도 너무 다르다. 같은 공간이 그곳을 둘러본 사람에 따라 어떤 의미와 색깔을 가지는지 소개해 보고 싶다.
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2, 9』
유홍준 ∣ 창비 ∣ 1993, 1994, 2017 ∣ 348쪽, 403쪽, 416쪽
『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문화만 12권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우리나라 곳곳과 중국, 일본까지 많은 답사기를 썼다.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보고 감탄하기를 여러 번, 자주 꺼내어 읽어보는 책이다. 20년 전, 이 시리즈 시작이었던 1,2편을 읽고, 강진과 해남을 둘러본 기억이 생생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행어를 지나 진리처럼 회자 된다. 많이 알면 작가처럼 쉽게, 그리고 술술 읽히게 쓸 수 있을까? 어렵고도 고증이 필요한 이 많은 이야기를 어쩌면 이리 유려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감탄스럽고 감사하고 심지어는 사랑의 감정까지 든다.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설명한 9편을 다시 상세하게 읽고, 창덕궁과 후원 그리고 창경궁을 둘러보았다. 나에게 서울은, 태어난 곳보다 두 배를 더 살고 있고 서울의 궁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너무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다. 야간개장까지 하는 좋은 계절, 달빛과 불빛에 창경궁 정전인 명경전 꽃모양 문살도 보았다. 서울의 궁을 여러 시각에서 다룬 책들은 많지만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기본서이다. 다시 읽으니 기본이 되는 책이 주는 감동의 무게가 있다.
동백나무가 빨간 꽃송이를 다 떨구지 않았을 무렵, 친구들과 함께한 남쪽 여행이 너무 좋아『나의문화유산답사기 1,2편』도 다시 읽었다. 봄이 되면 광양 매화마을을 가보고 싶지 않은가? 산수유 축제가 펼쳐지는 3월 말이 되면 들썩이는 마음을 다독이고 섬진강 변을 걸어보자. 그러다가 벚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길을 걷고, 차로 달리다가 동백이 통째로 고개를 떨구기 전에 선운사도 들르자. 동백을 더 보고 싶으면 여수 금오도 비령(벼랑)길도 가보길 추천한다. 비령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군락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곳곳에 해사한 얼굴로 맞아주는 동백의 여린 봉우리가 있다. 오래되어도 좋은 책들은 여전히 읽어도 또 읽을거리가 있고, 좋은 곳은 보고 또 보아도 볼수록 가치가 있다.
2. 『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 알마 ∣ 2015 ∣ 339쪽
작년 이즈음 서울의 공간을 기자의 시각으로, 역사적 사건을 엮어 의미 있게 다루어 매우 신선했던 책, 『권기봉 도시 산책』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9』와 묶어, 궁궐 중심으로 소개했었다. 『다시, 서울을 걷다』는 소개한 책보다 3년 일찍 출간되었다. 공간보다는 사건이나 사실에 근거한 현재 그곳의 의미를 중심으로 쓴 책이다. 예를 들면 많은 이야기 중, 경복궁을 다룬 내용은 경복궁 복원 공사의 문제점 위주로 쓴 기사글을 바탕으로, 그 당시 복원사업의 자세한 부분까지 사실에 근거해서 알려주고, 경복궁을 최초의 엑스포장으로 비유하는 기자의 비판적 시각을 넣어 썼다.
서울의 곳곳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궁을 다녀온 후 읽으니 더 눈에 들어오는 대목들이 있다. 경복궁에 걸맞지 않은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이 왜 경복궁에 남아있는지, (대부분 부도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음에도) 창덕궁 후원의 또 다른 명칭인 비원에 대한 오해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탄압을 위한 명칭)도 풀었다.
답사기는 넘쳐난다.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블로그, 개인 영상, 책 등. 장르에 따라 색깔도 시각도 많이 다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매력적인 책으로 문화유산 관점에서 전문가의 의견과 고증을 거쳤지만 딱딱한 역사서가 아니고 제법 말랑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기자다운 정보와 시각을 지닌 책으로 기자가 서울 곳곳을 걸으며, 취재거리가 있거나 역사가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현재 서울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서울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3. 『길 위에서 놀다』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우리길 21』
김화성 ∣ 동아일보사 ∣ 2009년 ∣ 302쪽
김화성 ∣ 동아일보사 ∣ 2010년 ∣ 302쪽
지금이야 여행작가도 많고, 누구나 여행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다양한 장르로 발표할 수 있지만 15년 전만 해도 여행책을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기자라는 직업은 이런 여행 글을 실을 지면이 있고, 해서 자신의 기질대로 쓰고 발표하기 좋았을 것이다. 스포츠 기자였던 작가가 자신이 여행한 곳의 감상을 마음껏 써서 글로 발표하고 책으로 엮었다. 앞·뒤 없이 너무 감상(?) 중심이라 처음엔 거부반응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 위주로 공간을 설명하고 다소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중심으로 써서, 글쓴이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맛이 있다.
같은 공간인 남쪽의 길, 서울의 길을 여러 역사적 사건은 생략하고, 그곳의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표현한 이 여행기는 날생선처럼 파닥거린다. 그래서 소화하긴 다소 버겁다. 모든 것은 다 생략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길과 꽃과 나무와 강과 바다와 구름과 바람을 이야기한다. 내키는 대로 사진도 찍고, 심지어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라 실었다. 그런데 나는 읽으며 마음이 움직였다.
매화꽃이 유명한 매화마을을 소개했고, 산수유나무가 기막힌 구례를 소개했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매화나무를 제대로 감상하는지 그 지역의 지도를 그리고,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꽃을 중심으로 강을 이야기하고 도로를 알려준다. 제목 그대로 『길 위에서 놀다』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1편』에 있는 변산길이 이 책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매우 다르다. 그러나 같다. 역사가 있는 길이라 더 의미가 있지만 그 길에 피어있는 꽃과 흐르는 강, 구름과 바람이 있어 여전히 우리는 그곳을 가고, 감동을 기록으로 남긴다. 핸드폰만 있으면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영상도, 블로그도 여전히 만들고 쓴 사람의 감상과 시각은 있다. 간편한 정보와 장르가 있음에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들자면 글을 쓴 자의 감상과 문학적 취향과 그리고 가치관이 버무러져, 가장 맛있는 상태를 경험하기 위함을 그 하나로 꼽고 싶다.
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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