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어느 날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한 지금, 나는 과연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는지,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 안의 나와 한참 동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은 나를 찾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입니다.



『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 55쪽

이 책을 처음 만난 날, 한 땀 한 땀 정성껏 수를 놓은 것 같은 정교한 아름다움과 코랄리 특유의 패턴과 매혹적인 디자인이 녹아든 표지 앞에서 할 말을 잃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 그림책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18세기 영국 왕실에서 기품 있는 귀족을 접견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그림책입니다.
영국 펭귄 북스의 디자이너 코랄리 빅포드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 그림책은 깊고 어두운 숲 속에서 자기만의 둥지에 머물던 작고 겁 많은 여우가, 별과 함께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이야기입니다. 별과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았던 여우, 하지만 어느 날 별이 여우 곁을 떠나고, 별을 찾아 헤매다가 잠든 여우는 빗소리에 눈을 뜹니다. 비가 그치자 여우는 가슴 속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봤을 때,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걸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 많은 별들 중에 나의 별도 있을 거야. 내 별이 내 곁을 떠난 게 아니었구나!’ ‘비를 맞은 뒤’ 온전한 자신만의 색깔과 크기를 되찾은 여우는 별이 총총한 밤 하늘 아래 숲을 지나 어딘가로, 사뿐사뿐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여우의 시작입니다. 나를 거듭나게 한 인생의 비는 언제쯤 내렸는지 생각해보는 대목입니다. 여우의 성장 과정을 표현한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깊은 울림을 주는 짧은 글 앞에서 쿵, 가슴이 멎는 듯한 벅찬 감동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원작의 스펙을 고스란히 가져오기 위해 사계절 출판부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험 인쇄를 거쳐 비로소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멋진 그림책을 탄생시켰다는 후일담도 곁들여 전합니다.


#여우와별 #꿈 #성장 #펭귄북스 #코랄리빅포드스미스 #어른그림책


『도토리 시간』

이진희 쓰고 그림 | 글로연 | 2019년 | 44쪽

유난히 힘든 날이 있지요,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그 고비를 넘기는지요? 그림책 속의 주인공은 아주 힘든 날이면 아주 아주 작아져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이 흔들릴 때 여행을 떠납니다. 거친 빵의 계곡을 지나 희미한 책의 숲속을 걸어가 소란한 들판을 가로질러 도토리 속으로 쏘옥 들어가 눕습니다. 한없이 드넒고 평안한 공간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그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마음을 추스르며 나무와 하늘, 자연의 품에서 점차 자신만의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일상으로 되돌아옵니다.
누구에게나 비빌 언덕, 기댈 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신의 존재감이 콩알만큼 작아지고 의기소침해질 때, 그런 볼품없는 내 모습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다독여 주는 자신만의 ‘도토리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들 앞에서는 애써 헛웃음을 짓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날리지만, 격무에 시달리고 인간관계에 지쳐 퇴근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보일 때, 그럴 때는 작고 약한 나를 꼬옥 안아주고 토닥토닥 위로하면서 도토리 시간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 보세요. 진정한 위로는 내 안에 있습니다.
이진희 작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보통의 힘든 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시간들, 혼자 작업실에서 오래도록 창문 밖 초록의 풀들을 바라보던 어느 날 도토리 시간의 원고를 공책에 적으면서, 가만히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깊게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디자인과 색연필의 따뜻한 질감과 색깔이 어우러져 읽는 이의 가슴에 한 뼘의 도토리 시간을 선물해 주는 편안한 그림책입니다.


#회복탄력성 #휴식 #쉼 #이진희 #어른그림책


『내 안에 나무』

코리나 루켄 지음 김세실 옮김 |나는별 | 2021년 | 46쪽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린 코리나 루켄은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은 《아름다운 실수》와 <뉴욕타임스>가 베스트셀러로 선정한 《내 마음》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이 책은 그의 세 번째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저마다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존재의 성장과 생명, 사랑의 신비를 나무의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누군가의 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고, 또 다른 이들의 나무에서는 오렌지와 배, 아몬드와 자두도 열립니다. 나름의 열매들로 만든 파이를 만들어 함께 나누는 모습을 밝은 색상과 행복한 이미지로 표현하여 독자들의 마음 속까지 환하게 물들입니다. 내 안에 나무에는 내가 기대어 쉴 그늘이 있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 씨앗과 꽃, 나무껍질과 그루터기도 있어 새와 다람쥐, 벌레들도 깃들어 지냅니다. 때로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도 하고 진흙탕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물고기가 헤엄치는 강물과 푸른 하늘이 흐릅니다. 내 안의 나무는 아주 강해서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다른 뿌리들과 연대하여 줄기와 가지와 꼭대기까지 뻗어 오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잘 자리 잡은 나무로 인해 나는 다른 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숲을 이룹니다.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나무와 하늘과 태양이 있기에 내 안의 나무와 또 다른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숲을 만들어 갑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내 안에 잘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입니다.


#소중한나 #연대 #나무 #상생 #어른그림책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크리스티안 보르스틀랍 지음 권정희 옮김 | 길벗스쿨 | 2019년 | 46쪽

네덜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안 보르스틀랍은 세계 최초 미생물 박물관인 마이크로피아와 함께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책을 펼쳐 들면 처음 만나는 면지의 그림이 남다릅니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면지를 꽉 채우고 있어, 그 속 어딘가에 숨어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기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많은 것들, 보고 알고, 숨 쉬는 것,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것, 어렵지만 살아내고 살아남는 것, 침묵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큰소리 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맞서 싸우다가도 도망가야 할 때가 있고, 다양한 모습의 삶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단 하나, 삶은 함께하는 것이라는 마무리가 깊은 공감을 일으킵니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삶, 그렇기에 모든 삶은 이어져 있는 것임을 깨달을 즈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끌어 안는 포옹, 낮은 곳에 처할 줄 알고 높은 곳에서도 자만하지 않으며 서로를 향해 뻗은 손길이 하나로 이어져 함께 나아갈 때 삶은 그런대로 살아볼 만하고 이겨낼 만한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오늘도 또 하루 살아냄으로써 내일이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으로 떠오른다는 거야. 어때요? 주변의 친구들과 한 마디씩 운을 떼어 봅시다.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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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김명희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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