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길 소설가가 전하는 60+ 독서이야기




‘문인들이 전하는 60+독서 이야기’는 10명의 문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60+독서를 바라본 시리즈입니다.


술잔이 오갈수록 큰형과 공유했던 사춘기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큰형이 다윈의 『진화론』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작가라면 진화론 정도는 읽어야지’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진화론』이 단순히 생물학서적이 아니라 생명을 진화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의미있는 고전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챙겨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널리고 널려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벽돌이라고 우기면 믿을만할 두께의 『진화론』이 형의 책상에 놓여 있었다.

오랜 만에 마련한 술자리였다. 큰형과 나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코로나사태 이후 가능한 술자리를 피했다.
술잔이 오갈수록 큰형과 공유했던 사춘기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자연히 샛방에서 읽었던 김용의 무협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외수의 『칼』 같은 작품들과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싸구려 양주 향기가 떠올랐다.




나 또한 독서광이 되었고, 문학청년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70년대 초에 서울 근교의 빈민촌으로 상경했다. 오남매에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가 살기에 비좁은 열 평 남짓한 오두막은 불쑥불쑥 커가는 형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집을 넓혀 이사할 형편도 못되었다. 궁여지책으로 큰형과 작은형이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샛방을 얻어 나갔다.

샛방도 비좁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로로 책상과 책장을 놓고 세로로 어른 둘이 누우면 빈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이부자리와 가제도구는 미닫이문 위 커다란 선반에 놓았다. 주방이 따로 없고 연탄아궁이 앞에서 간단한 세면이 가능한 구조였다. 큰형과 작은형은 세 끼 식사를 집에 와서 해결했다. 매 식사시간을 알리러 샛방에 다녀오는 심부름은 내 몫이었는데, 어린 나는 샛방 문틈으로 풍기는 사내들의 냄새를 동경했다.
 
작은형이 군대에 입대하자 샛방의 한 모퉁이가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얼치기 입시생이었는데, 사춘기 소년답게 그럴듯한 일탈을 꿈꿨다. 큰형은 그런 마음을 들여다봤는지 장학금을 받아오는 날이면 계란 한 판과 나폴레옹 한 병을 사가지고 왔다. 형제는 계란프라이에 나폴레옹을 금세 비웠다. 술이 부족하면 나폴레옹을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헤맸는데, 그때 나는 일종의 사명감과 스릴을 느꼈으며, 점차 사내가 되어갔다.
 
생각해보면 큰형은 대단한 독서가였다. 형은 손에 걸리는 책들을 모두 읽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법학서적을 읽었다. 독서취향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나는 형의 서가에서 최인훈의 『광장』을 읽었고, 압도적인 두께에 주눅 들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처음 접했다.
 
형의 독서 편력은 동네만화방까지 미쳤다. 서너 개의 만화방에 안 읽은 무협지가 없었다. 형은 만화방 주인에게 무협지 평론가 대우를 받았으며, 신간을 제일 먼저 받아보는 특혜를 누렸다.
 
나도 닥치는 대로 법학서적 사이사이에 꽂힌 책들을 읽었다.
『단(丹)』, 『고래사냥』, 『칼』, 『인간시장』 같은 책들에 매료되었고, 젊은 시절 내 문학의 전범(典範)인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그 방에서 처음 만났다.
그들과 조우하면서 나 또한 독서광이 되었고, 문학청년이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육십 대 독서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육십 대의 책읽기라는 주제를 듣고 고민하는 내게 후배 작가가 말했다.
“생각해보면 형도 금방 육십 대가 될 테고, 나 또한 언젠가는 육십 대가 될 테니까요.”
눈치 챘겠지만 이 글을 육십 대를 맞은 큰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단한 독서가였던 큰형은 올해 환갑이 되었고, 열 살 터울인 나는 오십대에 접어들었다. 큰형과 나는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게 지내면서 어느덧 나이가 들었고, 십 년이란 터울이 점점 좁혀졌다.
사춘기 시절 큰형의 심부름꾼이며, 만화방의 파발마였으며, 샛방의 서가를 지키는 사서였던 나는 이제 큰형과 술 한 잔 마시면서 지난 추억을 호출하는 술친구가 되었다.
그러니 동료 소설가의 말처럼 큰형의 이야기는 십년 후 내 이야기이다. 나보다 몇 살 적은 동료 소설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큰형은 나와 샛방에 살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고 했다. 내게는 충분히 길고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큰형의 삶에서 나와 함께 했던 샛방 생활은 기억이 어렴풋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육십 대가 살아온 시대가 그렇듯 형도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적응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살아왔다(재수생에서 대학생으로 대학생에서 전경으로 박사과정을 밟다가 학내분규의 투사로, 삼십 대 후반의 고시생으로, 그리고 마흔 넘어 변호사로의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 기억의 무게와 다르다고 탓하거나 우길 수 없다.
나는 변화한 큰형과 변화하지 않은 큰형을 모두 이해할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이야기 소재가 다른 곳으로 여러 번 넘어갔다. 이야기가 갈팡질팡 한다는 건 술자리를 파해야 한다는 시그널이다.
샛방 이야기도 끝을 내야한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방 세 칸짜리 근처 빌라로 이사하면서 샛방시절은 끝이 났다.
하지만 독서광인 큰형은 다윈의 [진화론]을 읽고 내 샛방의 기억을 호명하고 있다. 그러니 아직 끝나지 않은 육십 대 독서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나 또한 언제라도 그 시절의 수컷냄새 자욱한 샛방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이춘길

이춘길 소설가
1971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2011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 [형사k의 미필적고의]가 있다.